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애 -? 나 (웬만컹 HK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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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애 -? 나 (웬만컹 HK 수기)
  • [편집]본지 기자
  • 승인 2008.1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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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부 외국인근로자 고용/ 취업 미담수기 공모전 장려상)

오후 5시, 두 시간 동안의 언어 & 문화 수업을 마치고 센터를 빠져나왔다.

두 시간 수업은 길었지만 아마도 그애는 피곤한 기색이 전혀 없어보인다.

반대로 그애의 입가엔 미소가 번졌고, 눈빛은 평상시보다 훨씬 환해 보였다.

그애의 온몸으로 뭔가 기분 좋은 느낌이 펴져가고 있는 것이다.

맞다! 그애는 지금 살고 있고, 몸담고 일하고 있는 이곳의 풍습들 그리고 이곳 사람들에 대해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된 흥미로운 공부시간으로 즐거워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애는 하늘을 쳐다보며 크게 숨을 들이키고는, 분주한 거리의 사람들속으로 길게 한걸음 한걸음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애의 모습은 서서히 멀어져만 가고, 그 뒤로 커다란 빈자리만이 남겨진다.

오후의 여름 햇살은 아직 밤에게 양보하기 싫은 듯, 여전히 따사롭기만 하다.

3년전, 여름 날, 그애는 스스로 자립하여 일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삶을 시작하기 위해, 한국이라는 나라, 이 곳에 발을 내디뎠다.

가족과 고향을 떠나 처음 시작했던 그애의 삶은 그저 어리둥절하고 낯설고 또한 기억할만한 많은 이야기 거리를 남겨주었다.

그 얘기는 그애가 Koilap센터에서 회사로 가는 길에서 처음 시작된다.

하루는 회사정식직원이 되기 위해 서류사인과 확인 등 갖가지 서류절차와 일대 씨름을 벌인 후 (씨름을 벌였다고 말하는 이유인 즉, 그애는 한국어를 전혀 하지 못했고, 예전에 학교에 다니면서 배웠던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영어문장 3개만을 더듬더듬 거리며 할 뿐이었다) 식당으로 가게 되었다.

기나긴 여정이 끝나고 그애의 배는 이미 고플 대로 고픈 상태였다.

그런데 아마도 이 식당에는 그애의 입맛에 맞는 메뉴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음식마다 모두 고추가 들어가 있는데, 그애는 매운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

결국 그애는 한국에서 가장 보편적인 음식으로 많이 들어왔던 라면과 김치, 이 두 가지를 먹기로 결정을 내린다.

라면 한 그릇을 먹은 후 그애의 얼굴은 불긋불긋해지고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버린다.

그애의 첫 번째 식사는 매운맛과 열기를 식히기 위해 두 잔의 냉수와 부엌에서 나오는 귀에 낯설은 웃음소리로 끝이나 버린다.

그래도 다행히 다음날은 일요일, 회사가 쉬는 날이었다.

그날 아침 일찍 일어나 회사주변을 돌아다니며, 여기저기 구경을 했다.

막 알게 된 회사직원인 인도네시아 사람이 그에게 이것저것 알려주기도 했다.

그리고 순간 그애의 배가 미치도록 고파오기 시작한다.

어제 먹었던 라면이 그애의 배고픔을 참기엔 부족했던 모양이다.

그애는 시장을 생각해냈다.

“ 아마 시장에 가면 맵지 않은, 뭔가 먹을 수 있는 게 있을 거야. 거기서 어제처럼이 아닌, 내 맘대로 음식을 골라서 배부르게 먹어야지 “

그애가 알고 있는 온갖 손짓, 발짓을 다 동원해서 인도네시아친구에게 내가 시장에 가고 싶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래서 그애는 시장으로 가게 된다.

그런데 그애가 가고 싶었던, 고향에서 보아왔던, 사람들이 없는 게 없이 다 내다 놓고 팔던 그런 시장, 어느 곳에서나, 한 사람이 하나의 물건을 놓고 손님을 불러 파는 그런 내가 알던 시장과는 달랐다.

여기는 조그만 마트였다. 주인은 카운터에 앉아있고, 가끔 한 두 명의 직원이 손님이 다 사서 없는 물건을 채우거나, 어질어진 물건들은 정리할 뿐이었다.

