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들은 한국에 무엇을 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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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포들은 한국에 무엇을 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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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4.04.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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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현대화 과정서 겪은 경험 잘 활용해야..
한국 중심적인 태도는 특히 중국동포와의 만남에서 두드러진다. 중국동포가 가난하다고 하는 것이 큰 이유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중국동포가 한국인과 구별되는 문화적 코드는 무엇보다 "중국"과 "사회주의"에 있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한국인이 중국동포를 자신과 구분짓고, 때로는 차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두 가지 코드를 결합시키면 "중국공산당"이되는데, 물론 한국전쟁의 또 다른 한 당사자로서 중국공산당을 적대시했던 역사적인 기억이 여전히 한국인의 뇌리 깊숙이 남아있다. 하지만 한국인이 중국동포에게서 아직 거리감을 느끼는 것은 이런 직접적인 정치적 이유 때문이 아니라 대개는 문화적인 이유 때문이다.

한반도인은 대륙으로부터 수천 년 동안 발달된 문화를 받아들여왔지만, 한편으로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강하게 고수해온 전통이 있다. 최근 한중간에 경제 경쟁이 치열해지고, 여러이유로 특히 인터넷상에서 반중 분위기가 확산되는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중국"이라는 코드는 중국동포에 대한 한국인의 이미지 형성에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한편 중국동포들이 지닌 사회주의 문화 역시 한국의 발달된 시장경제 논리 앞에서는 나태와 무책임의 대명사로 만 해석되며, 하루빨리 청산해야 할 구악과 구습의 잔재로밖에는 여겨지지 않는다.

한국인은 중국동포에게서 "중국"과 "사회주의"는 철저히 무시하고자 하며, 전통적인 한민족 문화요소를 발견할 때 커다란 감동을 받는다. 공통의 민족문화를 찾고, 이를 바탕으로 정서적인 일치감을 느끼고자 하는 시도는 자연스런 것이다. 하지만 중국동포가 간직하고 있는 한민족 문화의 원형은 광복 이전 시대의 한반도 문화이며, 그나마 순수하게 보존하고 있는 것은 드물고, 중국 문화의 영향으로 변형된 것이 대부분이다. 현대 한국 문화 역시 그 시대의 문화와는 엄청나게 달라져 있다. 일치를 확대하는 데도 한계가 있는 것이다.

중국동포와 떼려야 뗄 수가 없는 "중국"과 "사회주의"라는 코드를 "중화주의 만세!", "사회주의 만세!"와 곧바로 동일시하는 것은 한국인의 중대한 오류다. 그 두 가지는 체제대립의 역사 상황에서 동포에게 주어진 운명적인 굴레였으며, 삶의 지평이었다. 이러한 조건에서 중국동포는 다수의 이민족과 평화롭게 공존하는 법을 체득하고 문화 다원주의를 실천했으며, 신중국 건설 과정에서 수평적이고 평등한 인간관계의 규범과 사회적 헌신성의 모랄을 함양했다. 중국동포는 전통 민족문화를 지켜온 데서만 자부심을 갖는 것이 아니며, 이러한 보편적인 가치들을 지키는 데서도 자부심을 느낄 것이다. 시장경제를 배운다고 해서 이러한 보편적인 가치들을 버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가치들은 오히려 시장사회의 단점을 보완 해 줄 수 있는 덕목들이다.

사람은 누구든 자신의 자부심을 지킬 수 있을 때 타인과 진심으로 협력할 수 있다. 생존과 자립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모국을 찾아온 동포들에 대해 그들의 내면 속에 지닌 모든 것을 버릴 것을 요구하며 편협한 한국 중심적인 요구를 제기하는 것은 냉혹하고 앞뒤가 꽉 막 힌 검열관이나 할 짓이며, 그렇게 할 때 한민족공동체는 요원한 꿈에 불과할 것이다.




동포들은(그리고 이곳 독자들 가운데) 이런 말을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중국동포가 결코 한국(한민족)에 짐스럽고 부끄러운 존재가 아니라 자랑스런 동포임을 한 국인들이 깨닫게 될 때가 올 것이다."

경제적인 필요 때문에 "자존심을 장롱 속에 잠궈두고" 이곳에 온 분들이라, 한국사회와 한국인을 보고 속이 뒤틀릴 때도 속에 있는 말을 다 하기 싫을지 모릅니다.

나는 동포들의 그 "속에 있는 말"이, 같은 핏줄을 차별하는 한국에 대한 직접적이고 감정적인 반발감, 없는자로서 있는 자에 대한 자격지심 내지 단선적인 비교의식, 말하자면 "우리도 너희들만큼 잘 살게 되면, 그때가서 두고 보자", 이런 심정이 응축된 모난 언사만은 아닐 것 이라고 봅니다.

