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만남만으로도 아름다웠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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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만남만으로도 아름다웠던 하루
  • 이동렬 기자
  • 승인 2008.1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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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동포 지성인 野遊會’ 견문

   ▲ 흥룡사에서   사진= 장헌국 사진기자(이하 사진)  

지성인은 지적능력을 갖고 일처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을 일컫는다. ‘중국동포 지성인 야유회’란 타이틀을 기획할 때부터 약간 이상한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나는 초심을 버리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지적인 중국동포들과 즐거운 오프라인모임을 가져보자는 마음에서다.

조선족문화후원회 이상규 회장(시인)이 선뜻 후원금을 내놓아 우리는 10월 26일(일요일) 하루를 경기도 포천 백운계곡(흥룡사), 평강식물원, 산정호수로 이어지는 코스를 즐겁게 밟아볼 수 있었다.

이상규 시인은 일찍 연변 해외문제연구소와 중국조선족소년보사에서 뽑은 ‘2002 옌볜 고마운 한국 지성인상’ 수상자이다. 이 시인은 당시 재정난으로 폐간 위기에 놓여 있던 계간 문예지 ‘아리랑’이 명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후원한 것을 시작으로 ‘헤이룽장(黑龍江)신문’ 주최 실화.수필상 공모기금, 문화총서 ‘한마당’ 출간기금, 옌볜작가협회문학상 기금, ‘20세기중국조선족문학사료전집’(전 50권) 출판기금 후원 등으로 이어졌다. 연변주(州)정부 주요 지도자들도 접견을 하고 고마움을 표했을 만큼, 이 시인은 자신의 나눔의 철학을 철저하게 관철해온 분이다.

전날저녁, 날이 흐리고 비가 쏟아져 이튿날아침 어떻게 떠나랴 싶었는데 마침 날이 활짝 개여서 시름 놓았다.

버스는 출발부터 비교적 무거운 주제를 탑재했다. 먼저 개개인과 단체를 소개하면서 보니 거의가 재한조선족사회에서 역할을 하는 훌륭한 분들이었다.

연합뉴스 곽승지 영문팀 팀장(정치학박사)이 주최 측의 요청에 의해 재한중국동포사회가 어떻게 하면 새로 발전된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 하는 말씀을 했다. 중국동포들이 마음을 열고 한국사회와 어우러지면서, 자신의 꿈에 우리 민족의 꿈을 보태서 열심히 뛰노라면 동북아시대는 멀지 않아 곧 열리게 될 것이다, 뭐 그런 주제였다.

    ▲ 이상규 회장(시인)에게 감사패 전달
    중국동포들이 흩어져 조선족사회는 지금 위기를 맞고 있다는 말에, 지금은 위기가 아닌 기회이라고 다른 견해를 내놓은 이광진 한중 법률신문(새로 출간) 대표이사의 말에는 당당함이 묻어나 있었다.

버스가 흥룡사에 도착하자 다들 마침내 무거운 짐을 부릴 수 있었다.

주위의 산은 아름다운 단풍이 가을 바람소리를 그윽이 내고 있고, 곬이 깊게 패인 백운계곡은 얕고 깨끗한 물이 차게 흐르고 있었다.

흥룡사는 신라 말엽에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는데 1786년 중건하여 백운사라 이름을 고쳤다가 1922년 다시 중수하면서 흥룡사로 지었다고 한다. 세종의 친필이 보존되어 있다고 하는데 보지 못했지만, 흥룡사의 목탁소리가 유난히 가슴을 울려놓았다. 심산 속에 들어앉은 듯 흥룡사의 주위 산의 단풍들은 울긋불긋 타오르며 바람소리 깊게 내는데 절주 있는 은은한 목탁소리가 마음의 호수에 깊은 물방울을 떨어뜨린다.

우리는 흑룡사 정문 계단에 앉고 서서 단체 기념사진을 남겼다. 
평강식물원으로 오르는 길에서 차가 밀려 곤경을 치렀지만, 구릉지대에 만들어놓은 식물원에서 우리는 곧 가을의 여왕 국화꽃의 냄새를 맡고 바람에 흔들리는 하얀 억새풀의 농익은 모습을 보면서, 또 가까이에서 가을단풍을 느끼면서, 대뜸 즐거워질 수 있었다.

평강식물원에는 백두산, 한라산, 히말라야와 로키산맥 등 세계의 고산(高山) 지역에서만 찾아 볼 수 있는 특이 식물들과 아직 국내에서는 재배가 활성화 되지 않은 만병초류를 포함하여 7,000여 종의 식물들이 있고  습지원, 사철 늘 푸른 잔디광장, 만병초원, 이끼원, 고사리원 등 12개의 테마로 조성되어 있었다. 

