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겪은 뒤 중국에 살다 지난 1일 한국에 돌아온 곽예남 할머니(80·〈한겨레〉 4월8일치 29면)는 12일 법무부로부터 대한민국 국적자임을 판정한 통지서를 받았다. 이로써 1944년 ‘조선’의 국적을 갖고 일본군에 의해 강제적으로 위안부로 끌려갔다가 60여년을 중국에서 무국적자로 살아야했던 곽 할머니는 대한민국 정부수립 56년 만에 바뀐 국적을 얻게 됐다. 지난 7일 ‘아시아!아시아!’팀과 함께 입국한 박우득 할머니도 이날 곽 할머니와 함께 국적을 회복했다. 곽 할머니의 동생 곽남순씨의 아들 이괄로씨는 14일 “이모님께서 오늘 전남 담양군 대덕면 면사무소에 가 주민등록증을 신청했다”고 전했다.
이씨는 “식구들 걱정이 많았지만 의외로 이모님이 잘 적응하고 계시다”며 “얼굴이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곽 할머니는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문화방송 스튜디오에서 언니 덕남씨와 동생 예순, 경록, 남순씨 등과 눈물겨운 상봉을 했다. 그뒤 이씨 집이 있는 광주에 잠깐 머물다 지금은 담양군 대덕면 용대리 동생 남순씨 집에서 함께 살고 있다. 이곳은 할머니가 위안부로 끌려가기 전까지 살던 장산리 바로 옆이다. 곽 할머니는 근처 절 같은 곳에 마실도 다녀오고 그 옛날처럼 다시 밭에 나가 일도 한다고 한다. 조카 이씨는 “우리말을 거의 못하시지만 의사소통에는 별 지장이 없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신기하게도 각종 농사도구 이름이며 해방 전까지 쓰던 낱말 일부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어 식구들을 가끔씩 놀라게 한다고 한다.
국가는 몰라도 개인적으로는 결코 부끄러울 수 없는 할머니의 ‘과거’가, 그래도 지금 식구들에게 부담스럽지는 않았을까 이씨는 “식구들 모두 예전에 그 사실을 몰랐던 그대로의 심정”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곽 할머니는 국외 거주 위안부 할머니들 가운데 대단히 운이 좋은 경우에 속한다. 문화방송 〈느낌표!〉의 ‘아시아!아시아!’팀을 만났기 때문에 귀국과 국적회복을 이처럼 빨리 할 수 있었다. 한국정신대연구소는 아직도 중국에 ‘제2의 곽예남 할머니’가 11명이나 살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연구소 쪽은 “여든 살 안팎의 고령자인 이들은 한국 정부와 국민의 무관심 속에 대부분 가난 속에서 죽음을 맞고 있다”며 “시민사회 차원의 지원이라도 우선 필요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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