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申 吉 雨
문학박사, 수필가, 국어학자,
서울 서초문인협회 회장 skc663@hanmail.net
후기인상파를 대표하는 네델란드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그림 가운데에 이런 것이 있다.
황금빛의 노란 들판에 산더미같은 진한 주황색의 낟가리가 있고 그 기슭에 널려 있는 볏단을 베고 두 부부가 누워 휴식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남편은 두 팔을 뒤로 깍지를 껴 베고 누워 있는데, 얼굴에는 모자가 눈까지 가려지도록 덮여 있고, 두 발은 하늘을 향하여 뻗었는데 맨발인 채이다. 그 옆에는 부인이 옆으로 누웠는데, 윗몸을 옆으로 수그리고 두 팔을 포개어 잡고서 거기에 얼굴을 반쯤 파묻고 있다. 머리에는 하얀 수건을 둘러 쓴 채이다. 남편의 신과 두 자루의 낫이 그들의 옆에 놓여 있다. 멀리로는 또 하나의 옅은 주황빛 낟가리가 약간 겹쳐져 바라보이는데 그 아래쪽에는 원경으로 빈 마차가 있고 말 두어 마리가 고개를 빼고 땅바닥에 있는 무엇인가를 먹고 있는 모습이다.
처음에 이 그림을 보았을 때에는 그렇게 크게 내 눈을 끌지 못하였다. 그것은, 대부분의 고호의 그림들이 그렇듯이, 내게는 필치가 너무나도 거칠어 보이고 사진처럼 사실적이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색감도 자연스럽지가 않은 임의적 의도성이 강하게 풍겨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그림이 같은 달의 달력 그림으로 내 숙소의 식탁 벽에 걸린 달력에도 나오고, 또 어느 회사의 탁상 달력에 실려 내 연구실의 책상 위에도 놓이게 되면서 인식이 달라지게 되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대하게 되면서 이 그림이 풍기는 맛이 점차 멋지고 정감 있게 느껴지게 되었다. 더구나, 그러한 느낌들이 발전하여 바라보면 볼수록 내게 평온과 안정을 가져다주며 나를 푸근하게 만들어 주어서 점점 더 이 그림의 매력을 강하게 느끼게 되었다.
특히, 맨발인 채 두 발은 쭉 뻗고 얼굴에는 모자를 반쯤 덮은 채 하늘을 향해 뒷팔베개를 하고 누워 있는 남편의 모습은 피로 뒤의 자연스러운 휴식의 절정이며, 그 옆에서 눈을 다소곳이 감은 얼굴을 오른 쪽 옷소매에 반쯤 묻고서 오른 쪽 발을 왼 발 위에 얹고서 남편 쪽으로 모로 누워 있는 아내의 모습은 얼마나 평화롭고 아름다운지 모를 지경이었다. 한 점 부끄러움도 없고 불만도 없이 편안한 휴식을 하고 있는 남편의 모습이나, 그러한 그를 하늘같이 믿으며 옆에서 가없는 사랑을 쏟아 주고 있는 듯한 아내의 모습은 정말로 이것이 평화요 행복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절로 일게 하곤 하였다.
그래서, 그 달이 지나고 다른 그림이 나오는 새 달로 넘겨 걸고서도 가끔씩 덮여진 부분을 들어 보기도 하고, 책상달력의 경우에는 되넘겨 놓고서 한참을 바라보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한 번은 동료 교수로부터 달이 지나가는 것도 모르고 사느냐고 핀잔 아닌 핀잔을 듣기까지도 하였다.
이 작품에 대한 나의 이러한 태도와 느낌은 한참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다.
이러한 느낌은 물론 나에게만 한정되는 일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내가 생각지도 않은 하나의 작품에서 우연한 기회에 이와 같이 평화스러움과 안정됨과 푸근함을 함께 느낀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그것을 늦게나마 느낄 수 있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기면서, 그러한 기회를 제공하여 준 화가 고흐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