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숙 수필>
1."아줌마라 부르지 마셔야죠?!" 고마운 고국동포들의 가족같은 관심과 배려로 중국동포 가사도우미들은 꿈을 이루어 가고 있고, 보다 나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지금껏 저는 우리들도 직업의식을 갖고 프로패셔널로 일하자고 호소해 왔습니다. 오늘 처음으로 극히극히 일부분인 고국동포분들께 희망사항을 告합니다. 어떤 분들은 입 하나를 덜기 위하여 집살이 하던 식모나 몇시간 정해준 일만 하고 떠나는 파출부를 쓰던 습관으로 입주해서 가사를 전담하는 분들을 "아줌마~"하고 소리쳐 부릅니다. 그녀들을 아줌마라 부르지 말아야 할 이유는 많기도 합니다. 엄마는 자아희생정신으로 자식과 식구들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엄마가 되고나면 식구들을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욕구와 본능으로 하는 것이라고 나는 주장합니다. 모성의 본능으로 난생 처음 보는 가족에게도 자기의 욕구로 사랑을 하지 않을수가 없습니다. 그러노라면, 부대끼노라면, 천사같은 해맑은 애들에게, 그 가족에게 정이 들어서 진짜 사랑을 하게 됩니다. 異性과 자녀사랑을 가슴에 품고 혈혈단신으로 바다건너에서 날아온 엄마들은 엄마의 본능으로, 애 엄마보다 갑절 강한 책임감으로 목도 못 가누는 핏덩이들을 24시간 보듬어 줍니다. 먹여주고, 어디 다칠세라 신경말초까지 곤두 세우고 보호하며, 진자리 마른자리 가려가며 건실하게 키워줍니다. 일년이고, 몇년이고 아이와 함께 울고 웃는 엄마에게 어떻게 아줌마란 말이 나옵니까?! 하루종일 체력은 체력대로, 두뇌는 두뇌대로 소진하면서 온 식구들의 비위를 맞추어서 몸도 마음도 편하게 해 줍니다. 그녀들이 하루만 집을 비워도 모든 리듬이 깨지고, 엄마들은 불안한 애들 앞에서 어쩔바를 모릅니다. 엄마, 할머니, 이모 모두 저리가라하고 자나깨나 그녀들의 품에 안겨 있는 애 앞에서 어찌 아줌마란 말이 나옵니까?! 주체 못하는 엄마의 사랑으로 온 집안을 밝히고, 편하게 하고, 순리로운 기운으로 "태평세월"을 누리게 하는 "보살"에게, 애쓰고, 정성들여 만든 맛갈스런 음식을 드시면서 어떻게 아줌마란 단어가 쉽게 나옵니까?! 한마디로 엄마의 마음으로 입주하여 정성 다하는 분들에게 아줌마라 부름은 타당치 아니하옴을 아룁니다. 그리고 부탁이 있습니다. 1. 얼굴은 혼을 담은 그릇입니다. 40대 이상의 얼굴엔 그 사람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 눈도 믿지 못하고, 오가는데 없이 24시간 엄마로 사는 그녀들을 상대로 CCTV를 설치하는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안그래도 도처에 CCTV가 깔려 유리상자에서 사는 현대인들입니다. 치매에 걸린 엄마에게 필요할진 몰라도, 일하는 엄마에게 24시 CCTV는 기분만 잡치게 만듭니다. 2. 오래전 어떤 집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아침 6시 20분 부터 밤 11시에 일이 끝나게 되는데 15일 동안 로션 한번 바를 시간이 없었습니다. 이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주방에 고무장갑이 없었습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서 손끝이 빨갛게 여려 지면서 탁탁 갈라지기 시작했는데 낫질 않아서 얼마나 아팠는지 모릅니다. 지금 아는 언니 한분이 주방에서 맨손으로 일할 수 밖에 없다는 말에 참으로 가슴이 아팠습니다. 본인이 원하면 보배스런 손에 고무장갑을 끼게 하세요. 3. 그전이나 지금이나 입주해서 일하는 분들에게 셔츠 다리듯 매일 팬티 전기 다림질을 요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입주해서 일하는 분들에게만은 이것을 피하셨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주름살 펴는 방법은 여러가지입니다. 