흔적(痕迹) <우광훈의 장편연재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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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痕迹) <우광훈의 장편연재 37>
  • 동북아신문 기자
  • 승인 2009.0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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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메터 되는 계단을 내려가자 오강가였다. 물이 세차고 생각보다는 맑았다. 작은 기계배 몇척이 콩크리에 박힌 쇠기둥에 매여달려 강물의 흐름에 따라 흔들거리고있었다. 배우에서 중년은 되여보이는 남자가 그믈에 걸린 무엇을 뜯어내고있었다. 산을 타고 해가 금방 넘어가 하늘은 아직도 맑갛게 밝았으나 오강의 계곡은 침침하게 그늘이 지여있었다. 물안개가 피여오르는듯 강우에 연한 회색빛이 서리여있었다. 려객선 한척이 지나가면서 길게 고동소리를 울렸다. 그 고동소리는 계곡속에서 오래동안 우울하게 메아리쳤다. 왜 뱃고동소리는 모두다 그렇게 슬픔과 련계되였는지 모를 일이였다.

창호는 오강의 물에 손을 넣어보았다. 깊은 계곡을 흘러온 강물치고는 그렇게 차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거세찬 흐름의 온기같은것이 느껴졌다. 물결의 온기, 거센 흐름의 온기, 그런것을 창호는 상상해본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그런 느낌이 있었다.

창호는 계단을 따라 다시 올라갔다. 하나둘 전등이 켜지고있었다. 석재(石材)를 주요한 건축재료로 사용한 집들이 이상하게 층수가 많고 졻았다. 마치 장방형의 상자를 세워놓은듯 하였다. 피끗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산비탈에 집을 지으려면 먼저 산을 깎는 역사를 해야 한다. 그러니 집터를 넉넉히 잡을수 없으니까 하늘의 공간을 차지하는수밖에... 창호는 이렇게 생각하고 인간은 어떤 조건에서든 자기 생존의 터를 마련하는 지혜가 있다는것에 감탄했다.

창호는 저녁으로 마랄면(麻辣麵)이라는, 이상하게 입안이 저리고 매운 국수를 먹었다. 사천료리는 사천신선로에서 이미 입맛이 들어있었기에 사천음식의 주양념의 맛과 향이 싫지는 않았다. 오히려 사천에 와서 사천의 정종음식을 먹어본다는 기대도 있었다.

식사를 끝내고 창호는 호텔이 있는쪽으로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끝까지 올라가니 포석을 한 골목이 나지고 어디선가 박수소리, 환성을 지르며 떠들고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나는쪽을 바라보니 회를 바른 삼층건물이 보였다. 건물 이층 밖으로 박은 장대기에 <<차(茶)>>라고 쓴 기(旗)가 드리워져있었다. 아마 차집인가보다 하며 창호는 그쪽으로 걸어갔다. 문앞에서 이쁘장하고 작달막한 녀자가 창호가 들어가려고 하자 손을 내밀었다.

<<량웨엔...>>

차집에서 문표를 받는것이 신기했다. 돈 2원을 주니 들어가라고 뻣고있던 다리를 치워준다.

창호는 안으로 들어갔다. 넓다란 대청에 사람들이 빼곡했다. 장방형의 나무상을 놓고 의자나 쪽걸상에 앉아 차주전자 하나씩 놓고있었고 자리가 없는 사람들은 벽쪽에 목을 빼들고 서있었다. 대청 중간에 작은 무대가 있고 무대 중앙에는 작은 책상이 놓여있었다. 그 네모난 상앞에 머리가 훌렁 벗겨진 남자가 한창 이야기를 하고있었다. 그제야 창호는 이 차집이 이야기군이 이야기를 하는 집이고 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차도 마실겸 이야기도 들으러 온 사람들이라는것을 알았다. 문표를 받던것이 리해가 되였다.

