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申 吉 雨
문학박사, 수필가, 국어학자,
서울 서초문인협회 회장 skc663@hanmail.net
어느 모임에서였다.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하였다. 요새 세상에는 뭐니뭐니 해도 ‘정캄를 잘 하는 사람이 최고라는 것이다. 엉뚱하게 무슨 ‘정캄 이야기냐 하고 모두들 의아하게 생각하면서 바라보니, 그는 어떤 친구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 친구라는 사람은 학교에 다닐 때부터 아무 화제에나 잘 끼어들어서 ‘떠버리’로 소문이 났었다. 그렇다고 달변도 아니고, 웅변이나 연설을 잘 하는 것도 아니다. 언제 어떠한 자리라 하더라도 그는 말을 해도 괜찮은가만을 판단하고는 곧 끼어들어서 이야기를 도맡아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남다른 화술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누가 무슨 말을 꺼내기만 하면, 그것을 화제로 삼아 그럴 듯하게 그것에 관하여 열변을 늘어놓는단다.
주위의 사람들은 그의 독특한 음성과 열변에 듣기만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그가 이야기를 독차지하게 되고 만다는 것이다. 처음에 못마땅하게 여겼던 사람도 혼자 떠들다시피 하는 그의 말을 듣다가는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아니라고 거들다가 그만 자신도 모르게 그의 말에 말려들어 어울리게 되고 만다는 것이다. 가끔 화제의 독점을 공박하는 친구가 있기도 하지만 그러면 그는 금방 미안해하면서 그에게 기회를 주는데, 서로 말을 주고받다 보면 어느 사이에 또 화제의 중심은 그가 되어 버린단다. 그러니까, 결국은 화제를 독차지하려는 그의 열의(?)에 모두들 지고 만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는 모든 분야에 걸쳐서 다양하게 언급되는 것이 특색이라고 한다. 자기 전공 분야만이 아니라, 시정 잡사에 이르기까지 이야기되지 않는 것이 없단다. 물론 내용은 깊이가 없고 단편적이거나 ‘에피소드’ 정도에 지나지 않았지만, 모임에서의 화제로는 부족할 것이 없다. 어떻게 그런 것을 그렇게 잘 아느냐고 물어 보면 책을 읽었다든지, 전에 어떤 사람에게서 들었다고 한다. 화제에 따라서는 신문이나 방송에 나왔다고도 하고 어떤 잡지나 저명 교수의 이름을 대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것들을 사실인가 하고 살펴보면 대개는 언제나 어느 정도의 거짓이 발견된다고 한다. 때로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침소봉대(針小棒大)하여 말한 것도 있고, 어떤 것은 전혀 근거가 없는데도 그럴 듯하게 꾸며낸 것도 있다. 그러니까, 그는 화제에 올랐던 내용을 일일이 확인하려고 신문 잡지나 책들을 뒤적이지 않고, 교수나 박사의 이름만 대면 무조건 긍정 쪽으로 쏠리는 대부분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하는 셈이다.
어쩌다가 사실 여부를 확인하여 보고 거짓을 나무라면, 발행 호수가 다르다든지 딴 책인가 보다고 얼버무린단다. 언제나 자기가 한 말에 대해서는 부정은 하지 않으며, 찾아본 사람이 잘못한 것이 아니면 자기가 그 근거를 잘못 대었을 뿐 내용은 사실이라고 말한다고 한다.
물론 세상에는, 틀림없이 그가 틀렸다고 하여도 그것을 꼭 꼬집어서 말하는 사람이나 경우가 얼마 안 된다는 사실도 잘 이용하는 셈이다. 그래서, 별 생각 없이 몇 번 듣다 보면 그가 퍽 박학다식(博學多識)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그리고 또, 그는 술을 매우 잘 한다. 기운이 좋아서인지 웬만큼 먹고서도 별로 취하는 기색이 없다. 밤 늦게까지 마셔도 언제나 그만은 제 정신으로 있다. 대개 술을 많이 하는 사람은 가끔 실수를 저질러서 동료들을 애먹이는 경우도 있게 마련인데 그는 그런 것도 없단다. 그래서, 그와 술을 먹어 본 사람들은 아마 하도 떠들어대니까 술이 다 깨서 그런가 보다고 농담하면서 언제나 술친구로서는 잘 대해 준다고 한다.
