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한국에서의 문화생활(주청룡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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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한국에서의 문화생활(주청룡 수기)
  • [편집]본지 기자
  • 승인 2008.09.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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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에 방문취업제로 한국에 온지도 벌써 1년이 넘는다. 한국에 와서 처음 몇 달은 아무 곳도 다니지 않고 회사에서 일만 하였다. 아무리 돈 벌려 왔다고 해도 일만하니 인생살이가 너무나 무의미 하였다. 우리가 사는 것이 일해서 재부(財富)를 창조할 뿐만 아니라 풍요로운 문화생활도 겸하여 하는 것이  삶의 의의이고 삶의 보람이 아니겠는가.

나의 오래전부터의 소망은 나의 시조의 묘소를 참배하는 것이었다. 하여 나는 마누라와 함께 토, 일 연휴일을 이용하여 멀리 전라남도 화순군에 자리 잡고 있는 우리 조선족 新安朱氏 始祖 朱濳(주잠, 1194~1260)의 묘소를 참배 하였으며 그것을 글로 정리하여 《동북아신문》,《한민족신문》등 여러 신문에 발표하였다. 그리고 한국의 명소를 다니면서 유람을 하고 돌아와서는 꼭꼭 기행문을 써 신문사에 보낸다.

 지난해 한국에 올 때 내가 행장을 꾸리면서 한국에 가서 볼 책들을 챙겨 넣자 곁에서 거들어 주던 친척들이 "일하러 간다는 사람이 책은 무슨 책이야 가서 일은 하지 않고 책만 보겠는가?" 하고 나무람했다. 하지만 나는 속궁리가 달랐다. 한평생 책과 함께 살아온 내가 일하러 간다고 어찌 책과 담을 쌓겠는가. 아무리 일이 바쁘더라도 시간을 타 책을 봐야지, 하고 생각했다. 책을 넣은 것이 내짐의 절반을 차지하였다.

 한국에 와서 짬짬이 시간을 타서 중국에서 가지고 온 책들을 볼 뿐만 아니라 일요일이면 서점에 가서 새로운 책들을 사 보곤 하는데 책도 보고 한국사회에서 생활하다 보면 글감이 생기고 그것을 칼럼, 수기, 기행문 등 형식으로 써서 투고를 한다.

 매 한편의 기사가 실리면 원고료가 어김없이 나의 저금통장에 입금되는 것도 재미였다. 그것이 바로 내 머릿속의 것을 글로 정리하는데 소모되는 정력의 가치이며 그 가치가 화폐로 전화한 특수한 상품 (商品)인 것이다. 제일 처음으로 제주도 기행문을 썼는데 6번에 나누어《중국동포타운신문》에 연재되었고 원고료도 24만원이나 나왔다. 여러 곳을 유람하면서 제일 인상이 깊은 것은 그래도 제주도 유람이었다. 제주도의 경치는 물론이고 특이하다는 것은 우리가 간 날이 일년 4계절 가장 춥다는 대한 날이었는데 내륙과는 달리 모든 것이 푸른색 그대로였고 울긋불긋 가지각색의 꽃들이 만발하였으며 감귤도 나무에서 직접 따 먹을 수 있어 신비감을 느꼈다. 그리고 성읍민속마을을 참관하면서 지금까지 원시적으로 보존 되어 온 제주도의 언어와 민속 문화를 현실생활에서 볼 수 있는 것도 특이하였다.  

여러곳을 유람하려면 좋은 사진기가 있어야 했다. 원래 나에게 사진기가 한대 있었는데 필름을 넣고 쓰는 것이어서 컴퓨터와 디지털시대에 맞지 않았다. 하여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제주도기행문을 써서 받은 원고료 24만원을 기념으로 24만 원짜리 디지털카메라를 샀다. 

아무튼 객지생활이라 고정된 거처가 없어 부피가 큰 컴퓨터는 거처를 옮길 때마다 불편하였다. 하여 컴퓨터도 노트북으로 사놓고 매일 저녁 퇴근하면 인터넷에 접속하여 여러 신문의 뉴스를 보면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가 하는 것을 보고 나에게 필요한 자료를 찾으며 정기적으로 원고를 써서 신문사에 보내곤 한다.

금년 8월에는 한국 산업인력공단에서 외국국적동포 한국취업생활 수기 현상공모가 있어 '나는 어떻게 성공적인 취업을 하였는가?'란 제목으로 응모하였더니 그것이 3등상에 입선되여 50만원의 상금까지 타게 되었으며 그 수기가 여러 신문에 실리기도 하였다.

한국에 와서 이렇게 일하여 돈도 벌면서 고국건설에 이바지한다는 자부심도 가지고 한국에서의 문화생활을 통하여 나의 지식도 넓히고 공모전에 입선되어 상금까지 타니 나의 한국에서의 문화생활이 풍요롭기만 하다.

주청룡

2008년 9월 20일 서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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