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환 탐방기>
아...아...백두산...!! 하늘이 열리다.
모든 산들을 저 아래에 두고/ 몇억만년 지나도록/아직껏 이것은 산이 아니었다
오 너 백두산/ 그토록 오래된 나날이건만/새로이/ 네 열여섯봉우리 펼쳐라 /장군봉 망천후 사이/ 성난 노루막이 비버처럼/ 가까스로 날라가버릴 몸뚱어리 버티고 선/내 불쌍한 발밑조차/보이지 않아 캄캄하지만/ 수많은 어제였던 오늘이었고/내일이어야 할 오늘이었다/ 활짝 펼쳐라
여기 억만년 세월의 가슴 있다면/ 그 가슴 삼아/열여섯봉우리/ 네 이름을 부른다열여섯봉우리/ 스물여섯봉우리에 걸어/이 나라 시원 속에서/다시 태어나는/ 너를 부른다
목 놓아/너를 부른다/푸른 피 엉겨/푸른 피 엉겨/너를 부른다
[고은 시, 백두산 중 발췌]
숨쉬는 된장으로 생명평화운동을 하는 연화촌의 민들레 마을을 떠나, 두어 시간을 달려 백두산에 가기 전에 먼저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성지라 할 수 있는 용정을 들렸습니다.

용정중학교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대성중학은 윤동주 시인과 문익환 목사님, 그리고 우리나라 최조의 영화인 "아리랑"을 만든 라운규 선생 등 일제강점기 수없이 많은 독립지사 및 문인, 사상가, 예술가를 길러낸 곳입니다. 아래 시비는 현 용정 중학교 내에 세워져 있는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새겨 놓은 것입니다.
"죽는 날 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갈망했던 푸른 청년 윤동주가 이곳 용정에 있는 대성 중학에서 건물에서 그 시적 감수성과 고결한 정신을 길렀다고 생각하니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그리고, 여전히 이러한 선배를 잊지않고 남의 나라에서도 나랏글을 잃지 않고 있는 이곳 용정 중학교를 중심으로한 한민족의 그 끈끈하고 강한 자부심과 열정에 다시 옷깃을 여며봅니다.
대성중학옛터는 지금 기념관으로 변해있는데 이곳에서 우리가 익히 잘 아는 친숙한 분의 어릴 적 사진을 찾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분은 바로 통일 운동의 대부라고 할 만한 늦봄 문익환 목사님 이십니다. 지금도 문익환 목사님께서 1987년 민주화운동을 이끄시는 과정에서 "통일은 다 되었어요, 통일은 다 되었어요" 라고 힘차게 외치시던 모습이 눈앞에 생생합니다. 저 가녀리고 곱상한 외모에서 어찌 그런 강한 울림을 내어놓으시나 궁금했었는데, 여기 용정에 대성중학교에 와보니 그 기운이 모두 만주의 드넓은 기운과 문익환 목사님이 이곳에서 공부하실 당시 한국의 혼이 그대로 이어졌던 이곳 용정의 정신이 문익환 목사님을 그렇게도 크고 아름다운 사람이 된 원동력이었구나라고 바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일송정 푸른솔은~~ 으로 시작되는 "선구자"의 배경이기도 했던 용정에 있는 일송정을 저 멀리 돌아 돌아 이제는 백두산을 향해 나아가서 이윽고, 백두산 아래 첫 마을 이도백하를 지나 백두산 서쪽 초입에 도착하였습니다. 안타깝게도 중국영토에 있는 이도백하와 서쪽 백두산 초입은 더 이상 한글이나 백두산이라는 이름을 쓰지 못하고 온통 중국말과 장백산이란 이름으로 불리우고 중국식대로 난개발되어 이곳이 정녕 한민족의 성지인지 그냥 관광지 인지 모를 정도로 많이 훼손되어져 있었습니다.
