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해산하려고 연변부유보건원(延邊婦幼保健院) 산과(産科)에 입원 했을 때에, 따라가서 이틀간 호리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병실에 같이 입원해서 대산(待産)중인 한 한족(漢族) 여자와 그의 남편 되는 젊은 해방군 군관의 웃기던 일을 나는 지금도 잊을수가 없다.
아내 되는 한족 여자는 남편보다 썩 어려보였다. 좀 눅수그레해보이기는 하지만 군관 남편은 계급이 중좌(중령에 해당함)였는데도, 젊은 아내 앞에서 절절 맸다. 이마에 물수간까지 동이고 아이낳으러 들어갔던 한족 여자가 산대(産臺)에서 질러대는 비명이 병원 온 복도에 울려퍼졌다.
달을 넘겼는데도 산기를 느끼지 못해 병원에 와서 자궁을 수축시키는 주사(催産濟)를 맞고 온 하루 나절을 비명으로 보내다가 비로소 산실에 실려갔는데, 거기서도 또 너덧시간 풋풋하게 비명을 지르고 비로소 아들을 낳았다. 영아는 관찰실에 옮겨가고 산모만 병실로 실려왔는데, 그녀는 기다리고 있는 남편을 보더니, 방금 아이 낳은 산모 답지 않게 벌떡 뛰어일어나면서 다짜고짜로 남편의 귀뺨부터 후려갈기는것이었다.
그리고는 퍼붓는 욕설! 그 욕설을 한번 적어보겠다. 이 개같은 거짓말쟁이야! 난 아이 낳다가 하마트면 죽을번 했다. 넌 내가 얼마나 혼뜨검 났는지 모르지? 난 이젠 다신 너한테 속지 않아! 그리구 같이 자지두 않을거야! 또 한번 그거 하잔 말만 해봐라! 난 너랑 이혼하겠어! 아이두 싫어, 니가 가져! 그리구 당신은 지금 보기두 싫으니까 당장 나가! 내 앞에서 사라지란말이야!
그 한족 여자가 어떻게나 악을 쓰면서 소리를 질러대는지, 찍소리도 못하고 복도에 쫓겨나온 군관 남편은 한참동안 아무말도 못하면서 담배만 피여물고 섰다가 나중에 중얼거리는 소리가! 아니! 저런 양심없는 년 봤나? 그거 하는거, 자기도 원했잖아! 어떤 때는 내가 피곤해서 싫은데도 오히려 자기쪽에서 먼저 해달라구 달려들군 했으면서, 지금 와서는 다 내 잘못인것처럼, 나한테만 덮어씌우구, 귀뺨 때리구 하는거야?
[2] 믿으면 영생을 보장하겠다!
신부전(腎不全)으로 앓는 남편 병치료에 드는 돈을 벌려고 친척방문차 한국에 가서 불법체류중인 아내 때문에 교회에 나가기 시작한 한 친구가 들려준 이야기인데, 공산당원인 자기가 지금은 교회에 나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게 된 것도 실은, 한국에서 불법체류중인 아내 때문이였다고 하는것이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 아내 서껀, 수백명, 수천명의 불법체류자들을 돕고 있는 서울조선족교회의 서경석목사님의 설교를 듣게 되면서부터, 친구의 그 아내는 물론 처음에는 오로지 강제추방을 면해보기 위해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마음으로 서울조선족교회에 나갔던것이지만, 그후부터는 진심으로 그 설교에 빠져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매번 남편과 전화 통할 때마다, 여보세요! 당신도 하나님을 믿으세요! 예수님을 믿으세요! 종용(慫慂)했고, 열심히, 그리고 경건하게, 또 그리고 확실한 신념을 가지고 아내 뿐인 아닌 모든 강제추방의 위기에 놓인 불법체류자들을 위해서 기도해달라고 했다는것이었다.