국화꽃축제라고 해서 요란하게 생각했었는데 그것은 아니고, 그래도 국화꽃을 보고 국화꽃 차를 마시고 사진을 찍고 가을의 정취를 마음껏 흔상할 수 있어 너무 좋았다.

흩어진 사람들은 흩어졌지만, 남은 사람들은 푸른 잔디밭에서 또 한 번 단체기념 사진을 남겼다.

평강식물원에서 산정호수로 가는 길은 정상 15분이면 갈 수 있지만 좋은 날씨에 휴식일이라 관광객이 몰리는 바람에 차가 기 막히게 막혀 한 시간 넘게 소요되었다. 대한민국사람들이 다 차를 끌고 나와 산정호수에 모여든 것 같았다.  

우리 일행은 제일 붐비는 먹거리 골목, 이미 연락을 해놓아 찬그릇 챙겨놓은 전주식당에 찾아들었다. 주 메뉴는 한 그릇에 6천 원 하는 이동갈비탕이다. 미리 준비해 간 술과 안주를 들고 들어가서 식사 한판 흥성하게 벌리었다. 노래방 기계까지 있어 마이크를 잡고 행사를 하니 제격이다.   

첫 수순은 감사패전달이다. 헐렁한 옷을 입은 이상규 시인님은 몸이 좀 불편해 보였지만 이 순간만은 얼굴에 빛이 났다. 나는 고마운 마음으로 감사패 문구를 읽었다.
“귀하께서는 지난 수년간 중국조선족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갖고 지속적인 후원 사업을 하여 왔기에 그 공이 크므로 그 감사한 마음을 이 패에 담아 드립니다.”

뜨거운 박수 속에서 이 시인은 건강이 허락되는 한, 앞으로도 이런 뜻 깊은 행사를 지속적으로 후원하겠다고 말해서 동포들은 만세를 외쳤다. 

▲ 산정호수에서

이윽고 손수 준비해간 한중동포신문의 이영한 편집국장의 바이올린과 김치일 문화인의 손풍금합주가 장내의 흥을 절정으로 끌어올렸다.

동포 MC 장덕수님의 사회 하에, 저마다 부르는 ‘흘러간 옛 노러 트로트 곡의 운치가 산정호수 가운데에서 치솟는 물줄기와 어우러져 먹자골목을 들썩거려 놓았다.

산정호수(山井湖水)는 관개용 저수지로서 1925년에 축조되었다. 산중에 묻혀 있는 우물 같은 호수라는 뜻이다. 호수면적 약 0.024㎢이다. 북쪽에 명성산(鳴聲山)이 있는데 산 이름은 고려 건국 때 왕건(王建)에게 쫓긴 궁예(弓裔)의 말년을 슬퍼하는 산새들이 울었다 하여 붙여진 것이라 한다. 남쪽에 관음산(觀音山)이 있는 등, 산으로 둘러싸인 국민관광지이다.
호수가에 서서 사면을 둘러보니 경치가 너무너무 수려했다. 

모두가 벌써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몰랐던 사람, 알았던 사람, 그리고 이제 알고 서로가 좋아하게 된 우리 동포들이 하나의 렌즈 속에 담겨 웃었다.     

정각 4시에 우리는 서울로 출발하는 버스에 올랐다. 가는 길이 지체되어도 괜찮다. 남은 맥주와 소주로 술을 마이며 관광메들리를 시작했다. 열성스레 노래 부르고 춤추는 동포들이 부딪치고 마주치고 웃는 속에서 동포만이 가질 수 있는 교감을 나눠갔다.

김승종 시인이 즉흥적으로 지은 시 3수를 읊었다. 

       다시 만납시다

반가워라 이 가을에 정이 든 벗님네들
다시 만날 기약을랑 잊지 맙시다
단풍 꽃 피는 내 고향
단풍꽃 물드는 정다운 마음
사랑입니다. 불타는 사랑입니다…

인터넷 동북아신문에 오랫동안 수필을 연재해 오신 신길우 교수도 시 같이 짧고 운치 있으며 의미 깊은 수필낭독을 하셨다.  

새로 출범한 ‘한중경제교류협회’ 김일남 상임이사는 한중경제발전을 위해 동포들이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 역설하였다. 협회와 동포언론단체와 동포지성인들이 마음을 합쳐 한국사회에 든든히 뿌리를 내린다면, 또 재한중국동포사회를 이끌어간다면 우리 동포들의 삶은 더 풍만해지고 아름다워질 것이다. ‘중국동포지성인 야유회’의 의미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우리 동포지성인들은 계절에 따라 이런 모임을 자주 갖기를 희망했다.  앞날은 기필코 더 좋아질 것이다.    

이동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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