매표소를 지나 백두산 초입에 보니 이곳 백두산 동물들을 박제하여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10위안을 받는 곳이 있어 사진을 찍어 봤습니다.
단군신화에 보면 곰이 100일간 쑥과 마늘만 먹고 정성껏 기도를 하여 아리따운 여인이 되어 환웅님과 혼인하여 단군왕검을 낳았다고 되었다는데, 제 아내도 그렇게 곰이 변하여 아리따운 여인네로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설화가 아닌 다른 역사에 보면 원래 웅녀는 아래 아 "곰/감"을 써서 "곰녀/감녀"라고 한 것인데 이 "곰/감"은 우리나라 고어로 신령스럽다/영험하다라는 뜻으로 웅녀는 "신령스런 여인"으로 하는 것이 맞습니다. 우리나라 고어인 "곰/감"은 오히려 일본말에 남아 있는데, 일본말로 신(神)을 말하기를 "가미" 라고 하는 바 이는 원래 우리나라 고어에서 파생되어 나간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곰이 변해 웅녀가 되었다는 곰 설화보다는 원래 "신령스런 여인" 이라는 의미로 우리 민족의 어머니로 이해해야 하겠습니다.
백두산 호랑이는 우리나라 민족에게 늘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이 되어 왔는데, 백두대간을 따라 만주와 한반도 전역에서 수없이 많은 전설과, 민담과 이야기를 만들어 내었고 우리민족의 사내들에게 그 용기와 기백을 심어주었던 이 신령스런 동물이 이제는 멸종위기에 처해 사람들의 손에 그 운명이 놓여있다고 하니 참으로 마음이 짠해져 옵니다.
백두산 초입에서 버스를 타고 산 중턱까지 올라간 후, 다시 지프차로 갈아타고 산을 오른지 어언 한시간여... 드디어 백두산 천지 바로 밑까지 도착하고 이제는 약 10여분만 더 걸어올라가면 바로 천지가 보인다고 합니다. 마음 같아서는 백두산 천지에 올라 절을 드리고 싶었습니다만, 중국 공안들이 각종 종교행위와 만세부르는 등의 행동을 못하게 한다고 해서 천지에 오르기 전 국선도에서 천지명산에 인사드리는 방식대로 하늘에 세번, 땅에 세번, 인간에 세번...총 아홉번 절하고 마음을 가다듬고 우리의 염원을 마음 속 깊이 다짐하면서 서서히 천지를 향해 걸어올라갔습니다.
백두산 정상은 원래 단 몇 분 사이에도 비가오고 안개가 끼고 개는등 날씨가 신출귀몰할 정도로 변화가 심하고 그마저도 6월에서 8월만 사람이 올라가 볼 수 있어 백두산 천지를 맑게 볼 수 있는 경우가 열에 하나 될까 말까 한다고 합니다. 저희가 인사를 드리고 올라갈 때만 하더라도 안개가 자욱히 끼어 바로 앞의 사람도 보일까 말까 할 정도 였습니다. 게다가 백두산 천지의 봉우리에는 잘 쓸려내려가는 흙과 구멍숭숭 뚫린 화산암으로 이루어져있어 까닥 잘못하면 쭉 미끄러져 내려가기 일 수 였습니다.
우리 둘은 마음 속으로 비록 날씨가 좋지않아 천지를 보지 못하게 되더라도 우리들 마음 속에는 늘 맑고 깨끗한 천지로 담아가자고 생각하고 힘겨운 발걸음을 떼어놓았습니다.
드디어 백두산 천지 봉우리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뿌연 안개로 저 멀리 까마득한 아래에 천지가 어렴풋이 보일 뿐입니다.
하지만, 정말 신령스럽게도 갑자기 순식간에 안개가 갑자기 걷히더니 푸르다 못해 시퍼런 천지가 눈 앞에 펼져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에 보면 환웅임금께서 최초로 하늘을 여셨다는 개천이라는 것이 우리 민족의 시작이라고 했습니다만, 참으로 하늘이 활짝 열리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 신령스럽고 영험한 경험은 직접 해보지 않으면 잘 모를 듯 합니다.
