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 과 "신선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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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과 "신선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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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4.04.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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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사람:김월의

봄꽃이 활짝 피는 4월이면 나는 진한 그리움에 젖어든다. 진달래가 만달했던 고향집 뒷산이 그립고 도막나무로 짓는 솥가마 밥 냄새가 그립고 그림같은 초가집울안 해당화나무가지에서 즐겁게 지줄대던 새들이 그립다. 할아버지가 식구들을 이끌고 정착한 어느 조용하고 깨끗한 동네였고 조선의 난민들이였지만 그나마 윤택한 삶을 영위하였던 고장이다.
조선족 200여호 가운데 한족이 딱 한집이 끼여있었다. 현재는 물론 조선족이 10%로도 남아있지 않다. 고등학교까지 내가 나서 자란 고장에서 우리말로 마치고 도회지에 있는 대학교에 가던 날 기차안에서 벌어진 대화이다.
중국인이 나에게 문의:<니쓰 쌘쭈마?>
나의 대답:<뿌~쓰, 워쓰 초쌘쭈!>
뜻인즉 <넌 선족이냐> 하고 묻고 나는 강하게 부인한다.<아니요 난 조선족이요!>
나의 아비에게서 들은 말인데 <조선족을 선족이라 부르는 것은 욕이다, 고려떼거지라는 의미가 들어있으니 어디가나 조선족이라고 밝혀야지 선족이라 하지말아라. 특히 이력서에다 민족을 밝힐때에는 반드시 조선족이라 적어야 한다.>
그 말의 진위를 증명하기 위하여 역사자료를 뒤적여 <조선족>을 왜서 <선족>이라 부르지 말아야하는지 정답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조선족>이란 명칭은 고조선나라이름에서 유래되어 우리 민족의 명칭가운데서 역사적으로 가장 오랫동안 사용되여 왔다고 자료는 밝히고 있다.
<선족>이란 말은 일제통치시기 일제가 우리의 민족의식을 말살시키고 우리 민족을 동화시키기 위하여 조작해낸 소위 <내선일치(內鮮一致)>니 하는 잠꼬대에서 생겨난 것으로 <선족>이란 말은 모멸과 적대의 감정이 포함된 조선민족에 대한 멸칭이다고 자료는 밝히고 있었다.
아비의 해석이 조금 빗나간것 같지만 사실 일제하의 조선 백성이 살길을 찾아 대거 이민을 왔거나 그전에 비옥한 북간도땅에 <월강죄>를 범하면서까지 모려들었으니 고려떼거지라는 욕을 들어가면서 살아왔던 아비의 한 맺힌 마음을 읽을수 있을 것 같다.그 말씀을 들은 이후로 나는 "선족"이란 표현을 단 한번도 쓴적이 없다. 중국은 56개 민족이 어우러져 사는 다민족국가라 이력서나 모든 서류에 민족을 밝히는 것은 필수사항이다.
몇해전만 해도 중국에서 "조선족"이란 명칭은 자랑스럽기만 하였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우리말 학교에서 우리말을 공부하면서 살아온 조선족들은 여러 민족문화의 교차현상속에서도 민족주체성을 지켜왔다는 점에서 강한 민족자부심을 품고 똘똘 뭉쳐 살아온 사람들이다. 56개 민족가운데서도 교육열과 교육수준이 단연 일위를 차지한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소를 팔아서라도 자식 공부시키는 근성을 난민으로 남의 땅에 발을 붙이고 살면서도 고스란히 지켜온 터에 뛰어난 민족주체성을 유지하는 우수한 민족으로 떳떳하게 조선족사회를 이루고있었다.
조선민족이라는 우월성을 가지고 살아왔던 터에 중,한수교를 제일 기뻐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조선족이었다. 헌데 한국에 다녀간 모든 조선족들이 공통하게 인식한 점이 한가지가 있다, <한국에 갈때는 조선민족이였는데 도리어 중국사람이 되어 돌아왔다.>는 것이다.
처음에 한국에 왔을 때 있은 일이다.<밥상머리에서 자리 옮겨가며 밥 먹으면 시집 두 번 간다더라> 동행한 친구에게 농을 한적이 있다. 근데 그동안 우리를 보살펴주고 많은 관심과 혜택을 주셨던 분이 하시는 말씀 <어? 그거 우리나라 속담인데, 중국에서도 우리나라 속담을 쓰나?>
그 한마디는 부모님을 뵌것처럼 반가웠던 그분과 우리의 사이가 중국과 한국이라는 이역만리의 사이라는 점을 깨닫게 해주는 순간이었다. 같은 조선민족으로써 대의까지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끈끈한 정으로 이어져있다고 생각했던 고마움이 산산이 부서지는 순간이었다.
나로서는 충격 그자체였다. 중국 나랏돈으로 대학까지 나오면서도 나는 중국사람이라고 생각해본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중국에서 살고있지만 소수민족으로써 분명히 자기 모국을 가지고 사는 민족으로 늘 자부심과 긍지감을 가지고 살아왔던 것이다.
충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연변의 방송사와 우리말 웅변대회를 주최하신다는 교수님 한분이 조선족 불법체류자니 중국조선족사회가 너무나 폐쇄적인 교육을 진행하여왔다는 등 한국은 "세계화"를 실현한지 언젠데 아직도 편협한 "민족주의"에 얽혀 중국사회에도 적응하지 못한다는 등 하면서 전체 조선족사회는 무식하다는 표현을 거침없이 역설하는 것이었다. 물론 사적인 자리에서 술이 거나한 상태에서였으나 도저히 용서가 되질 않았다.