동포들이 한반도와는 다른 사회환경, 다른 체제 속에서 수십년을 살아온 삶의 경험과 몸과 마음에 밴 문화가 있으며, 그 가운데 보편적인 삶의 지혜로, 인간과 사회에 대한 높은 안목으로 승화된 정화가 분명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것들은 동포들이 경제적인 필요 때문에 한국사회와 접촉하게 되었더라도, 청산하고 지워버려야 할 것이 아니라, 한민족의 문화에 긍정적으로 보태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민족은 아직 다른 문화와 삶의 경험으로부터의 건강한 수혈이 많이 필요합니다. 한국인의 문화와 삶의 경험은 아직 진정으로 국제적이지 않습니다. 주로 해양을 통해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니며 건설한 자본주의의 일천한 경험이 먼지 두꺼운 전통 문화 위에 어수선하게 얹혀 있을 뿐입니다.

한반도는 대륙에 연결되어 있고 동시에 해양을 향하고 있습니다. 과거 오랜 기간 동안은 대륙과만 교통했고, 그리고 최근 수십년간은 주로 해양으로만 눈을 돌렸습니다. 경제와 문화 교류가 세계적인 차원에서 진행되는 오늘날 한반도의 이러한 편향은 스스로의 발전에 대한 굴레입니다.

이질적인 외부 문화를 자기것으로 소화해내는 과정은 시간이 많이 걸리고, 또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국인의 입장에서 다행스런 점은, 수십년만의 단절 끝에 다시 대륙과 연결되는 이 시기에 한국은 중국동포들의 경험을 아주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한국이 다시 만나려고 하는 대륙은 수많은 한국인에게 정신적인 고향과도 같은 "삼국지"나 사서삼경 따위의 고전 속의 중국이 아닙니다. 험난한 근대사의 파도를 헤쳐왔고, 인민대중의 혁명과 새로운 사회의 건설 및 좌절과 방황, 새로운 모색의 숨가쁜 역사적인 체험을 하고 있는 역동적인 중국입니다. 중국동포는 비록 중국 사회의 주역은 아니었지만 현대 중국의 이런 체험을 속속들이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 분들이 문화와 삶의 경험에서 완전히 한반도인들과 일치하지도, 그렇다고 중국 주류민족의 것으로 동화되지도 않고, 양 쪽 요소가 적절히 뒤섞여 새로운 특질을 지니고 있는 것이 오히려 다행스럽고, 한국으로서는 그 점의 가치를 잘 인식하고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포들이 지닌 문화와 경험이 완전히 한족의 것과 동일하다면 한국인에게는 똑같이 생소할 것이고, 한민족의 그것과 완전히 동일하다면 한민족의 문화 자산에 보태지는 것이 없을 것 입니다. 그것은 한반도와 대륙 양쪽으로부터 구별되는 동시에 양쪽 모두와 연결되는 것이기에, 한민족 문화 자산에 보태지는 것이면서 대륙 문화에 대한 접근을 용이하게 해줍니다. 동포들이 한민족의 문화 토대에서 대륙의 문화를 수용하여 자신만의 것으로 조합해낸 경험은 한반도인이 대륙문화를 이해하고 소화하는 과정에서 치러야 할 시행착오와 시간낭비를 줄여 줄 것입니다.

동포들이 지닌 독특한 삶의 경험과 문화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인지, 필자가 직접 자세히 열거할 능력은 못됩니다. 큰 틀에서 그것은 "중국"과 "사회주의"라는 문화적 코드와 결부된 것들이라고 추측할 뿐이며, 어쩌면 그런 범주 바깥에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동포들은 자신이 지닌 그런 문화적 특질을 의식하고 있을 수도, 의식하고 있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동포들이 중국 내 다른 민족과의 비교를 통해 한민족으로서의 자신의 모습을 자각해왔듯이, 현재는 한국인과의 접촉을 통해 대륙 문화에 익숙한 자신을 재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동포들이 한국사회와 문화에 혹시라도 위축되거나 주눅들지 말고 적극적 으로 그런 것들을 찾아내어 떳떳하게 알렸으면 합니다.

그런데 그런 문화적 특질은 그 동안 충분히 의식되지 않았던 것이기에 금방이라도 내놓을 수 있을 만큼 이미 완성된 형태로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으며, 그래서 원석에서 보석을 가공해내듯, 정제와 의미부여의 수고스런 과정이 새롭게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또 어쩌면 그 이전에, 도대체 있기는 한가, 라는 고통스런 자문에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쨌건 그 결과에 대해서 낙관합니다. 두 민족사회는 각자 다른 역사경험을 지니고 있는 이상 서로에 대해 거울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서로에게 유익한 경험담을 이미 준비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각 방면에서 동포사회를 이끌어가는 주역들이 뚜렷한 목적 의식 아래 그런 일을 했으면 합니다. 그러한 작업은 일차적으로 동포사회가 문화적으로, 사상적으로 그 어떤 외부 영향으로부터도 일방적으로 휘둘리지 않을 자신만의 정체성을 굳건히 세우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다음으로 동포사회와 한국사회가 보다 대등한 위치에서 직접적인 경제의 필요를 떠나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함으로써 서로를 충분히 이해하고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준비를 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동포사회와 한국사회의 만남과 교류가 문화에서도 플러스 효과를 낼 때가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런 작업을 통해 정리되고 다듬어진 동포사회 독특한 문화적인 내용은 크게 보아 전체 한민족 문화의 심화, 확대에 커다란 보탬이 될 것입니다.


/ 홍건영, 인터넷 "예문 연변통신"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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