이야기군이 지방말로 이야기를 했기에 창호는 무슨 이야기인지 알아들을수 없었다. 다만 조조니 제갈공명이니 류비니 하는 이름자를 알아듣고 아마도 <<삼국지>>를 이야기하나보다 하고 생각했다.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서있는것이 맹랑하기는 했지만 아무튼 할 일도 없고 시간을 축낼거리도 없기에 그대로 한동안 서있었다. 한동안을 서있으려니까 머리 벗어진 이야기군이 성목패(醒木牌)를 상우에 대고 탁 치고는 길게 목청을 빼면서 무어라고 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박수를 짝짝 치며 좋다고 환성을 질렀다. 아마 이야기가 끝나는가부다 하고 생각하는데 상앞에 앉았던 이야기군이 일어서며 청중을 향해 두손을 맞잡고 허리를 굽석굽석 하며 인사를 하고 무대에서 물러났다.

이야군이 물러나자 무대의 상이 치워지고 이어서 꽹과리, 징, 북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더니 호금(胡琴)이 길게 전주곡을 연주했다. 이어서 가면을 쓴 배우가 등허리에 작은 깃발을 가득 꽃고 머리에 노란 두건을 두르고 나와 길다란 창을 휘두르며 찌르기, 막기, 내려치기... 하는 동작을 했다. 호금소리가 급촉해지더니 배우가 목청을 살리며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야무지면서도 길다란 음성이였다. 창호는 인차 사천의 지방극종에 속하는 천극(川劇)라는것을 알아보았다. 노래소리는 악청에 가까웠고 숨조차 쉬지 않는듯 길고도 여운이 있었다. 마치 깊은 산속에서 누구에게인가 존재를 알리고싶은듯 지르는 길다란 외침같았다. 경극과 같은 그런 방대함과 대륙적인 기(氣)는 없었지만 아담하면서도 깊은 계곡에서 사품을 치는, 끈질김과 거세참으로 사람을 질리게 하는 깊은 운률이 있었다. 창호는 노래하는 사람의 가사를 한마디도 알아들을수 없었다. 그러나 생소한 문화기분에 서있는것이 기분에 좋았다. 무대우의 배우가 노래를 끝내고 한참을 창으로 재주를 피웠다. 북소리와 꽹과리, 징소리가 고조에 올랐다. 배우가 얼굴을 한번 휙 돌리자 가면이 변했다. 다시 한번 돌리자 또 변했다. 한번씩 변할 때마다 가면은 색갈이나 표정이 서로 달랐다. 이렇게 여섯번을 변하자 관중석에서 박수소리가 터졌다.

<<호우!...>>

그리고 함성이 터졌다.

창호는 밖으로 나왔다. 천천히 걸어가가는데 차집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소리, 꽹과리소리, 징소리, 북소리, 호금소리가 창호의 뒤통수를 한동안 따라왔다. 평화로움이 깃들어있었다. 태평성세를 묘사한 어느 테레비죤드라마의 한 장면같았다. 아마 이곳에서는 이런 차집이 도시의 나이트클럽이나 노래방같은 구실을 하는 모양이였다. 어느곳이든 사람이 사는 곳에는 나름대로의 즐기는 방법이 있는가보다.

창호는 포석길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 한적하고 고즈넉함이 깃들어있었다. 나다니는 사람도 많지 않았고 현대문명의 산물인 자동차의 경적소리도 없었다. 창호도 서서히 이 산성(山城)의 태평스런 기분에 젖어들었다.

습도가 많은 탓인지 날씨가 물크는 느낌이였다. 북방사람인 창호는 갑작스런 온도변화에 민감해있었다. 땀이 흐르고 목이 말랐다. 마침 길옆에서 차물을 파는 점포가 있었다. 창호는 목이라도 추기려고 점포앞으로 다가갔다. 점포는 나무와 대나무를 엮어 지은 이층집이였다. 아래층은 대문이 없는 훤한 대청이였고 대청앞의 반을 막고 길다란 상이 놓여있었다. 상우에는 여러가지 찾잔들과 차주전자들이 놓여있었고 대청의 안쪽에 있는 화로에서는 더운물이 끓는 주전자가 흰김을 뿜으며 탄식같은 소리를 내고있었다. 차를 파는 사람은 나이가 지숙하다는 느낌뿐 얼마나 되였는지는 도저히 짐작을 할수가 없었다. 희끗한 머리를 보아서는 일흔살이 넘는 로인같아보였으나 고동색얼굴이 번들거리는것을 보아 오십대의 장년같아보이기도 했다. 손님이 다가서는데도 주인은 잠든듯 눈을 지그시 내리뜨고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장사를 하려는 사람같지가 않았다.

