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 잔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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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 잔의 행복
  • 동북아신문 기자
  • 승인 2008.06.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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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길우의 수필 104>

申 吉 雨   skc663@hanmail.net

문학박사, 수필가, 국어학자, 서울 서초문인협회 회장

 

 

나는 날마다 차 몇 잔을 끓여 먹는다. 강의가 연이어 끓일 틈이 없을 때에는 식은 차라도 한 잔 따라 마신다. 이제는 차를 끓여 마시는 일이 목이 마를 때 물을 마시듯이 나의 생활의 일부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내 연구실 책상 위 한 쪽에는 언제나 전기주전자와 찻잔을 놓아둔다. 책상 옆 캐비넷에는 늘 몇 가지의 차를 가져다 놓는다. 그래서 먹고 싶으면, 생각이 날 때면 습관처럼 전기꽂이를 꽂곤 한다.

이런 습관은 근래에는 집에서까지 따르게 되어, 내 작은 서재에도 책상 옆 조그마한 서류 상자 속에는 내가 즐기는 몇 가지의 차를 늘 넣어두게 되었다. 물론 구 상자 위에는 전기주전자와 찻잔이 함께 놓여 있다.

이런 좀 엉뚱한 나의 차생활 때문에 우리집 아이들은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지만 불만인 것은 사실이다. 첫애를 시켜서 차를 끓여 오게 하였던 것이 인제는 막내가 맡게 되도록까지 내게 차를 끓여 갖다 주는 일은 그들이 내게 해주는 즐거운 보람이요 하나의 작은 효도(?)로써의 의미까지도 그들에게는 있었던 모양인데, 언제나 생각날 때마다 직접 끓여 먹고 있으니 불만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가장 불만인 사람은 아내이다. 차를 직접 끓여 먹는 것은 아이들의 작은 행복을 빼앗는 것이라는 이유로 불평하지만, 실은 근원적으로는 하나의 아내 자신의 역할 상실에서 오는 항변임이 틀림없다.

그래서 가끔은, 깊어가는 밤 시간이라든지 휴일 같은 날이면 내 방에 아이들을 불러다 놓고는 손수 끓인 차를 함께 마시며 담소를 나누어 내 딴에는 그들을 위로(?)도 해 본다. 특히, 새로 사온 차가 있을 때에는 차맛을 보이기 위해서도 그러곤 한다. 그렇지만 그들도 가끔은 생각지 않은 시간에 나름대로 차를 끓여 들고 들어오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그들의 불만은 가셔지지 않는 것 같다.

이런 나의 차생활은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처음 커피를 즐기던 시절에는 거의 즉석커피를 썼기 때문에 가족이 있을 때에는 언제나 그들에게 부탁했었다. 다른 곳에 가서도 부탁할 처지면 시켜서 마셨다.

그러다가, 결명자의 맛을 알게 되면서부터는 점차 차생활이 바뀌게 되었다. 음료수 대용으로 결명자를 즐기게 되자 직장에서나 집에서나 그것을 늘상 끓여 먹게 되었다. 아이들도 입맛이 들면서는 그것만을 먹게 되었고, 직장 동료 몇몇도 그 구수한 맛에 나처럼 음표수로 상용하게까지 되었다.

이렇게 시작한 나의 차생활은 오미자, 구기자 같은 열매차로 곧 옮겨지게 되었고, 이제는 그것을 끓여 먹는 것이 하나의 일과가 되어버린 것이다.

실제로 차를 끓이는 것은 하나의 즐거움이다. 잔잔한 음악처럼 울리는 끓는 소리, 봄철의 아지랑이처럼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 끓음에 따라 풍겨나는 내음새, 따스한 찻잔의 촉감,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각각의 특성이 스며드는 차들의 감칠맛, 이러한 즐거움, 다시 말해서 청각 시각 후각 촉각 미각의 5감의 즐거움을 함께 가져다 주기에 더욱 즐거운 것이다. 끓여 내어 마시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즐겁고, 그 하나하나가 즐길 만한 것이다. 그러기에, 그 차가 어디에 좋고 어떤 효과가 있다는 것 등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저 마시고 싶기에 끓이고, 끓이는 것이 즐겁기에 끓이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런 속에서 나대로의 즐거움을 맛보며 삶을 그냥 즐길 뿐이다. 그러다 보니, 인제는 차를 끓여 먹는 것이 하난의 생활의 일부가 되어 버린 것이다.

차를 끓이는 여유, 그리고 언제나 마음 내키는 대로 차를 끓여 마실 수 있는 행복, 이 작은 행복이 늘상 주어진다는 것은 정말 얼마나 흐뭇한 일인가? 내게는 이 작은 것이 어쩌면 가장 큰 행복인지도 모른다고 여기면서,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전기주전자의 꽂이를 꽂곤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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