하늘이 열리고 천지가 막상열려 눈앞이 툭 트이고 보니, 어마어마한 규모의 천지에 일단 절로 마음이 숙연해졌습니다. 제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크고 웅장한 장관에 압도당하고 까마득히 높은 구름 위 봉우리에서 저 아래로 아스라히 펼쳐진 절벽 밑에 푸르디 푸른 천지가 있는 것을 보니, 이곳이 산꼭대기라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막상 백두산 천지에 올라서보니, 우리 민족 고유의 심신수련법인 국선도(밝받는 법)의 시작을 설명한 수도자들에게 대대로 전승되어온 하늘함 도인 (천기도인)이야기가 생각이 났습니다.
하늘함 도인(天氣道人) 이야기"아주아주 옛날, 지금부터 9700년전 일이다. 그 때 하늘함 道人이란 분이 계셨는데, 이 어르신께서 밝돌법을 세상에 전하셨단다.
하늘함 道人은 원래 백두산 근처에 있던 어느 마을의 촌장(村長)이었다. 그 분은 힘이 장사였고 지혜가 출중했다. 게다가 인품이 훌륭하여 마을 사람들을 잘 보살폈다. 당시 백두산 근처 마을들은 해마다 마을 대항 石戰시합을 벌였었다. 하늘함 道人의 마을은 이 시합에서 늘 우승했다.
세월이 흘러 하늘함 道人도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이 되었다. 氣力도 많이 쇠약해졌다. 하늘함 道人이 힘을 못쓰는 바람에 어느 해엔 그 분네 마을이 석전(石戰)시합에서 지고 말았다. 시합에서 진 것은 마을 전체의 수치였다. 하늘함 道人은 매우 큰 충격을 받았다. 자기가 힘을 못 써 시합에 졌다고 생각하니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었다. 패배의 책임이 모두 자기한테 있는 것 같았다.
하늘함 道人은 이미 늙은 몸이지만 힘을 다시 기르고자 했다. 한창때 용솟음치던 기력을
되찾고 싶었다. 그래서 몸을 단련시키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마을 일을 맡긴 다음 백두산으로 들어갔다.
백두산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는 하늘함 道人의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 없었다. 흐르는 세월을 한탄도 해보고, 누군가가 등 뒤에서 자기를 비웃는 것 같아 뒤를 돌아다보기도 했다.
백두산은 웅장한 자태로 머리에 푸른 하늘을 이고 의연히 서 있었다.
하늘함 道人 자신을 향해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았다. 하늘함 道人은 크나큰 勇力을 기르기 전에는 결코 하산(下山)하지 않으리라 굳게 마음 먹었다. 백두산 깊고 깊은 산중에는 사람 자취가 전혀 없었다. 둘레가 몇 아름씩 되는 나무들이 빽빽하게 우거졌고, 그 사이에서 갖가지 짐승들이 마음껏 뛰놀았다. 날짐승 길짐승 우짖는 소리가 번갈아가며 메아리쳤다.
하늘함 도인(道人)은 심호흡을 하면서 한발 한발 백두산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얼마쯤 가니 수련하기에 좋은 곳이 있었다. 위가 툭 트여 하늘이 시원하게 잘 보이고 가까이에 시냇물이 흐르는 곳이 있었다. 하늘함 道人은 여기에다 움막을 지었다. 그리고는 바로 수련을 시작했다. 심신(心身)을 단련하는데 전력을 기울였다.
젊은 시절의 기력(氣力)을 되찾기 위해 산비탈을 뛰어서 오르내렸고, 무거운 돌들을 들어올려 멀리 던지곤 했다. 마음을 닦으려고 정좌수행도 많이 했다. 한번 자리를 잡고 앉으면 온종일 그대로 있었다.