없는 물건은 없었다. 하지만 물건을 사려면 선반 위에 진열된 물건을 직접 골라다가 계산을 해야 했다.

그런데 그애가 배고플 때 늘 즐겨먹었던 음식, 계란후라이에 절대 빠질 수 없는 식용유를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가 않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 식용유병이 놓여진 곳을 찾아내었다.

한 병을 쥐어 들고 뭔지 읽으려고 했지만, 마트 안 모든 글자들은 온통 한국어로 되어있었고 Cooking oil 이란 글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 한 병을 골라 사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그건 잘못된 선택이었다.

그 사실은 기숙사로 돌아와 그 병을 들이붓고는 계란후라이를 힐 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예전부터 익숙하던 그 냄새, 그런데 이게 식용유란 말인가 ?

열이 뜨거워지자 그 냄새는 점점 더 심해져 갔다.

지금은 매번 식용유를 사러 가야 할 때마다 그 때의 일을 떠올리게 된다.

그건 식초였다.

아마도 누구라도 그애처럼 낯설고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해 살아야 한다면 이런 일을 쉽게 경험할 수 있는 것 아닐까? 그것 뿐만이 아니다.

하루하루의 일들과 생활 속에서 느꼈던 당황스럽고 어리둥절한 갖가지 경험속에서 여러가지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고 익숙해져 가게 할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 식초와 식용유를 혼동하지 않고, 일도 더 잘하게 되며, 예전처럼 손짓, 몸짓으로가 아닌, 하고 싶은 말을 말로써 표현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그리고 점점 이곳의 사람들과 삶에 적응해 가는 것을 느끼게 해줄 것이다.

또한 그애는 좀 더 자신감을 가지게 될 것이다.

계속되는 이야기도 그 자신감에서 비롯된다.

그애는 친구가 병이 나서 문병을 가야 할 때가 있었다. 버스를 타고 가야만 했다.

그애는 친구가 살고 근무하고 있는 덕천지라는 곳을 가기 위해, 길을 나서 덕천지까지 가냐고 물어보고 차에 올라탔다.

하지만 차가 한참 달렸는데도 불구하고 도착하질 않는 것이었다.

그는 걱정이 되어 운전사에게 다시 물었다. 운전사는 그애가 가는 곳에 도착할 것이라고 장담하는 말에 한편으로 안심이 되었다.

결과는 친구가 일하고 있는 곳이 아닌, 어딘지도 모르는 먼 어딘가에 도착했다.

그애는 비가 오는 그날, 그저 조용히 다시 돌아가야만 했다.

친구의 문병을 가질 못해서, 주소를 정확히 물어보지 않은 자기 자신에게 화가 단단히 났다.

빨리 한국어를 배워야 하겠다는, 어서 그애가 살고 있는 이 나라에 대해 공부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재촉하게 만들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덕천지는 오산 말고도 다른 곳에 또 덕천지란 곳이 있었다)

하지만 그날 길을 헤맨 사건은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절대 잊을 수 없는 하나의 추억, 에피소드의 원인제공이 되는 일이 된다.

그날 밤, 그애는 기숙에 꽤 늦게 돌아왔다.

차에서 보낸 기나긴 하루, 비까지 맞으며 다녔기에 좀 피곤했다.

그애는 내일 일찍 일어나야 했으므로 잠자리를 청했다.

다음날 아침, 알람시계가 울리고 그애는 일어나 늘 그랬던 것처럼 운동을 했다.

그런데 마치 뭔가가 나를 잡아당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온몸이 쑤시고 머리는 무겁기만 했고 입은 쓰디썼다.

병이 난 징조였다. 그애도 아는 것이 이전에 여러 번 아팠기 때문이다.

“ 하지만 그애는 오늘 꼭 출근을 해야만 했다. 쉴 수가 없었다 “

그 생각에 그애는 일어나야만 했다. 침대에서 빠져 나와야만 했다.

두 세어 발자국 걸었을까 그애는 고꾸라지고 만다.

열이 심하게 올랐다. 당연히 가만히 누워있는 것 외에는 다른 어떤 일도 할 수 없었다.

그애는 침대로 가까스로 돌아와 쓰러져 잠이 든다.

