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고향의 삶의 터전 지켜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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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고향의 삶의 터전 지켜나가겠습니다”
  • 동북아신문 기자
  • 승인 2008.06.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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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탐방기-중국 연수현 김수길 전임 현장을 찾아서

지난 6월 22일 저녁, 재한연수현향우회에서는 구로구에서 중국 흑룡강성 연수현 김수길 전임 농업현장을 환영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반갑습니다. 김수길 전임 현장님-재한연수향우회”란 글에는 고향 어른을 반기는 따뜻한 반가움이 묻어있었다.   

중국 흑용성 연수향의 조선족은 1903년부터 시작되어 10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개혁개방 전에는 조선족이 1만 3천여 명에 조선족소학교가 15개소, 완전중학교(고등학교포함)가 1소가 있었다. 그러나 현재 연수현의 15개 조선족 촌락이 6개로 합쳐졌고, 소학교도 2소, 중학교는 1소로 줄어들었다. 인구도 호적이 있는 사람이 8천, 실제로 거주하고 있는 조선족은 3천여 명에 불과했다. 그들 대부분이 노인과 애들이란 데 더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 아울러 조선족이 소유하고 경영하던 삶의 터전- 농촌의 토지를 켜나가는 것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되었다. 그래서 기자는 이런 의문을 갖고, 김수길 전임 현장과 인터뷰를 가졌다.

-늙은이, 어린이 3천여 명이 그 많은 농토를 지킬 수 있나요?

 =네, 지켜야지요. 우리는 ‘연수현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를 내와서 법무서비스센터를 운영하며 3년간에 걸쳐 토지경영 소유권이 조선족의 손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법제도장치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각 촌락을 돌며 임대 검정을 해서 공증을 해두고 있지요. 조선족의 경영소유권을 보호하는 작업을 하는 셈입니다.

-혹시 조선족들이 국내 도시나, 외국으로 빠져나가면서 토지를 한족들에게 팔아버리는 현상은 없는지요?

=토지는 정책이 변하지 않은 한 팔 수 없습니다. 장기 임대료를 받고 임대 줄 수는 있지만, 그래도 경영권은 조선족이 갖고 있지요. 그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의 자손들이 계속 경영을 하게 되어 있고, 촌민위원회에서 관장을 하고 있습니다.

-조선족이 거의 빠져나가 노인과 애들만 있는 상황에서 토지경영을 제대로 할 수 있나요?

=토지를 다른 조선족에게 임대주어 다루게 하고 연말에 임대비를 받아쓰는 가정들이 많은 편입니다.

-한국이나 외국서 돈 벌어 귀향하는 조선족들이 있나요?

=네, 지금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한화의 화폐가치가 떨어지고, 중국의 경제수준이 올라가면서 한국이 더는 조선족들이 돈 벌 수 있는 유일한 노다지판이 아니라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동광촌의 김철선 지부서기는 한국에서 10년간 번 돈을 투자해서 아주 큰 기계화농장을 꾸려 경영하고 있습니다. 정말 조선족의 좋은 귀감이 되고 있지요.

-보통 한 가정에 논이 얼마씩 배정을 받았는가요?

=흑룡강 연수현 지방은 논이 많기에 가정 당 2~2.5쌍(1쌍이 10무) 배정 받았어요.

-아주 많은 편이네요. 귀향한 조선족들은 지금 어떻게 경영하고 있나요?

=무공해입쌀을 생산해서 녹색식품으로 포장해서 값을 올려 판매하고 있지요. 수입이 짭짤합니다. 한국은 자원개발을 할 때가 없기에 조선족들은 돈을 벌어 귀향하면 자원개발을 잘해 돈을 벌 수가 있습니다. 이제는 전처럼 조선족의 수량(인구 수)을 갖고 농촌을 지키는 시대가 지났습니다. 소수가 다수의 지반을 지켜나가게 되어있지요. 관건은 지도부의 관리입니다. ‘중국에서 조선족은 볼일 다 봤다’는 말은 틀린 말입니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할 것은 조선족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자멸한다는 것입니다. 이국타향에 있어도 서로 간 끈끈한 유대감을 갖고 서로 의지한다면 새로운 모델의 조선족사회가 형성될 것입니다.

-고향에서 삶의 터전을 지켜나가는 일들을 또 어떻게 하고 있는지요?
=촌에는 지금 노인협회가 있습니다. 그들이 마을의 질서와 환경을 관리하고 삶의 터전을 가꿔나가고 있습니다. 마을주위에 꽃을 심고, 길을 수리하고, 어린애를 보호하고, 혹 조선족이 불이익을 받게 되면 현에까지 찾아와서 법놀음을 해서라도 권익을 찾지요. 대단합니다.
그리고, 우리 연수현에서는 조선족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풍속을 지키려는 노력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2004년에는 60만자에 달하는 ‘연수현 조선족 100년사’를 편집해서 중앙민족출판사에서 출판했습니다. 이는 중국 현급에서 제일 처음 나온 조선족역사 자료집이라 하겠습니다. 조선족의 흔적을 남기려는 노력이었지요. 후대들이 보고 우리 선조들의 어떻게 이 땅을 개척해 왔고 미량풍속을 이어 왔는가를 잊지 말고 전통을 계승하게 하자는 것입니다. 

-그런 노력이 고국에는 알려졌나요?

=네, 2006년 7월에 한국 역사계와 문화계에서는 고찰단을 파견해 와서 이민사를 고찰하고 갔고, 작년 9월에는 김제시 정부 시민일보사에서 기자들이 찾아와 고찰하고 갔습니다. 그 책이 중국에서 조선족이 어떻게 살아왔는가 하는 귀중한 역사자료가 된 것입니다.

-그렇군요. 한국에 나와 있는 고향 분들에게 부탁할 말씀이 있나요?    

=이런 기회를 마련해준 재한연수향우회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한국에 와서 힘들고 복잡한 환경 속에서 돈을 버느라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앞으로 우리 연수현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는 재한연수현조선족향우회와 손잡고 협력과 교류를 넓혀가면서 여러분의 든든한 뒷심이 되겠습니다. 고향에 땅이 있는 사람들은 우리 협회에 맡겨 운영하게 하십시오. 우리 협회는 홈페이지도 있고 하니 들어가 보시고 이메일이나 관련 책임자들과 전화로 연락을 하면 좋겠습니다. 또, 두 가지 기쁜 소식을 알려드리겠습니다. 할빈시 조선족 노인문구대가 우리 연수에 와서 경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금년 후반기에 연수 현조선족중학교 건교 50돐 기념행사가 있습니다. 시간 나시면 여려 분들께서 고향에 다녀가시기를 바라며, 적극 후원을 바랍니다.

기자의 취재가 끝나기 바쁘게 김수길 전 현장의 환영식이 당금 시작됐다. 고향사람들은 저마다 반가운 마음으로 김 현장의 공덕을 찬미하면서 고향과의 유대감을 잘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결의했다.

연수현은 비록 조선족이 많지 않았지만 응집력이 강하고 서로 돕고 서로 의지하면서 고향의 삶의 터전을 지켜나가는 데 있어서 중국 조선족의 귀감이 되고 있었다.

본지 이철구 기자  이동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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