<<차를 주십시오.>>

주인은 아무 말 없이 창호를 흘끗 쳐다보고는 일어서서 끓는 물이 든 주전자를 화로우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무슨 차를 마시겠는가 물어도 보지 않고 차를 담은 유리병을 내려 나무숫가락으로 차를 떠서 차주전자에 넣었다. 주전자에 물이 차자 주인은 뚜껑을 덮고 붉은 토기찻잔에 물을 붓고 그것을 들어 차주전자우에 부어 주전자를 덮혔다. 그렇게 여러번 하여 차주전자의 물이 없어지자 새롭게 물을 붓고는 창호의 앞에 내밀었다. 모든 동작은 마치 컴퓨터에 입력이 되여있는듯 흐트러짐 없었다. 그리고 그 매 하나의 동작속에는 산을 등지고있는듯한 든든한 자신감이 들어있었다.

<<드십시오. 되였습니다...>>

주인의 말은 반갑게도 지방말씨가 아니였다. 억양은 동북사람들처럼 발음이 딱딱 끊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표준어에 가까웠다. 창호는 말을 걸고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지방사람 아닌것 같습니다?>>

<<중원사람입니다.>>

주인은 한마디 대답을 하고 입을 다물고 또다시 눈을 내리깔았다가 길 맞은편의 어느곳인가를 멍한 눈으로 바라보고있었다. 창호는 그러고있는 주인에게서 숨겨져있는 인생의 길다란 냄새를 맡았다. 인생의 냄새라는 표현이 턱에 닿지도 않는 표현이였지만 창호는 그 이상의 표현을 찾을수 없었다. 중원지방이라면 사실은 대답을 하지 않은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중국의 중원지방이라면 하나의 분위기 비슷한 설명밖에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중원 어느곳인가 캐여물을수는 없었다. 창호는 자기도 싱거워져서 한동안 차물을 후르륵거렸다.

<<이 지방에 구경이라도 할만한 곳이 있습니까?>>

창호는 기어이 이 차물가게의 주인하고 무어든 말하고싶어진 자신이 우스워졌다. 아마 긴 려행에서 온 고독때문이리라.

주인은 얼굴을 창호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손님은 북방사람이지요?>>

창호를 바라보는 주인의 눈이 그 깊이를 알수 없었다. 창호는 몸을 앞으로 가져가며 대답했다.

<<그런데, 어떻게 아셨습니까?>>

주인은 눈가에 알릴듯말듯한,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저는 이 골목에서 이십여년이나 차물을 팔았습니다. 그러니까 지나가는 사람을 보고 어디 사람이겠다고 짚으면 십중팔구는 맞출수 있지요. 익숙하면 기교가 생긴다고 그런것쯤 되겠지요...>>

주인은 겉으로는 멍청해보이는데가 있었으나 이야기를 시작하니 건담가였고 말에 조리가 있었다. 창호는 겉모양으로 사람을 취하지 말라 라는 중국의 고사를 생각했다.

<<그래도 그렇게 사람을 알아보자면 상당한 묘기가 아니면 안될것인데요?>>

창호는 묘기라는 말을 썼다. 사람을 알아보는데 묘기라는건 얼토당토 않은 비유였다. 창호는 자기로도 아첨 비슷한 냄새를 맡았다.

주인은 목에 힘을 주었다.

