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악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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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악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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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4.0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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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동포들을 위해 내가 하고 있는 일은 그야말로 인기없는 악역이다.
동포들로부터 그런 원성을 듣지 말고 차라리 가만히 있으라고 조언을 하는 동포들도 많다.

그런데 나는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동포들이 단지 불법체류 사면청원운동만 하면 좋다. 나도 얼마든지 참여할 수 있다. 그러나 사면청원운동이 불법체류로 이어지는 것을 나는 도저히 가만히 보고 있을 수 없다. 그 결과가 얼마나 참담한가를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사회운동은 강력하게 맞붙어 싸울 때가 있고 적절히 조율하면서 협상할 때가 있고 다음 국면으로 전환할 때가 있다. 투쟁만이 능사가 아니다.

나의 이 슬픈 악역으로 나는 많은 상처를 받을 것이고 많은 동포들로부터 외면당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서목사가 재외동포법 개정운동에 적극 나서지 않아 재외동포법이 별무효과가 되었다고 비판할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서목사가 함께 하지 않아 불법체류사면청원운동이 실패했다고 말할 것이다. 실제로 지난번에는 서목사가 국적회복운동을 하는 바람에 재외동포법이 개정되지 않았다는 비난을 온몸으로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동포들을 사랑하는 방법이 있다면 온갖 비난을 한 몸에 받으면서도 동포들이 절대로 불법체류하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동포들이 시대의 징조를 알아야 한다. 이제는 더 이상 불법체류하는 사람에게 기회가 오지 않는다. 합법의 길로 가야 한다. 정부가 이번에 귀국하면 6개월 후에 3년간 고용허가제로 일하게 해 주겠다는 약속이 얼마나 파격적인 것인가를 왜 그렇게 모르는 것인가? 또 국무조정실의 최경수 차관이 그렇게 간절하게 확약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못 믿겠다고 하고, 가면 못 돌아온다는 말만 되풀이 하면,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정말로 당신들이 못 돌아온다면 내가 죽음을 각오하고 한국정부를 상대로 무기한 단식을 하겠다고 약속하고 있지 않은가? 최차관은 동북아신문과의 인터부를 통해 재입국을 완전히 확약해주었다. 여러분은 차관이 얼마나 높은 직책인 것을 모르는가? 장관 다음의 직책인 것을 모르는가? 최차관은 이번 고용허가제와 조선족 문제의 최고 책임자다. 총책임자가 말해도 못믿겠다니.....어쩌란 말이냐?

동포법개정이 불법체류 사면과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이 1%만 있었어도 그 운동에 나도 참여했을 것이다. 전혀 가능성이 없는 일에, 오히려 동포들을 미혹에 빠뜨리는 일에 내가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 것이냐?

동포들로부터 비난받는 것이 가슴 아프다. 그동안 동포들로부터 너무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러나 사회운동을 할 때에는 실현 가능성이 1%라도 있어야 한다. 나는 하나님이 아니다. 나는 지금 ‘화성에 억울하게 갇힌 사람들도 똑같이 6개월 후에 재입국하게 해 달라’는 너무도 당연한 요구조차 관철시키지 못하고 있다. 당연히 정부가 해야 할 일도 이루어내지 못하고 있는 판에 절대로 성취 불가능한 일을 나보고 어떻게 하란 말이냐?
동포들은 금년 8월이 되면 내가 하는 말이 옳았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때까지는 나는 온몸으로 비난을 받아야 한다. 그야말로 슬픈 악역이다. 그런데 이 악역은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다. 다만 여러분은 절대로 불법체류하지 말아 달라. 그로 인한 後果가 너무도 엄청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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