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지명 사전을 직접 만들게 된 사연(김성진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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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지명 사전을 직접 만들게 된 사연(김성진 수기)
  • [편집]본지 기자
  • 승인 2008.1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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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졸 후 한동안 번역회사에서 신인 트랜슬레이터로 활약할 때 있은 일이다. 번역작업을 하면서 한국 지명을 중국어로 정확하게 옮기기 위해 애간장을 태운 적이 있었다. 그 시적 중국 시장에는 아직 한국지명관련 책자나 사전이 출시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참조할만한 자료조차 찾아보기 어려웠다.
 
많은 역자들이 쉬운 한자로 발음만 맞추어 대충 번역해 납품하던 시절이었지만 훗날 두고 양심의 가책을 느낄 일이라 차마 그렇게는 할 수 없었고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부탁해서 "행정구역편람"이라는 지명관련 책자를 입수해서 요긴하게 활용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 책자도 사용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동부리"와 같이 상위 지명이 빠짐없이 명시된, 온전한 지명은 그 한자 대역을 찾기가 별로 어렵지 않았지만 (대역은 "慶尙北道 榮州市 豊基邑 東部里"임: 필자 주) 뉴스나 드라마에서 자주 보는 것처럼 그냥 "영주 동부리"나 "풍기 동부리" 심지어는 "동부리"와 같이 상위 지명이 제대로 명시되지 않은 지명을 한자로 옮겨야 할 경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영문으로 된 한국지명을 중국어로 옮기거나 한글로 옮길 때에도 동일한 애로사항에 직면하군 하였다.
 
그 후로 시중에 한국 지명 관련 책자들이 몇 권 출시되기는 하였지만 확인 결과 똑같은 문제점들을 지니고 있었고 수록한 지명의 수효 또한 턱없이 부족했다.
 
이러한 불편사항을 감수하고 있는 와중에 홍콩을 비롯한 중국내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포털 사이트 등 매스컴들에서는 천태만상으로 오역된 한국지명들을 심심찮게 송출하고 있었고 그것을 지켜보면서 번역인들의 무책임성에 재삼재사 놀람과 동시에 실용성이 강한 한국지명사전이 하루빨리 고고성을 울리지 못하는 현실을 개탄하게 되었고 그것을 계기로 지명사전을 직접 만들어 보고 싶은 생각이 주뼛주뼛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곧바로 자료 수집과 정리에 들어갔고 밤을 새우는 주야겸행의 나날들이 이어졌다. 보완하고 수정하고 에디팅하기를 일년 여, 수록 어휘 9만여 개의 한, 중, 영 스리웨이 검색 지원 "한국지명사전"이 끝내 빛을 보게 되었다.
 
이 사전을 이용하면 상위 지명에 의지하거나 얽매일 필요 없이 면(面) 단위, 동(洞) 단위, 리(里) 단위의 지명을 바로바로 중어, 영어 또는 한글로 번역할 수 있어서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실례로 "초일동"이나 "초부리"의 경우 상위 지명이 명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시중에 유통 중인 기존의 책자들을 가지고는 그 한자 대역어를 찾기란 검불 밭에 수은 찾기, 잔디밭에 바늘 찾기나 진배없는 일이지만 필자가 펴낸 상기 사전을 이용하면 "草一洞", "草芙里"라고 그 정답이 바로 나온다.
 
이 사전을 만들고부터는 한국 뉴스를 읽거나 드라마를 볼 때 한가지 습관이 더 생겼다. 지명에 부닥칠 적마다 그 한자 대역어를 꼭 확인해 보게 된 것이다.
 
출장 차 한국을 자주 드나들게 되지만 서울은 말할 것도 없고 부산, 제주, 진주, 청주,  군산, 원산 등 지방 도시들을 들를 적마다 한가지 취미가 더 늘었다. 먹고 자고 상담하고 구경하고 쇼핑하고 엔조이하는 곳마다 명함이나 팸플릿 또는 브로슈어를 수집해 두었다가 해당 지명의 한자 대역을 일일이 확인해 보는 것이 게싱 게임(猜谜游戏) 못지않게 재미있었다. 나도 모르게 토퍼님 마니아(地名迷)가 되어가고 있었다.
 
지명사전을 만들고 나서부터 한국의 메인 뉴스 페이퍼들도 심심찮게 지명 오타를 그대로 내보내고 있는 실정에 놀랐다. 며칠 전에도 "여주 전봉리"라는 지명이 뉴스에 떴는데 확인 결과 점봉리(店峰里)를 리포터가 "전봉리"로 잘못 듣고 기사로 작성해서 그대로 내보낸 것 같았다.
 
중국의 출판물 시장을 조사해 보면 미국지명, 일본지명, 러시아지명 등에 관한 거의 완벽에 가까운 타국의 지명대역사전들이 이미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실정이지만 인접국인 한국에 한해서만은 아직도 제대로 된 지명사전 하나 찾아볼 수 없는 게 안타까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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