<<묘기라면 묘기고 익숙하다면 익숙한것이지요. 사람이란 어느 곳에서 태여나 그곳에서 자라면 그곳의 천시와 지리, 그리고 인화의 영향을 받게 됩니다. 북방사람들은 호방하고 의기 충천하지만 무슨 일에나 끈질김이 없고 멋대로 하기 좋아합니다. 중원사람은 자부심이 강하고 꾸준하지만 남을 배려할줄 모르고 지저분합니다. 남방사람은 총명고 계산에 빠르지만 소심스럽고 영웅의 기가 없습니다. 대개 이렇게 북방, 중원, 남방으로 나뉩니다. 북방사람은 대개 잘 차려입고 다니지만 진땅 마른땅 가리지 않고 텀벙텀벙 다닙니다. 중원사람들은 지저분하지만 오만하고 말마디에 문언문을 탁탁 내뱉습니다. 남방사람들은 원숭이처럼 눈길이 편하지가 않고 달달 구읍니다. 지방마다 서로 다르고 틀리는데가 있지만 이 세가지를 알게 되면 결국 사람을 알아보는 첫번째 열쇠를 가진 셈이지요...>>

창호는 주인의 말에 동감이 가는것은 아니였지만 시비를 걸 생각은 없었다.

<<참 대단하십니다. 근데 중원 사람이라면서 어떻게 이곳에서 차를 팔고계십니까? 뭐 장사가 잘되기라도 하는것입니까?..>>

주인은 이윽토록 대답이 없었다. 창호를 바라보는 눈이 또다시 멍청해보였다. 갑자기 주인은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사람고기를 먹어본적이 있습니까?>>

창호는 알아듣지 못했다. 사람의 고기라니? 먹다니? 창호는 다른쪽으로 생각했다. 아마 외지사람이니 몸을 파는 녀자라도 소개를 하려나보다 하고 생각하고 손을 저었다.

<<여기에도 그런 녀자들이 있습니까?>>

주인은 머리를 저었다. 그리고 다시 원래의 물음을 되물었다.

<<사람고기를 먹어본적이 있습니까?>>

뭐야, 이건 무슨 뚱단지같은 소리인가?!

<<사람고기? 인육?!...>>

어느새 주인은 팔짱를 낀채 허리를 구부정하고있었다.

<<그렇습니다. 인육이지요. 인육은요, 처녀들과 새색시들의 고기가 가장 맛있습니다. 짐승과 같답니다. 짐승도 암컷하고 어린것이 더 맛있지 않습니까?...>>

창호는 눈이 휘둥그래서 찻물집주인을 바라보았다. 거짓도 진실도 읽을수 없이 주인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다.

<<인육을 먹어요? 어찌 그런 일이?!...>>

갑자기 안개가 밀려왔다. 갑자기 누군가가 흰 가루를 뿌린듯 안개는 농밀하게 주위의 모든것을 부옇게 흐려놓았다. 주인이 얼굴을 들어 하늘을 보고나서 다시 창호에게 눈길을 주었다.

<<사람은 사람을 잡아먹을수 있습니다. 문화혁명초였습니다. 지주부농들과 그 자식들을 무작정 때려죽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지주부농들이나 국민당은 우리 인민의 피땀을 빨아먹고 산 놈들이니 잡아먹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잡아먹었습니다... 처녀들과 새색시 고기는 더 맛있습니다. 그런데 잡아보면 녀자들 그것이 깜쪽같이 없어지는겁니다. 먹으면 양기를 돕는다는 소문이 있었으니까요...>>

창호는 주인의 얼굴을 바라보며 전률했다. 등곬이 서늘했다. 먹어보았느냐고 하는 물음이 목구멍에서 맴돌다 내려앉았다. 먹어보았을가? 그러면 이 사람은 인육을 먹어본 사람인가? 그럴수도 그렇지 않을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그 무서운 이야기를 하고있는 주인의 무표정이 더 두려웠다. 창호는 차를 마실 생각을 잊고 멍해졌다. 무어라고 이야기를 할 기분이 없었다. 어서 이 자리를 떠나고싶었다. 창호가 일어서려고 하자 주인이 무언가 생각나는듯 말했다.

<<사람은 사람을 잡아먹을수 있습니다. 그것이 사람을 보는 두번째 열쇠입니다. 손님은 이곳에 어떤 구경거리가 있는가 물으셨지요?...>>

<<그렇기는 합니다만...>>

창호는 기대고 뭐고 없었다.

