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위있게 죽으련다!> (이정숙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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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있게 죽으련다!> (이정숙 칼럼)
  • 이정숙
  • 승인 2008.12.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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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어를 양지 바랍니다.]

"까마귀 하루에 열 두가지 소리를 하다 총에 맞아 죽을 소리를 한다"는 그런 쓰다쓰다 쓰는 엉뚱한 것도, 시추에이션도 아니다. 딸에게만 보여 줘야 될 "글"인데, 괜히 심적 부담을 주기 보담, 떠돌이로 사는 현실에(지금 세상에 집에 틀어 박혀 사는 사람 몇이 될가만) 맞게 연통="만천하"에 공개하고 포켓에 넣고 다니겠다.

"건강 상태. 에스트로겐 분비...모다 40대당!" 하고 두뇌가 뻥뻥 큰 소리 쳐도 몸은 그게 아니다. "나이 이기는 장수 없다"더니 얼마전 까지만도 커피나 차물이 목구멍으로 넘어가기 바쁘게 수억개의 세포가 흥분돼서 팔딱팔딱 뛰었고, 지속 시간도 너무 길어서 오후만 되면 절대로 커피씨랑 가까이 하지 않았다.

커피 한 잔에 "글" 한 편은 나왔는데, 이젠 정신집중이 안돼서 댓글도 버겁다ㅎㅎ 머리도 몸도 생산적이지 않고, 나태모드에 들어갈 태세이다. 萬一을 대비하고, 또 네 정신인지, 내 정신인지 헤롱헤롱해 지기전에 품위있게 죽기 위한 유서를 장황히 작성한다.

마음대로 못하는 것이 사람의 죽음이라는 걸 알면서도 한의사였던 외할아버지는 어머니를, 어머니는 나를 이렇게 세뇌 시켰다. "사람은 아깝다 할때 죽어야 돼!"

나는 딸에게 번번이 혼나면서도, 자매들에겐 "누군 언니보다 덜 똑똑해서 기어 가면서도 사오?" 하고 박살 맞으면서도 "가훈"을 전수하며 덧붙였다. "이렇게 씩씩하고, 아까울때 사망해야 돼 ㅎㅎ" 내 입술이 카리스마가 없어서 모두들 귓등으로 들으니 오늘은 흰 종이에 검은 글자로 나의 인격권, 안락사, 존엄사 결정권을 수행해 주기를 강력히 요구한다.

유전적으로 황소같은 체질을 갖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死神과 맞닥뜨려 본 적이 없어서인지 지금껏 공포는 커녕 죽음을 초개같이 여겨왔다. 오직 사회와 가족에 민폐를 끼치지 않고,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을려는 단세포적인 소망만이 있을 뿐이다.

반백이 되는 동안 하늘도, 땅도, 무엇도 겁나지 않았다. 두려운건 혹 불의의 사고를 당했을 때 깔끔치 못한 주거지로 자존심이 구겨지는 것이었다. 하여 길 떠나기 전날 밤엔 사형장에 나가는 사형수의 심정으로 항상 집안을 깨끗이 정리정돈하고, 옷가지들을 다시 차곡차곡 접어 놓았고, 서류 같은 것들을 한 곳에 모아 놓았다. 어수선한 집구석마저 보여줄 수 없는데 하물며 아무런 의미가 없는 치료로 목숨을 연장하면서 고통을 겪는 찡그린 오만상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건 나에 대한 고문이고, 학대이다.

自作多情인지, 多愁善感인지, 자존심 때문인지 남보다 흘린 눈물이 적지 않았건만 그 누구에게도 보인 적이 없다. 한국에 와서 허둥대며 일하다 한 두번만 다친 것이 아니었지만 주인들에게 티도 내지 않았고, 이를 옥물고 맡겨진 일들을 다 해냈다. "은밀"한 살갗 노출을 원치 않아서 딸애에게 수유하는 모습을 부모자매에게도 보여준 적이 없다. 그런데 약물에 의지해 가면서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과 눈물을 남에게 보이고, 내 옷이 아무렇게나 벗겨지는 것은 죽기보다 끔찍하다. 안락사가 좋다. 인격적으로 살고 존엄하게 죽을란다.

