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申 吉 雨
문학박사, 수필가, 국어학자,
서울 서초문인협회 회장 skc663@hanmail.net
거리에서는 여러 사람들의 뒤를 따라가게 되는 경우가 많다. 복잡한 길이나, 퇴근 무렵의 거리에서는 어쩔 수 없이 남의 뒤를 따라 걸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때에 뜻하지 않은 공해를 겪곤 한다. 술취한 사람의 뒤를 따라가면 술냄새에 안주냄새까지 맡아진다. 어떤 경우에는 감지 않은 머리냄새가 느껴지기도 한다. 바람이 앞에서 살살 불어 주는 때에는 입냄새, 방귀냄새에, 드물게는 앞 사람의 몸냄새까지 맡아지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성장한 여인의 진한 화장냄새도 맡는다. 화장품이나 향수 같은 냄새야 향긋하고 좋을 것이라 할지 모르지만, 어찌 맑고 신선한 공기의 맛을 따를 수가 있겠는가.
그러나, 이러한 냄새들은 대부분이 어쩔 수 없이 나는 것들이다. 모두가 사람들이 살아가느라고 생기는 것들이니 불평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니 별수 없이 참고 맡는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런데, 담배연기는 이와는 다르다. 우선 살아가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풍겨지는 것도 아니고, 또 꼭 그래야만 살게 되는 것도 아니다. 오직 피우는 사람 자신의 기분을 위해서, 때로는 심심해서, 또는 버릇이 되어서 무의식적으로 그러는 것이다.
더구나, 그것은 자신의 건강을 해칠 뿐만 아니라 주위의 사람들에게까지도 나쁜 영향을 주고 불쾌감을 일으키게 하는 일이니 더욱 문제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담배는 끊고 싶어도 끊을 수가 없다는 변명으로 그냥 보아 넘겨줄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담배는 어디까지나 기호품이다. 따라서, 좋아하는 사람은 즐겨 피워야 되겠지만 싫어하는 이들은 피우지 않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담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담배를 피울 권리가 있다면, 피지 않는 이들에게도 담배연기를 맡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본다. 못 마시는 술이나 싫어하는 차를 강제로 먹이려 들지 않듯이, 담배연기도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어쩔 수 없이 맡게 해서도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한다. 직접흡연에 못지않게 간접흡연의 해로움도 크다는 사실은 잘 알려진 일이다. 내가 좋아한다고 해서 남이 싫어하는 일을 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그런데, 오늘날의 흡연 모습을 보자. 기차역이나 버스 터미널의 대합실은 많은 사람들이 복작대어서 공기가 혼탁하기 마련인데, 담배연기를 마구 뿜어내고 있어 뿌연하다. 음식점이나 술집, 다방 같은 곳도 대개 마찬가지이다. 재떨이까지 놓여 있기도 하다. 공중 장소에서의 금연 시대가 오려면 아직은 까마득하게만 여겨진다. 그래도 이런 곳들은 대개 공간이 넓고 또 이미 그렇게 사는 곳으로 인식되어 왔으니 지금으로서는 그냥 넘겨 둘 수밖에 없는 일이다.
어떤 이들은 병원의 대기실에서도 담배연기를 뿜어낸다. 해소병이나 감기로 기침을 자꾸 하고 있는 환자가 근처에 있어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이다. 심지어는 아기들의 산실 복도에서도 담배를 피우는 사람까지 있다.
앞에서 20번 좌석까지는 엄연히 금연석이라고 표시되어 있으며, 안내자가 그것을 방송으로 강조하여 주는 고속버스 안에서도 아직도 나 몰라라는 듯이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있다. 차내에서는 금연할 것을 권하는 택시를 타고서 짜증을 내는 승객도 있다고 한다.
담배는 일정한 곳에서 피우는 것이 상식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일정한 곳이 아니면 최소한 한 장소에서 피워야 할 것이다.
그런데, 거리를 나가 보면, 걸어가면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앞서가는 사람이 피우는 담배연기를 별수 없이 맡게 되는 경우가 많다. 가끔은 뒤따라가는 사람이 담배연기를 피하려고 빠른 걸음으로 앞질러 가거나 좌우로 피해다니며 걷는 모습도 본다. 흔들고 가던 담뱃불에 데인 사람에게 사과하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담배를 피우며 가는 사람은 이런 어려움을 알지 못한다. 오히려 한 장소에서 피우는 것보다는 더 넓은 공간에서이니 더욱 잘 연기가 흩어질 것으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뒤따라가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계속 풍기는 연기를 따라가며 마셔야만 하는 일이니 난처하기만 하다. 차라리, 한 장소에서 나오는 공해 공기라면 그곳을 피하거나 지나치기만 하면 될 일이니 더 낫다.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 행하는 가지가지의 수많은 행위들로 말미암아 자연히 당하는 인간 공해만 해도 엄청나게 많고 크다고 생각되는데, 이런 담배연기의 공해까지 옮겨 다니면서 아무데서나 뿜어내는 공해인간이 되어서야 되겠는가? 그리고, 자신이 자신도 모르게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또한 한두 가지가 아닐 것으로 여겨지는데 이러한 하찮은 일 하나로 남들에게 또 다른 피해를 주어서야 되겠는가?
인간 공해가 자꾸만 커 가는 오늘날에 있어서는 큰 공해만을 걱정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 어쩌면 작은 공해부터, 또 쉽게 없앨 수 있는 공해부터 제거하는 일이 더 중요할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일은 내 자신이 바로 공해인간이 아닌가 생각하여 볼 일일 것 같다.
오늘은 거리에서 또 얼마나 많은 공해인간들을 만나야만 할까? 이렇게 살아가는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이 자꾸 부끄럽게 여겨지기만 한다. (1987년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