고요히 명상에 잠긴 하늘함 道人한테로 곰 호랑이 같은 맹수들이 종종 다가왔다. 어떤 놈들은 아주 바짝 다가와 하늘함 道人의 얼굴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거나 발로 툭툭 건드렸다.구렁이들이 하늘함 道人의 몸을 타고 지나갈 때도 있었다. 그래도 하늘함 道人은 목석처럼 꼼짝하지 않았다. 손끝 하나 안 움직이고 정신을 오로지 한곳에 집중했다. 맹수들은 하늘함 道人 주변에서 얼마간 어슬렁거리다가 다른데로 떠나갔다.
하늘함 道人이 백두산에 들어온 지 어느덧 몇년이 흘렀다. 그 사이 하늘함 道人의 氣力은 한창 젊었을 때보다 몇 배 더 강해졌다. 마음은 한없이 고요해졌고, 정신은 지극히 맑아졌다.
하늘함 道人은 만물(萬物)의 이치를 환하게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는 됐다싶었다. 그래서 마을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하늘함 道人은 자신이 기거하던 움막을 깨끗이 정리한 다음 하늘과 백두산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극진히 공경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거듭거듭 땅바닥에 엎드렸다. 푸른 하늘과 드높은 백두산이 자신을 향해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것 같았다.
하늘함 道人의 가슴에는 기쁨이 충만했다. 환희심이 온 몸에 두루 스며드는 것 같았다. 마음은 또 더할 수 없이 자유로웠다.
하늘함 道人은 날아갈 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산에서 내려왔다. 마을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갑작스레 가슴 한 구석이 휑하니 비워진 것처럼 공허해졌다. 그 비워진 곳으로 왠지 모르게 슬픔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그리던 고향, 보고 싶었던 사람들한테로 돌아가는데 신명이 안 나고 슬픔이 북받치니 이상한 일이었다.
하늘함 道人의 발걸음이 차차 무거워졌다. 그러다가 어느 개울가에서 우뚝 멈췄다. 하늘함 道人은 개울가 바위위에 걸터 앉았다. 문득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갔다. 세상 일을 돌이켜 생각해보니 허망하기 그지 없었다. 부질없는 욕망 때문에 허덕이며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이 가엾었다. 석전(石戰)시합에 졌다고 힘을 기르러 백두산으로 들어온 자신의 모습도 우습게만 보였다.
그까짓 시합에 지면 어떻고 이기면 어떤가. 명예를 얻어 뭣에 쓸건가. 옛날엔 명예가 최고인 줄 알았는데 다 우매한 생각이었다.
하늘함 道人은 하늘을 보며 자신한테 들으라는 듯이 중얼거렸다. 명예에 집착하던 마음마저 떨치고나니, 세상에 돌아가 얻고 싶은 게 하나도 없었다. 하늘함 道人의 입에서 [허허]하고 헛 웃음이 터져나왔다.
바로 그 때였다. 개울 아래쪽에서 하늘함 道人의 헛웃음에 화답하듯 커다란 웃음 소리가 갑자기 들려왔다.
"하하하"
하늘함 道人이 깜짝 놀라며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개울 옆에 웬 소년과 소녀가 서 있었다. 소년은 손에 커다란 물고기를 한 마리를 들고 있었다. 소년이 물고기를 들여다보며 이런 얘길 했다.
"하하하, 참으로 어리석고 어리석구나. 앞으로 나갈 줄만 알았지 뒤로 빠질 줄은 모르는구나. 하하하"
소녀도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얘, 물고기야. 넌 이 개울물이 세상에서 제일 넓은 줄 알지. 안 그래. 개울을 따라 내려가면 아득히 넓고 넓은 바다가 있단다. 널랑 그리고 가거라. 거기서 마음껏 뛰놀아라"
소년 소녀는 물고기를 개울물에다 도로 놓아주었다. 그리고는 소년이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더 덧붙였다.