아픔에 대책이 없어서 몸에 박힌 작은 가시 하나 뽑으려다도 몸서리 쳤다. 그러다 보니 딸애의 젖니도 병원에 가서 발치했다. 엄마로서의 임무 완수도 다 하였고, 꼭 지켜야 할 자리도 없는 마당에 단순한 생명 연장을 위한 혹독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은 감내 못한다.

그러니 병원이 아니라 호스피스나 全託院에 도움을 받을 것이며 치료약물이 아닌 수면, 통증완화 약물만 투여받길 바란다. "부귀영화" 나, 長壽가 부럽지 않다. 내가 존경해 마지 않는 바오르 2세처럼, 김학철옹처럼 병원치료를 거부하고 아름답고 품위있게 죽는 것이다.

아프고, 불편해서 흉한 모습으로, 애들이 놀랄 무서운 늙은 상으로, 자립도 못하면서 끈적끈적하게 앉아 버티기를 하지 않겠다. 불의의 사고로 식물인간이 되거나, 의식이 없거나, 불치의 병, 노환, 뇌졸증 등으로 쓰러지면 소생, 회복 가능성이 있든 없든, 절대로 병원에 호송 말라! 혹 병원에 실려 갔더라도 당장에 치료를 중단하라!

절대로 호흡기를 끼우지 말라! 일체 의료기계장치를 내 몸에 부착 말라! 응급 심폐소생술을 거부한다. 수술치료를 거부한다. 의사의 의학적 진단을 위해 내 몸이 이리저리 굴려지는 것이 싫다. 치료약물, 영양공급, 배설을 위한 노즐을 내 몸에 절대로 꽂지 말라! 고통만 더 해줄 생명유지 조치를 일절 취하지 말라! 이를 어기면 효도가 아닌, 불효이고, 모욕이다.

우아하고 화사하게 한 하늘 가득 피었다 질때면 누더기 같고 지저분하게 나무가지에 걸리고, 길바닥에 나뒹굴며 짓밟히는 목련꽃이 되지 않으련다. 나지막이 피었지만 그 커다랗고 아름다운 붉디붉은 겹꽃송이 그대로 장렬하게 땅에 툭 떨어지는 동백꽃이 되고 싶다!

몇년전 극동방송에서 AB형 피가 급히 수요된다기에 당장에 전화를 했는데 나이가 많아서인지 냉대를 받았다. 한번은 돌보는 애를 데리고 문이 열린 헌혈차 앞을 지나게 되었다.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지나칠 수 밖에 없었음이 지금까지 앙금으로 남아있다. 62세까지 헌혈이 가능한 걸로 아는데 꼭 "소원성취"하련다.

사랑의 장기기증에 자세히 기입하여 우편으로 보냈건만 외국인이라서 그런지 강물에 돌 던진 격으로 회답이 오지 않았다. 그 어느날엔가 한국에서 呜呼하게 되면 꼭 나의 모든 장기, 피부까지 수요하는 사람에게 기증하라! 나머진 無機物로 化한후 강물에 뿌려주기 바란다.

여자는 문텩 하나를 넘으며 열 두가지 생각을 한단다. "사람마음이 아침저녁이라" 죽음에 앞서 몇 십년 동안의 "신념"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 나이들어 갈수록, 가치가 없을 수록, 정신을 놓을수록 생의 끈을 놓지 않을려는 본능에 휘둘릴가 끊임없이 자신에게 최면을 걸 것이다.

돌이켜 보매 한국, 중국이란 두 나라와 가족, 지인들의 덕분에 아쉬움 없이 살아왔다. 가족과 친지들에 사람짓 할려고 내딴엔 애썼다. 딸애와는 트러블을 몰랐고, 마음 빚을 지우지 않으려고, 발이 닿는데까지 모두 다녀왔다. 오늘에라도 숨을 거둔다면 애통할것 전혀 없다. 흰 꽃 한 송이면 족하다.

벼르던 유서를 마무리니 마음이 깃털처럼 가벼워 진다. 오늘 교회에 가서 내 딸과 내 가족, 모든 이들의 충실한 생활, 건강, 행복을 위햐여 기도 드리련다. 자랑스런 일중독자로서 움직일 수 있는 한 "현역"으로 살 것이며, 남은 삶을 즐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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