그 교수님의 취중진담덕에 <조선족이라면 현재의 조선에서 건너간 사람이거나 아니면 조선과 더 친하게 왕래하기 때문에 조선족으로 불리는 것 아닌가?>하는 질문에는 충격을 받지 않을 수있었다. 중국에서는 남북분단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였던 것이 부끄러웠고 남북분단이란 얼마나 아프고 긴 고통의 시간이였는가를 절실히 느낄수 있었다. 지금은 그 교수님에게 오히려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서로의 입장차이와 상대방의 입장에서 문제를 생각하는 지혜를 키울수 있게 되었으니깐.
중국에 살고있는 조선족들의 마음에 현재의 한국에서 건너간 윤동주 시인이나 현재의 조선출신인 조기천시인이나 조선민족의 유명한 시인으로써 같은 나라사람으로 착각하고있었으니. 현재에도 이남출신이던 이북출신이던 일제의 치하에서 민족의 기상을 떨쳤던 사람들은 조선족 학교교과서에 나란히 자리잡고 민족정신과 얼을 불어넣고있다.
유명한 시인 윤동주시인이 지금 살아계시다면 현재 유명한 중국 조선족 시인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었을 것이다. 또한 현재 한국에서 왕성한 창작활동을 벌이시는 황석영작가님도 중국에서 생활하고 계셨더라면 조선족으로 주민등록이 되어 있을것이다.
조선족문제를 안고 고민하는 한국 현실에서 그분들을 한국국민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한 것은 거의 같은 시기에 중국에 이주한 동포1세나 그 후예들의 귀속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좋은 선례가 될 수있지 않을가 싶어서이다.
또한 중국에서 무너지고 있는 조선족 사회를 다시 구축하는 일은 단지 조선족자체의 과제만은 아닌듯싶다. 본토민과 정부 그리고 언제 이주했던 상관없이 세계 여러 나라에 정착한 모든 배달민족은 더 이상 끼리끼리 나뉘지 말고 화합하여 새로운 조선족 사회를 이루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2003년 10월 11일 신문에 실린 <신선족이 사는 길>을 읽고 많은 고민을 했다.글 내용은 무난하게 넘길려고 애쓰셨지만 <신선족>이라는 이름을 읽고 마음이 아팠다. 그후 12월 중국에서 발행하는 조선족 신문에서도 아무 거리낌없이 오히려 신조어로 홍보까지 하는 식의 <신선족(新鮮族)>에 대한 글을 읽고 문제의 심각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였다.
중국에서 조선족이라는 이름으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이북출신이냐 이남출신냐를 초월하여 통일된 우리민족의 이름으로 알고있기 때문인데 <신선족>이라는 이름은 조선족으로 한세기를 꿋꿋이 살아온 이들을 혼란과 수치감에 빠뜨리는 격이였다. 개혁개방이래 물질적으로 앞서가는 한국인들이 다른 민족들앞에서 민족기개와 자부심을 지키며 살아온 조선족의 자손심을 동족의 손으로 무너뜨리는 현상이라 해야겠다
<신선족>이라는 이름이 아니더라도 세계인의 눈에 비친 우리민족은 사분오열이라는 느낌을 주고 있다. 북조선 사람이냐? 남조선 사람이냐? 북한이냐? 남한이냐? 탈북자냐? 조선족이냐? 라는 여러 가지 구분하기도 싫지만 내부에서 자꾸 구분하고있는데 거기에다 신선족이라니, 민족분열이란 단순이 어떤 현상이 존재할지라도 그것을 이름지어 구체화하는 것은 더 큰 감정의 곬을 파는것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에서 태여나서 살면서 우리는 다른 민족이 우리에게 조선족으로 불러주기를 원했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조선시대의 조선땅에서 건너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선족을 비하하는 사람들은 조선인을 선족이라 멸칭하였는데 신선족이라 부르는 것은 현재 한국인들이 중국에서 행하는 여러 가지 좋지않는 의미지를 구체적으로 문서화하여 역사에 남기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한,중 수교이전 조선족은 중국 56개 민족중에서 단연 우수한 민족으로 손꼽히였지만 현재 신선족이요, 탈북자요 하는 흐름을 타고 또한 고국에서 조선족에 대한 비하가 무언중 전해져 다른 민족들 가운데서도 조선족이라는 이름이 더 이상 고상하고 순결하고 깨끗한 의미지로 남아있질 않다.
물론 그것이 다가 남의 탓만 할것이 아니다. 조선족자체도 돈을 벌겠다는 일념으로 수단방법가리지 않고 한국으로 몰려들고 또한 여러 가지 좋지않는 일들도 벌어지고 있다. 허나 그들을 꼭 불법체류로 전락시키는 제도와 동족끼리 포용하지 못하고 밖으로 내모는 일은 더더구나 가슴아픈 일이다
중국은 본토에 15억이 넘는 인구를 가졌음에도 세계각국에 흩어져 살고잇는 용의 후예들을 절대로 쪽을 나누지않는다. 중국뿐이 아니고 일본은 더더구나 똘똘 뭉칠줄 아는 민족임을 잘 알고 있다.
중국 조선족 사회는 현재 모진 진통을 겪고 있다. 여러 가지 외부요소와 내부요소로 인해 <조선족공동체의 유지가 필요한가? 민족교육이 계속 필요한가? 민족문화의 계승은 필요한가?> 등등 의문들이 자꾸 쏟아지고 있으며 민족언어 무용론(無用論)까지 거론이 되고 있다.

우리말 우리글을 잃는 <조선족>은 상상하기가 싫다. 물론 내가 다니던 소학,중학,고등학교는 현재 송두리째 없어진 빈터이지만 나는 봄이면 가끔 그곳에 다시 아름다운 꽃들이 활짝 피여나지 않을가 하는 생각에 잠기고 고향에 가봐야하겠다는 충동을 느끼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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