그리고 엊그제 친구의 그 아내는 받지못한 밀린 노임도 포기한채로 보짐을, 그동안 여기저기서 주어모은 헌 옷가지들만 잔뜩 한짐 해서 지고 덜컥 연변으로 돌아와버렸다. (4년 미만이라서, 물론 다시 돌아가는 사증은 받아가지고 나왔다고 한다.) 갈 때 진 빚을 물고나서 남은 돈도 얼마 없는데, 친구의 병세는 나날이 더해가고, 이제 투석(透析, 피를 씻어내는것)을 하지 않으면 금방 죽게 될것이라고 의사가 말한다. 하지만 다시 그 아내가 전화를 바꿨을 때에, 그녀는 아주 담담하고 태연한 목소리였다.
청설선생님도 크리스쳔 맞지요? 그러니 우린 서로 말이 통할 것 같습니다. 그래요, 저도 이젠 크리스쳔이예요, 남편 병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반드시 무사할것입니다. 왜서냐구요? 남편도 역시 크리스쳔이니까요, 전 비록 강제추방 때문에 돈은 벌지 못했지만, 그대신 돈 주고도 살수 없는 더 크고 귀중한 것을 얻어왔답니다, 뭔지 아세요? 바로 크리스쳔이 되어온거랍니다. 그리고 그 동안 나뿐만 아니라 남편도 역시 크리스쳔으로 만든거예요! 때문에 남편은 절대 죽지 않습니다. 신부전, 그런거 다 뭔데요? 그런 병 때문에 사람이 죽나요? 성경에 뭐라고 했습니까? 성경에서, 하나님께서는 "믿으면 영생을 보장하겠다"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시답니다!
[3] 끝까지 서목사님한테 매달려볼거예요!
돈이 없어 투석을 못하자 불과 한달도 넘구지 못하고 친구는 가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친구의 그 아내도 다시 한국으로 나갔는데, 내가 알기로 한 3, 4개월만 지나면 그녀도 역시 한국 정부가 허용하고 있는 총 체류기간 얼마얼마를 넘구게 되니까, 어김없이 쫓겨나게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듣자니 그동안, 그녀의 신앙에도 적이 동요(動搖)가 와서, 오늘은 한기총에 나가고, 내일은 서울조선족교회에 오고, 모레는 집구석에 들어박혀 흐느끼고, 글피에는 또 못 받은 빚 받으러도 나다니기도 한다는데, 당초 "믿으면 영생을 보장하겠다!"는 성경속의 그 "신과의 계약"(Testament)까지는 몰라도, "한번 믿고 달려들어봐서 강제추방만은 면하게 될지 혹시 누가 아나?" 이런 식으로, 모세를 중개자 삼아 맺었던 야훼의 약속이 아니라, 최근에는 예수께서 직접 하나님을 대신하여 맺었다는 이 "신약"(The New Testament)속의 약속과도 같은, 세상에 내노라는 당당한 목사님들 얼굴만 하나 쳐다보면서 그녀는 물론 하루하루를 보내오다가 드디어 빈사(瀕死)의 변두리에까지 왔다.
어제께 통한 전화에서 그녀는, 물론 자진출국하지는 않을것입니다. 그리고 잡혀 돌아가기 전까지는 계속 교회 나갈거예요! 목사님들한테 매달려보겠어요! 하나님한테 매달려보겠어요! 그래 내가, 이제는 서경석목사님께서도 불법체류자들이 자진 출국하기를 권장한다고 들었는데? 하니, 그렇지만 선택하는 것은 자유에 맡긴다고 했습니다. 나만이라도 서목사님한테 끝까지 매달려볼거예요!
[4] 약속은 지켜지는가?
"믿으면 영생을 보장하겠다!"
"믿고 달려들어보자, 국적회복까지는 몰라도, 혹시 아나? 강제추방이라도 면하게 될지?"
나는 야훼가 모세를 중개자 삼아 맺은 성경속의 이 약속을, 일정한 법률적 효과의 발생을 목적으로 하는 두 개 이상의 의사 표시의 합치에 의해 성립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계약’(Contract)을 종교적으로 격상시킨 것이라고 보고 싶다. 그리고 어느 일방이던 그것이 자의던 아니면 타의던 약속이 파기되면 반드시 배상을 해야하지만, 다시 그것이 예수가 하느님을 대신하여 맺은 그 "신약"(The New Testament)속의 약속이오, 그리고 그 신약을 표방하고 있는 종교(기독교)라면, 그 종교의 어른들로서 목사님들이 그 약속을 깨었을 때에는 반드시 야훼의 징벌을 각오해야 하는것이다.
