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申 吉 雨
문학박사, 수필가, 국어학자,
서울 서초문인협회 회장 skc663@hanmail.net
신혼 시절에는 누구나 둘이서만 있기를 바란다. 서로가 좋아하는 마음으로 함께 살아가는 시기이므로,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는 모든 것이 새롭고 재미있기만 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만남 그 자체만으로도 기쁨인 것이다. 그럼으로, 함께 하는 모든 일이 신선하고 신기하며 매사가 재미있고 즐겁기만 하는 것이 신혼이다.
따라서, 이때에는 둘 사이에 누가 끼이는 것이 여간 부담이 되는 게 아니다. 부모님이나 형제들이 찾아와도 반갑기만 할 수가 없다. 어쩌다 자고 가야 할 경우라도 되면, 더군다나 단칸방일 경우에는 그 불편함과 부담감이 얼마나 큰지 모른다.
그러나, 사람이 사는 곳에 찾아오는 사람이 없을 수 있는가. 더구나, 신혼부부일 경우에는 보고 싶어서도 오고, 걱정이 되어서도 오고, 일러 주고 도와주려고도 오며, 무엇을 갖다 주려고도 온다. 이미 안정이 된 가정보다는 인생의 새 출발을 내디딘 신혼 가정에 관심을 더 갖고 더 찾아보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신혼부부들은 어떻게든 방을 두 칸을 쓰려고 한다. 다른 가구들은 장만을 못 해도 작은 방이라도 하나 있는 두 칸짜리 방을 구하려고 애를 쓴다. 형편상 어쩔 수 없는 경우도 많지만, 마음으로는 누구나 단칸방을 피하려고 한다.
그런데, 요사이에 와서는 이러한 의식이 바뀌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신혼 시절에는 오히려 단칸방을 쓰기를 바란다. 단칸방은 아기를 낳은 뒤에라야 벗어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근래에는 복덕방마다 규모가 큰 단칸방을 찾는, 결혼을 앞둔 사람이나 신혼부부들이 훨씬 많아졌다고 한다.
얼마 전에 제자의 결혼식에 주례를 맡게 되어 예식장에 갔을 때의 일이다. 신랑 친구의 안내로 주례 대기실에 들어서니 세 분이 담소를 하다가 들어오라고 권해 왔다. 이미 차도 한 잔 마신 뒤이고 아직 시간도 20여분은 넉넉히 남아 합석했다.
그런데, 한 분이 이런 말을 하였다.
“복덕방을 하는 친구가 그러는데, 요새 신혼부부들은 방을 얻는 데도 커다란 방 하나짜리를 찾는대요.”
생각잖은 이야기에 다른 분이 바로 그 이유를 물었다.
“자기네 편한 것만 생각해서이지요. 큰 방 하나에 필요한 가구들을 다 들여 놓고 지내면 둘이 사는 데에 뭐가 부족할 게 있겠어요. 손님이라도 오면 단칸방인 줄 뻔히 알면서 누가 자고 가겠다고 하겠고, 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가 와도 한 방에서 며느리 내외나 사위 부부 틈에 끼어 자고 갈 수가 있겠어요? 그러니, 신혼부부들이 단칸방을 좋아할 수밖에 없지요.”
“허 참, 정말 세상 많이 변했군.”
“우리 때는 방만은 어떻게든 두 개짜리를 얻으려고 했었는데, 그래야만 손님을 치를 수가 있었잖아요?”
이야기를 꺼낸 분이 설명하듯 말했다.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지요. 그날 왔다가 그날로 갈 수나 있었나요? 그렇지만, 요새야 당일로 왔다가 얼마든지 당일로 갈 수 있잖아요. 따라서, 단칸방을 쓰는 아들네나 딸네 집에 왔다가 자고 간다고 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 신혼부부들이 뭣하러 방을 둘을 쓰겠어요.”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요새 젊은이들의 지나친 약삭바름에 혀들을 찼다.
“그런데, 아기가 생기면 달라져요. 그 때에는 두 칸짜리 방을 찾는대요.”
처음 이야기를 꺼낸 분이 계속 말했다.
“요새 젊은 부부들은 맞벌이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어린애가 생기면 서둘러서 두 칸짜리 방을 얻어 이사를 한다는 거요. 그리고는 친정어머니나 시어머니를 모시려고 여간 애를 쓰는 게 아니래요.”
“어머니를 모시는 건 귀찮지 않은가?”
다른 분이 마치 항의나 하듯 말했다.
“그게 아니고, 어린애 때문이지요. 둘 다 직장에 나가면 아기를 봐 줄 사람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러니, 친정어머니나 시어머니가 와서 길러 주면 손주 아기이니 얼마나 잘 해 주겠으며, 또 자기네들은 나이든 부모님을 모시고 산다는, 요새 젊은이들과는 다른, 효성스런(?) 부부라고 남들에게 비쳐지게 되니 그 얼마나 좋은 일인가요, 일거양득이지. 그러니, 어머니를 모셔 가려고 야단들이랍니다.”
“순전히 저희들만 생각하는구만.”
“그래서, 어머니에게 잘 보이려고 자주 찾아가기도 하고, 테레비도 따로 들여 놓고, 오디오나 비디오까지 사는 등 노인들이 좋아하는 기구들을 다 들여 놓고서는 어서 오십시오 한다는 거요. 그래도, 월급을 주며 가정부나 보모를 쓰는 것보다 지출도 적고 또 마음도 훨씬 든든할 테니 누가 안 그러겠어요.”
“정말 이기주의적이야.”
“이기적이라기보다는 타산적이지요. 인정이 그만큼 메말라졌다는 겁니다. 주례사 할 때, 처음부터 방을 둘을 얻으라고 해야겠어요. 사람이 사는 데에 오고가는 맛도 있어야지, 안 그래요?”
이 말에 모두들 동의하며 크게 웃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요새 젊은 부부들이 이들의 깊은 뜻을 얼마나 헤아릴 수 있을런지, 이들의 걱정이 걱정이 되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마음속으로 빌면서 나도 주례석으로 발길을 옮겼다. <1993. 11.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