입주가사도우미는 사회의 세포인 가정과 미래의 기둥감을 책임지고 있는 특수직종이라 생각합니다. 사랑이 없이 돈만 보고 할 수 있는 일이 절대로 아닙니다. 백여만원 뿌려주고는 큰 선심 쓴 듯 하는 사람들, 입주가사도우미를 피고용인이라고 여기는 것은 "고용인"자격이 결여된 사람입니다. 피 한방을 안 섞여도 서로 가족으로 여겨야 합니다. 그속에서 행복이 나옵니다. 부처님의 마음으로 돼지를 대하면 돼지도 부처가 되지만, 돼지의 마음으로 부처같은 사람을 대하면 돼지는 될 수 없지만 집안의 따뜻한 기운이 식어질수가 있습니다. 2. "님으로 살고, 님으로 불리웁시다!" 지난 19일 나무잎 조학회에서 남한산성으로 가을나들이를 다녀 왔습니다. 타오르며 반겨주는 산성위의 핏빛단풍도 좋았지만 님들과의 뜻깊은 만남이 더욱 좋았습니다. 산행때 저의 짝꿍은 어느회사에서 사무직으로 일하고 있는 30대 여성"나요"님이었습니다. 입국한지 몇개월 밖에 안되지만 우리민족역사와 특히 남한산성의 유래에 대해 꿰뚫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장에 저의 히스토리티치어=역사 선생님으로 모셨습니다. 자기민족에 애정을 갖고, 얼을 잃지 않으려는 젊은 동포들이 그렇게 자랑스러울수가 없었습니다! 자기민족에 대한 호기심도, 사랑도 없는 사람이 세상을 얼마나 보듬겠습니까?! 진취심이 강한 나요님의 자녀들이 글로벌 인재로 자라날 수 있음을 굳게 믿습니다. 매의 눈길로 의미있는 이미지를 포착하여 커다란 촬영기의 셔터를 수시로 누르는 푸른언덕님은 홈페이지 제작관리, 방송광고 영상에서 세상 어디에 내놓아도 짝지지 않을 젊은이입니다. 지금 한국영상예술협회, 영상제작 담당의 실장님이셨습니다. 한국에서 혼자 터득한 웹디자인 기술로 오래전엔 "동북아 사람들", 지금은 "서울조선족교회" 홈페이지를 손수 제작하고, 관리하면서 우리동포들의 자질 제고에 안깐힘을 쓰고 있는데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 아무리 이쁜여성이라도 사랑이 없으면 造花에 불과하고, 아무리 멋진 남성이라도 책임과 의무감이 없다면 조각에 불과하겠죠. 님은 진짜 사나이었습니다. 서로의 인사시간에 한 가을남자님의 발언이 당찼습니다. "한국에선 '사장님'하고 부르면 열에 일곱이 머리를 돌립니다. 대리님, 팀장님, 누님, 형님, 하다못해 도적도 님이라 불리우는데 재한중국동포들은요?! 우리도 자신감을 갖고 아저씨, 아줌마로 살지말고, 님으로 살고, 님으로 불리웁시다." 그는 지금 모 업체에서 중견으로 일을 하고 있는 씩씩한 40대 중반의 과장님이셨습니다. 주일마다 등산하면서 아름다운 고국의 산천초목에서 기운을 받아서인지 이름 못할 그 무슨 빛이 얼굴에서 빛나고 있었습니다. 의젓한 님들의 호언에 저도 모르게 체면을 제쳐 놓고 막 짝짜꿍을 쳐대다가 머리를 떨어 뜨렸습니다. 강제 추방에 숨 죽이고 눈 앞의 돈만 밝히다 자기의 "특기"도 버리고 "기술"에 접근도 못한채 요모양, 요꼴로 남아 있는게 부끄러워서였습니다. 지금은 거의 모두가 합법체류이고 여러가지 직종도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일용직으로 한화 끌어 모으기에 급급해 마세요. 먼저 자기 취향에 맞는 직업을 선택하고 평생 함께할 기술을 익히세요. 잊지 마세요. 한국에서의 첫 직장이 원하던, 원치 않던 종종 마지막 직장이 된답니다. 지난날의 멋졌던 나를 깡그리 비워야만 새로운 세상에 빨리 적응할 수 있고, 인정 받는 님이 될 수 있겠죠. 한국에선 돈만 벌고 중국에가 님이 되겠다고 하는데 오늘의 모습이 곧 내일의 모습입니다. 손에 든 쓰레기를 아무곳에나 휙 집어 던지고, 남들이 얕잡아 보는 아저씨, 아줌씨="아~씨"로 살지 맙시다. 한치 보기로 살지 말고, 끊임없이 배우고 자신을 컨트롤 하면서 일터에서, 언행에서 인정받는 님이 됩시다. 남한산성에서의 우리 님들은 일터에선 인정 받고, 묵묵히 어려운 학생들을 돕는 천사님들이었고, 밝은 미소, 부드러운 말씨, 깔끔한 차림의 멋장이, 신사님들이었습니다. 산에서 식사뒤 너나없이 깨끗하게 청소를 한 어엿한 님들이었습니다. 그대들을 님이라 부르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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