이런 특징은 그가 사회에 나가게 되자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다고 한다. 그런 관계로 그는 많은 사람들을 접촉하게 되었고, 또 그들에게 잘 떠들고 술 잘 먹는 사람으로 쉽게 인상 지워지게 되어서 자연히 아는 사람이 많아지게 되었단다.
특히, 그는 그의 윗사람들에게는 그의 특기인 말재주(?)와 술대접으로 자신의 잘잘못을 충분히 자랑하고 설명하기 때문에, 상사들도 그를 아주 인사성 있고 인간미가 많은 사람으로 인정하게 마련이란다. 이런 까닭으로, 그는 보통 다른 사람보다는 수월하게 근무할 수가 있게 되고, 웬만한 어려움은 그의 부탁이면 다 들어 줄 만큼 되게 되었다. 이 정도로 되면 그는 곧 가장 힘들지 않는 부서를 맡게 되도록 해서 자기 업무를 남보다 덜 수고하면서도 잘 넘길 수 있게 한단다. 그래서는 틈만 있으면 동료나 상사들과 어울려 그의 말재주를 펼치곤 한다. 그러면서 가끔씩 아무 것도 아닌 일을 굉장히 어려운 것처럼 담배만 연속 피워 물면서 심각한 표정을 짓고서는 몇 번이고 서류를 뒤적이고 고치곤 한단다. 그러면 누가 보아도 매우 힘든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게 되고, 어쩌다가 들어와 본 상사들은 좀 쉬어 가면서 하라고 이르기까지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또 바깥 출장은 도맡아서 하려 든단다. 다른 과 소속의 업무라 할지라도 가능하면 하고자 나선다. 물론, 그가 외교 업무 처리를 특별히 잘 해서가 아니라 회사 일이란 대개 성패보다는 그 성취 결과의 많고 적음으로써 나타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령 결과가 부진하여도 자기니까 그 정도나마 해냈다는 식으로 떠벌린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식의 그의 태도는 여러 번 계속되다 보니 결국은 그가 애써 수고한다고 인정을 받게 되고, 점차 그는 유능한(?) 직원으로 평가받게 되었다. 그의 독특한 떠버리 말재주와 술꾼으로서의 기능을 대외 업무 처리 과정과 사후 보고를 통해서 최대로 발휘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남보다 먼저 승진이 되기 시작하였고, 승진될수록 시간이 많아지자 더욱 출장과 내외 접촉을 많이 하게 되어 나중에는 대외 업무만은 그를 따를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결국, 그의 출세는 염치 불구하고 나서는 떠버리 기질과 끄떡없는 술꾼의 기능으로써 이루어진 것이다. 한 마디로 ‘정캄를 잘 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 친구는 이 친구의 출세를 보더라도 요새는 ‘정캄가 최고라면서 그 친구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이었다.
이런 말을 듣고, 그 자리에 모였던 친구들은 모두들 그것을 긍정들을 하였다. 요즈음의 세상에는 그만한 정도는 염치 좋고 말 수단이 있어야 한다고 거들면서, 그것이 바로 요사이의 ‘실력’이라고 칭찬을 하였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과연 실력이 있는 유능한 사람일까? 소위 말하는 ‘정캄가 아무리 잘 통하는 시대라고 하더라도 그런 사람은 결코 유능한 실력자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오히려 지능적인 파렴치한이나 사기꾼밖에 달리 더 생각할 수가 없다.
물론, 요새 세상에는 그런 사람이라야만 출세를 잘 하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점차 많아질 때 이 사회는 어떻게 될까? 일은 성실히 하지 않으면서도 가장 열심인 체하고, 일의 성과가 적어도 가장 힘들었던 커다란 수확이라고 선전하는 것이 통한다면, 과연 이 세상은 무엇에 근거를 두고 유지 영위하여야 할까? 묵묵히 맡은 일에 충실히 일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와 같은 사람의 출세를 보고서 진실로 일을 할 의욕이 생길까?
그런 염치없는 떠버리 친구가 출세를 하는 사회도 큰 문제이지만, 그런 친구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그 친구와, 그러한 사람이 요새의 실력가라고 찬동하던 그 때 그 자리의 여러 친구들과 똑같은 생각을 갖는 사람들이 많으니, 그것이 정말로 큰 일이다.
진실과 성실이 통하지 않고 오히려 위선과 과장 선전이 중시되며, 부끄러움과 반성을 모르고 도리어 떠벌림과 자기 합리화가 통하는 엉터리 ‘정캄가 판을 치는 시대, 이것만은 정말로 어느 사회 어떤 시대에도 와서는 안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