"인연이 있으면 백두산 상상봉에서 다시 만나자꾸나"
소년 소녀는 물고기를 놓아주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눈 깜짝할 사이였다. 하늘함 道人은 꿈을 꾸고 난 기분이 되었다. 소년소녀가 물고기한테 해준 얘기들이 왠지 하늘함 道人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앞으로 갈 줄만 알고 뒤로 갈 줄은 모른다]
[어리석고 어리석다]
[넓고 넓은 물이 있다]
하늘함 道人은 불현듯, 그 얘기들이 물고기한테가 아니라 바로 자기한테 해 준 말임을 깨달았다. 마지막 말은 자기더러 백두산 상상봉으로 오라고 한 얘기가 틀림없었다.
하늘함 道人은 백두산 상상봉을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며칠 후에야 상상봉 근처에 이르렀다.
하늘함 도인은 백두산 상봉으로 올라가면서 하늘을 향해 며칠 전에 보았던 소년소녀를 다시 만나게 해주십사 하고 간절히 빌었다. 왠지 모르게 그들을 만나면 더할 수 없이 귀중한 가르침을 받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크나큰 기대로 마음이 설레고 부풀었다.
백두산 상봉은 깊고 깊은 고요에 휩싸여 있었다. 짐승들의 기척과 바람소리만이 가끔 한번씩 적막을 깨치고 들려왔다. 하늘함 도인은 신비함에 젖어 냇물을 따라 위로 올라갔다.
거대한 폭포를 지나서 한참 더 오르니 드넓은 호수가 펼쳐져 있었다. 바로 천지(天池)였다. 거울처럼 맑은 천지의 수면에 백두산 상봉과 푸른 하늘이 신령스런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하늘함 도인은 天池에서 아래로 흘러내리는 냇물에 몸을 씻었다. 정성스럽게 물을 끼얹으며 마음도 함께 닦았다. 그리고는 호숫가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고요히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겼다. 그의 마음은 천지의 물처럼 잔잔했다.
얼마쯤 그렇게 앉아 있는데, 갑자기 근처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하늘함 도인은 퍼뜩 눈을 떴다.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소년 셋이 호수에서 목욕을 하고 있었다. 한 명은 전에 보았던 소년이었다.
소년들은 목욕을 하다가 물놀이를 즐겼다. 자맥질도 하고 물장구도 치면서 한참동안 신나게 놀았다. 그러다가 모두 물 속으로 몸을 감췄다. 소년들은 한번 몸을 감추더니 좀처럼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하늘함 도인은 물 속에서 어찌 이렇게 오래 있는가 이상히 여기며, 소년들이 사라진 곳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시간이 자꾸 흘렀다. 몇 시간이 지났다. 하늘함 도인은 소년들이 모습을 안 나타내자 자신이 환상을 본게 아닌가 의심했다. 이 때 한 소년이 불쑥 물 위로 떠올랐다. 다른 두 소년도 뒤이어 모습을 나타냈다. 소년 하나가 [아이구 실컷 잤다]하면서 깔깔 웃어댔다. 하늘함 도인은 깜짝 놀랐다. 어떻게 물 속에서 잠을 잔단 말인가. 믿을 수가 없었다. 하늘함 도인이 넋을 잃고 있는데 소년들이 그에게 다가왔다.
"할아버지께선 어디에서 오셨습니까. 어디로 가시는 길인가요"
며칠 전에 보았던 소년이 하늘함 도인한테 공손히 물었다. 소년의 음성은 아주 청아했다. 옥구슬 구르는 소리 같았다. 용모도 무척 수려했다. 눈에서는 아침 햇살 같은 광채가 뿜어나왔고, 얼굴은 막 피어난 꽃처럼 화사하고 맑았다. 정면으로 마주보려니 눈이 부셨다. 이 세상 사람 같지가 않았다.
"저는 백두산 아랫 마을 사람입니다. 우연히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하늘함 도인은 일어서서 예를 갖추고 대답했다.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