<<작은 곳이라 구경할 곳은 없습니다. 멀기는 하지만 은혜사가 있기는 한데...>>

창호는 호텔방에서 관광안내서를 본 생각이 났다.

<<글쎄요...>>

주인은 여전히 그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부처님이 오신 초파일 불사를 지냈으니 지금은 조용할것입니다. 마음을 비우고싶은 사람이라면 한번 가볼만도 하지요. 실은 작은 암자에 불과하지만...>>

창호는 찻물집주인의 목소리를 귀등으로 흘리며 일어섰다. 등뒤에서 주인이 음울하고 은밀한 미소를 짓고있는것 같아 등곬이 사늘하게 식었다.

호텔로 돌아오자 목이 칼칼함을 느꼈다. 차는 마셨던지 안마셨던지 기억에 없었다. 다만 타는 목마름이 있었다. 창호는 랭장고를 열고 맥주를 꺼냈다. 고리를 걸고 당기니 터지는 소리가 사뭇 요란했다. 섬뜩하도록 고요가 깃들고있었다. 창호는 맥주를 들고 창가에 다가섰다. 명멸하는 등불이 이제 엷어지기 시작하는 안개속에서 자극적인 빛을 숨기고있었다. 작은 성진(城鎭)이 우유빛으로 몽롱하고 그래서인지 더더욱 평화롭고 태평스러웠고 푸근함이 있었다. 벌컥 맥주를 입안에 쏟아넣었다. 안주를 하려고 소시지를 물어뜯었다. 피끗 소시지의 연한 분홍빛고기의 빛갈이 스쳤다. 울컥 속에서 구역이 치밀어올랐다.

<<처녀와 새색시의 고기가 가장 맛있습니다...>>

찻물집주인은 어떤 멧세지를 전달하고저 한것일가? 주인은 맛있답니다가 아니라 맛있습니다 라고 말했었다. 그리고 사람을 보는 두번째 열쇠에 대해 말했었다. 알래스카에서 공중조난을 당한 사람들이 죽은 탑승객들의 시체를 조금씩 먹으면서 살아남아야 했던, 그런 식인이였을가? 난파선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구조선에서 표류하면서 제비를 뽑아 동료들을 잡아먹어야 했던 그런 식인이였을가? 사람은 증오때문에 사람을 잡아먹을수도 있다. 그런 메세지를 전하려고했을가? 창호는 미궁으로 빠져들었다.

식인, 그리고 창호가 지내왔던 녀자들이 하나로 범벅이 되여 취기속에 섞여들었다. 안개속에 잠긴 이 낯설은 산성의 륜곽처럼 희미하게 흐려져 어느 하나를 분간할수 없었다.

그날밤 창호는 꿈도 없는 잠을 잤다.

이튿날 일어나자 햇살이 창가를 적시고있었다. 늦잠을 잤는가고 시계를 보았으나 오히려 일찍했다. 사람이 살고있는 동네같지 않게 고요함이 숨어있었다. 혈관속에서 흐르는 피의 흐름소리마저 들리는것 같았다. 불안한, 그리고 벽의 방의 구석구석마다에서 견딜수 없는 답답함이 스믈스믈 기여나오는듯 했다.

누구에게 쫓기듯 창호는 짐을 꾸렸다. 갑자기 찡관스님이 떠올랐다.

<<인연이 다했다면 그것이 사람의 힘으로 돌려세워지는것이겠습니까?...>>

중경에서 북경으로 가는 비행기표는 디시를 받으려고 밤중으로 예약이 되여있었다. 지금 떠난다면 너무나 일렀다. 망설이는데 침대옆스탠드우에 관광안내서가 눈에 띄웠다.

은혜사!

찡관스님이 떠오른것은 은혜사를 계시하는것일가?

창호는 은혜사를 거쳐서 가리라 마음을 굳혔다.

이곳을 어서 빨리 떠나야 한다는 일념이 송곳처럼 창호를 찌르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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