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국’희망, 몇 시간만에 물거품으로
1월 2일, 연길시개발구의 한 회의실에서 한패의 사람들이 한창 무엇인가 의론하고 있었다. 밖에는 찬바람이 싸늘하게 몰아치고 있었지만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의 얼굴에는 봄기운이 흘러넘쳤다. 그것은 그들의 손에 비자가 쥐여졌고 곧 출국의 푸른 꿈을 실현하게 되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15명으로 임시로 조직된 축구팀이다. 그들은 한국에가 축구경기에 참가한다는 명목으로 비자를 받았다. 이 시각 조직자인 리학삼이 한창 그들에게 포지션을 선정해 주고 있었다. 나이 지긋한 사람은 코치이고 우람지게 생긴이는 키퍼이다.
이 사람은 공격수이고 저 사람은 수비수이다. 이들은 해관을 지날 때 어떻게 사업일군의 질문에 대답할 것인가 하는 것을 속으로 묵묵히 기억해 두었다. 이후 이들은 매 사람에게 유니폼 한벌씩 발급했다. 자기들의 신용과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리학삼과 그의 처 리경정은 이들에게 각자가 교통은행에 7만원씩 저금하게 한후 한국에 도착하면 비밀번호를 알려주게 했다. 한국에 밀입국시키지 못하면 한푼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15명 중의 한사람인 최남(가명)은 흥분에 모대기였다. 몇 년간 바라마지 않던 비자가 불과 한달 사이에 내려진 것이다. 곧 한국에 가게 될 것이다. 많은 돈을 벌어오게 된다. 인생은 이제 거대한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그는 금의환향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는듯 싶었다. 최남씨는 이한 흥분으로 밤을 지새웠다. 이튿날 그는 일찌감치 연길기차역에 나왔다. 이들 일행은 대련
행기차에 올랐다. 1월 5일 오전, 최남씨는 일행과 함께 대련에서 인천행 대인호륜선에 올라 6일, 한국 인천에 도착했다. 입국수속을 마친 후 세를 낸 버스에 올라 서울 남구에 도착한후 전부 도망쳤다. 오후 최남씨는 한 지하철역입구에 왔다. 한 한국경찰이 다가와 증건을 요구하자 아무런 준비가 없던 최남은 다소 당황했다. 경찰은 그의 려권을 보면서 ‘선수가 왜 훈련하지 않고 여기에 와있는가’고 묻자 말문이 막혔다. 하여 최남씨는 경찰국에 련행되여갔다. 이렇게 한차례의 밀입국사건이 들통나고 말았다. 그의 출국꿈은 한국땅을 밟은지 몇시간만에 물거품같이 산산이 파멸되고말았다.그는 이번 사건에서 압송되여 중국에 송환된 첫사람이다. 신속하게 정찰하고 정확하게 사건 해명
1월 10일, 주공안국 출입경관리처는 성공안청의 전보통보를 받았다. 전보통보는 연길시스타 축구학교가 한국 대구축구협회의 초청에 의해 한국을 방문하여 경기를 치르기로 했는데 2004년 1월 6일 오전, 대련에서 인천으로 향발하는 륜선으로 한국에 도착해 입경수속을 마친 후 집체로 도망쳤다고 했다. 이번 사건은 중앙 및 공안부문의 고도의 중시를 불러일으켰다.
1월 9일, 호금도총서기는 ‘왜 축구대표단 성원이 모두 축구선수가 아닌가, 문제는 어디에 있는가? 똑똑히 조사처리해야지 무마해서는 안된다’고 지시했다.
1월 9일, 주영강부장은 ‘영길동지가 책임지고 금도동지의 지시를 시달해 비자수속 및 출입경통상구를 통과한 정황을 조사하기 바랍니다’고 지시했다.
1월 10일, 조영길부부장은 ‘이를 6국에 보내 보게 한후 즉시 정황을 조사하고 처리의견을 제기하며 사업중의 미비한 점을 반성하고 정돈개혁을 강화하기 바란다’고 지시했다.
1월 11일, 정옥량청장은 ‘이 사건에 고도의 중시를 돌려 하루속히 해명해야 한다. 첫째, 형사경찰, 출입경국에서 력량을 선발해 연변과 배합하고 둘째, 음력설전으로 사건을 해명하고 법에 다라 타격하고 처리해야 하며, 셋째, 사업진전정황을 수시로 성공안청에 회보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1월 12일, 주당위서기 전학인은 ‘이 사건에 고도의 중시를 돌려 끝까지 조사하고 위법분자들에 대해 법에 따라 엄하게 처리해야 한다. 이번 사건으로 교훈을 섭취하고 효과적인 대책을 대 류사한 사건의 발생을 빙지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1월 12일, 주정부 주장 김진길은 ‘이번 사건은 아주 엄중하다. 반드시 공안 등 해당부문의 고도의 중시를 일으켜야 한다. 관련된 정황에 대해 참답게 조사하고 관련된 인원에 대해 속히 체포하고 엄숙하게 처리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전보통보를 받은후 국장 마효동의 인솔하에 주공안국은 즉각 행동했다. 출입경, 형사경찰, 국가보호, 호적, 기술정찰 등 부문이 참가한 사건해명소조가 인차 설립되었다.
2월 11일 오전 8시, 경찰의 신속한 정찰의 강한 압력으로 혐의자 박운철이 주공안국 출입경관리처에 자수했다. 1월12일, 협의자 김영수가 광서 오주에서 체포되였다.
1월 13일, 협의자 윤정일이 연길에서 체포되었다.
1월 13일, 주요협의자가운데 한사람인 리경정이 도망하다 302국도 오호령수금소에서 길을 막고 있던 정찰원들에게 체포되었다.
1월 13일 19시, 주요협의자 리학삼이 해남 삼아시에서 법망에 걸려들었다.
단 3일내에 주요범죄협의자들이 전부 법망에 걸려들었다. 협의자들은 리윤을 목적으로 타인을 조직해 밀입국한 범죄사실을 남김 없이 실토했다.
범죄수단으로 출국 꿈 꿔
2003년 11월말, 리학삼(남, 조선족, 1971년생, 연변축구구락부 후근보장인원)은 친구의 소개를 거쳐 전화로 한국 대구 광영시축구협회의 한 리사를 알게 되었다. 연변의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 가 돈벌려는 점을 리용해 이들에게 출국수속을 해주고 돈벌이하려고 했다.
그는 이 리사와 련계하고 축구학교에서 경기를 한다는 명의로 다른 사람들에게 한국에 가는 수속을 해주기로 했다.
그는 한면으로 자기의 처 리경정과 밀모하고 려권이 있고 한국에 급히 나가려는 사람들을 모집하고 다른 한면으로 연길시스타축구학교 교장 박운철과 함께 획책, 이 학교 명의로 축구팀을 조직하고 15명 선수의 해당자료를 위조했다.
2003년 12월 초, 한국 측에서는 사람을 파견해 초청서를 보내오고 리학삼과 함께 비자를 발급받았다.
/연변일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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