그러나 다행한 것은, 서울조선족교회 서경석 서껀 최황규 등 여러 목사님들 발언을 지지콜콜 읽어본 결과로, 그들은 결코 어떤 단정(斷定)적인 약속을 한 것은 하나도 없다. 즉 믿으면 영생을 보장하겠다는 식의 성경 같은 약속은 하나도 없다는것이다. 그냥 같이 노력해서 되면 좋고, 안되면 말고, 와서 죽고살고 하나님만 믿으라는 뜻도 없다. 그래서 하나님만 믿으면 다 풀린다는 허황한 약속도 해준 것을 못 봤다.
이것만 봐도 서경석목사님은, 어쩌면 하나님 앞에서는 대단히 죄송스러울지 몰라도 조선족 불법체류 동포들에게는 할만큼 했다. 사회계약설의 관점에서 보면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 사회와 사회의 관계 등 모든 관계가 인간 "자유 의지"의 계약에 의해 규정된다. 관습이나 도덕이나 법규뿐만 아니라 인지 상정이라는 것까지도 너와 나와 그 사람의 이해의 공감대 위에서 맺어진 계약이오, 결코 절대 어느 일방의 유혹이나 강요에 의해 이뤄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짠 소금물로 텅 빈 창자를 달래며 단식을 했던것도 서로 이해의 공감대 위에서 자유롭게 행해진것이고, 국적회복신청비로 돈 10만원을 냈던것도 역시 자원에 의해서다. 더 물고 늘어지다가는 이제 남은 것은 "국제망신"밖에 없다. 그렇지만 알아야 할 것은, 그 물고 늘어지는 사람들속에는 우리 조선족들보다는 오히려 그런식으로 먼저 챙기지 못해서 배 아파났던 한국인들이 더 많다는것이다. 이제 세상은 점점 더 삭막해진다. 시시비비를 떠나 씁쓸하기 짝이 없다. 누구를 믿을것인가!
[5] 사랑탑도 무너지는 도리가 있거니!
내가 너를 믿지 못하고, 네가 나를 의심하고, 너와 내가 그 사람이 기대하는 신의 수준을 맞춰주지 못하는 계약 불이행의 한국 교단에서, 목사님들만 쳐다보며 한껏 희망에 부풀었던 시대는 다 가는 같다.
"믿으면 영생을 보장하겠다"는 거짓말에 홀려 남편을 보내버렸던 친구의 그 아내와, 그리고 지금도 그 "돈" 때문에 물고늘어지는 정의용사(正義勇士)들한테도, 어떤 계약을 이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왜 그런 계약이 생겨났는지를 한시도 까먹어서는 안 된다고 일깨워주고 싶다. T. 홉스(Thomas Hobbes)는 “인간은 이기적이어서 모든 사람이 자기 이익만을 끝까지 추구하는 자연상태에서는 "만인(萬人)의 만인에 대한 투쟁만 있을 따름”이라고 주장했었다.
자, 계속 투쟁할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계약을 맺어 지킬 것인가? 아니면 혼뜨검 맞고 남편 귀뺨 때리기를 계속할것인가? 그러나 그러다가 만약 세월이 흐르다가 혼뜨검도 적이 사라지고 다시 그 짓거리가 또 그리울 때는 이불속에 누구랑 끌어들인단말인가! 그러니 남편 귀뺨은 때렸더라도 내쫓지는 말라, 그러다가 남정네가 노하면 아낙네가 되쫓겨날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냥 남정네가 이제는 나 몰라라, 너 싫어라고! 댕기 풀어 맹세했던 일이 언제 일이더냐고, 다른 놈팡이와 단꿈을 꾸면, 그때가서는 어찌하겠는가! 천년을 두고 쌓은 사랑탑도 무너지는 도리가 있거니, 그때야말로 진짜 후회막급(後悔莫及)이 될것이다!
정신을 차리라!
그리고 은혜는 은혜로 갚는 우리 조상전래(祖上傳來)의 미덕을 잊지말아야 할 것이다! (2004. 2. 28 뉴욕에서.)
글쓴이: 재미동포 청설작가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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