그애는 일을 쉴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 회사에서 일을 시작한 이후, 근무를 쉬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날 하루 종일 그애는 누워서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몸은 피곤하고, 더군다나 휴무허락도 받지 않은 그애가 내일 조장과 맞부딪힐 생각을 하니 걱정이 되었다.

그 사람은 엄격하고 성격이 급한 사람이었다.

한번은 우리 조의 물건이 불량이 나서 납기일을 지키지 못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조장은 우리 조 사람들을 다 불러다 놓고 크게 꾸짖은 적이 있었다.

걱정은 현실이 되었다. 일을 하러 가야 하기에 겨우겨우 몸을 일으켜 힘든 발걸음으로 그애가 일하는 회사에 문에 발을 디딘 순간 그애를 맞이한 건 귀싸대기 아니 정확히 따귀가 맞는 표현일 것이다. 그리고 연신 고함과 꾸지람이 계속 되었다.

귀는 멍해지고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부글부글 끓어 올랐다.

그애는 돌아서서 부사장을 만나러 가기 시작했다. 만나서 왜 이해할 수 없는 이런 구타가 있을 수 있는지, 단지 아파서 출근하지 못한 것 때문에 맞은 건지 알고 싶었고 내 머릿속에서 오만 가지 생각들로 가득했다.

“ 그애는 아마 자존심을 건드린 이 회사에서 더 이상 일을 하지 않겠지? 회사에서 나올까.....” 그리고 동북아에 있는 한반도 사람들에 대한 나의 이미지는 성질 급하고 폭력적인 모습으로 변하게 되었다.

그애는 전화로 상담센터 직원과 통화를 할 수 있었고, 상세히 그 이유를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 조장이 직원을 때린 것은 잘못입니다. 하지만 먼저 병가신청을 하지 않은 본인에게 잘못이 있는 것입니다....“

이 나라 사람들을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인들은 업무의 효율을 우선시한다. 그들은 일을 완수하기 위해서라면 여가시간도 포기할 수도 있다.

이러한 의식과 태도가, 1962부터 1966에 실시한 공업화를 위한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함께, 한국을 놀라운 속도로 공업국가로 발전하게 만들었다.

90년도에 이르면, 공업분야는 세계가 인정할 만한 커다란 진보를 이룩하게 된다.

1990년은 세계에서 6번째로 큰 규모의 포항의 제철소를 보유한 국가가 되고, 연간

2백80만대의 생산량을 자랑하는 부산의 공업단지는 자동차생산량에서 세계 5위를 기록했으며, 현대, 대우와 같은 대기업들이 탄생하게 되었다.

사무실을 나서면서 설명하기 묘한 기분이 들었다.

여전히 조장의 따귀 한 대에 화는 나 있었지만, 이 나라사람들의 성격, 의식 그리고 습관에 대해서 이해가 좀 되었다.

지금 필요한 일은 앞으로 이 한국땅에서 계속 일하고 있을 시간을 위한 행장을 준비하는 것이다.

언제부터 기다렸을까...조장이 그애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조장은

“ 내가 성질이 급해서, 자네가 아픈 줄도 모르고 오해를 했네, 미안하네 ! “

라고 사과를 했다. 그애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미소를 지었다. 아마도 화가 풀린 것일까.. 어쩜 한국사람, 한국에 대해 한가지 더 알 수 있게 되어서 기분이 좋은 것 일수도 있겠다.

다혈질이지만 정감이 있다는 것을...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높고 푸르렀다. 햇빛은 온 세상을 찬란히 비추고 있었다.

그애는 자신감으로 가득 찬 채로 일터로 돌아갔다.

그애는 모든 것에 적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아마도 잘 해낼 것이다.

그애 아니 바로 저의 못다한 이야기는 아직 많이 있지만, 한국에서의 생활을 좀 더 강하고 성숙하게 해줄 수 있는 원동력이자 교훈이 될만한 몇몇 이야기들만 전해드리는 바입니다.

그럼 여러분들은요 ?

아마도 여기에 살고 있는 누구나 다 흥미로운 추억과 에피소드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이런 기쁨과 슬픔을 우리 모두 함께 나누어, 한국사람과 한국 그리고 한국풍습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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