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의 헤밍웨이를 찾아서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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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의 헤밍웨이를 찾아서 ②
  • 동북아신문 기자
  • 승인 2008.06.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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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즐겨 찾던 술집 <플로리디따>와 <테라자> -申吉雨

헤밍웨이는 술을 아주 좋아했다. 사냥과 낚시를 즐긴 아버지와 미술에 관심이 많은 어머니의 서로 다른 취미와 인습에 반감을 가진 그는 고등학교 시절 권투에 열중하고, 제1차 세계대전 때에는 오스트리아-이탈리아 전선에 참전하여 부상과 훈장을 받았다. 그의 이러한 태생과 성격에서인지 그는 사냥과 투우, 대어 낚시를 즐겼고, 자연히 술을 좋아하였다.

     ▲ 헤밍웨이가 자주 찾아간 바 <플로리디따> 모습

헤밍웨이가 쿠바에서 살 때 자주 들른 술집은 두 곳이 유명하다. <플로리디따>(El Floridita)는 암보스 문도스 호텔에서 살 때 자주 간 곳이다. 아바나의 명동, 큰 식당들이 즐비한 오비스포 거리에 있다. 호텔의 1층에 자리한 플로리디따는 식당 겸 바이다.

바는 중앙에 카운터가 있고, ㄷ자 모양의 공간에 푹신한 안락의자들이 놓여 있다. 집기들은 헤밍웨이가 살던 당시의 것 그대로라 한다. 안쪽의 두 벽면에는 헤밍웨이 관련 사진들 수십 장이 게시되어 있다. 마침 들어설 때 창가에서 부드럽고 조용한 음악을 피아노로 연주하고 있는 70대의 노인이 참으로 멋지게 보였다.

헤밍웨이는 이 바의 구석자리에 자주 앉아서, 자신이 낚았던 고기 자랑을 하며 칵테일을 마시곤 했다. 흑인 바텐더는 헤밍웨이를 위하여 칵테일 '다이끼리'(Daiquiris)를 만들곤 하였다. 다이끼리는 보통 ‘럼’주 1온스에 사탕수수즙과 레몬즙을 붓고 얼음을 갈아 넣는데, 헤밍웨이는 사탕수수즙을 빼고 럼을 2온스 넣은 것을 좋아하였다. 소위 ’파파 헤밍웨이'이다. 그는 한 자리에서 이 술을 17잔이나 마신 적도 있다고 한다. 이 칵테일은 50년대 초에 몰려든 미국 관광객들이 플로리디따에서 마셔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만큼 크게 유행이 되었다. 지금도 플로리디따에는 헤밍웨이의 전신 동상이 한쪽에 앉아 있고, 다이끼리는 여전히 유명하다.

그런데 ‘다이끼리’는 또 다른 사실로 유명하다. 한 잔에 50센트였는데 사람들은 팁으로 5달러, 10달러를 주었다. 덕분에 바텐더는 바 플로리디따를 사고 그 옆에 딸린 식당까지 사게 되었다. 벼락부자가 된 이 흑인 바텐더가 꼰스딴떼 리발라이과인데, 그는 꼴론 공동묘지의 초대 대통령 묘 옆에 더 크고 화려한 묘 안에 잠자고 있다. 헤밍웨이는 그가 즐겨 마신 칵테일 술 하나로 무명의 바텐더를 일약 부자가 되게 한 신화를 만든 셈이다.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의 무대였던 코히마르 마을의 바닷가 술집에도 자주 드나들었다. 거기서 창밖으로 시원한 바다풍경을 바라보면서 작품을 구상하기도 하고, 때로는 마을 사람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곤 하였다.

     ▲ <코히마르의 카페 ‘테라자’의 카운터에 앉은 필자>
술집 <테라자>는 마을의 포구에 있다. 간판이 길가 쪽 2층 벽에 걸려 있다. 앞쪽에 원형의 하얀 바탕에 청색 상어 그림이 있고, 풍향계 모양의 파란 바탕에는 ‘LA TERRAZA’라 쓰인 간판이 창대처럼 긴 가롯대에 달려 있다. 건물은 전면 4칸에 측면 6칸의 2충집이다. 뒤쪽에는 작은 3칸이 더 붙어 있는데, 그 지붕은 반만 가린 베란다형의 슬라브 구조이다.

1층에 들어서자 바로 술을 마시는 스탠드 바였다. 카운터 앞에 기다란 바가 가로로 설치되어 있고, 그 안쪽 벽면에는 여러 가지 술병들이 가득 진열되어 있다. 헤밍웨이가 즐겼다는 ‘다이끼리’, 그 술을 한 잔 먹고 싶었으나 종업원이 없다. 별수 없이 카운터 앞쪽에 둥근 스탠드 의자를 끌어다 앉고 술병을 배경으로 기념사진만 찍었다.

왼쪽 문으로 들어서자 작은 홀에 소형 의자와 탁자들이 가득 놓여 있다. 레스토랑을 겸한 곳이다. 주인인지 종업원인지 중년의 뚱뚱한 백인 여인이 우리 일행을 보고도 심드렁한 표정이다. 스페인 말밖에 몰라 대화도 잘 안 된다.

레스토랑의 맞은편 창문으로는 바다가 내다보였다. 창가로 가니 바다와 포구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왼쪽 해변으로 헤밍웨이 공원이 보이고, 우측으로는 야트막한 해안이 가로로 펼쳐 있다. 헤밍웨이는 언제나 바다가 잘 보이는 가운데의 양쪽 창 앞 구석자리에 앉곤 하였다.

포구 입구의 바다 수면에는 나무기둥들이 두 줄로 늘어서 있는데, 거의 꼭대기마다 갈매기들이 한 마리씩 앉아 있다. 그 모습이 참으로 여유롭고 평화스럽다. 마치 사진엽서처럼 아름답다. 헤밍웨이는 이 포구에서 낚싯배를 타고 나가 고기잡이를 하기도 했는데, 돌아와서는 여기에 앉아 회포를 풀곤 하였다.

레스토랑의 안쪽 벽에는 여러 가지 사진들이 액자 속에 바랜 채 전시되어 있다. 배를 타고 낚시하는 모습, 고기를 끌어올리는 모습에, 영화의 주인공과 장면들이다. 작품 모델인 푸엔테스와 쿠바 수상 카스트로와 찍은 사진도 걸려 있다. 헤밍웨이의 작은 흉상도 하나 놓여 있다. 호기와 자긍이 배어 있는 느낌이다.

밖으로 나오니 건물 옆으로 작은 계단이 있다. 내려가니 바로 바닷물에 닿고 포구가 한눈에 들어온다. 레스토랑에서 바라보던 모습 그대로이다. 왼쪽 방파 벽 앞의 크고작은 바위에 밀려온 파도들이 하얀 물거품을 내고 있는 모습이 잘 보였다.

올라오다 계단 왼쪽의 작은 문을 밀고 들어가 보았다. 양쪽으로 작은 방이 두어 개씩 있는데 문이 모두 잠겨 있다. 불도 없는 침침한 벽에는 빛바랜 사진들이 여러 장 붙어 있었다.

▲ <플로리디따>에서 연주하는 노인
<노인과 바다> 영화를 촬영할 때 헤밍웨이는 이곳에 머물면서 제작진과 배우들에게 많은 조언을 했다. 그리고 가난한 마을사람들을 엑스트라로 많이 출연시키게 하고, 일자리를 주선해 주기도 했다. 영화 속의 술집 장면은 인근에 세운 세트에서 촬영한 것이라 이 <테라자> 모습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 세트는 없어지고 이 술집은 그대로 남아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온다. 가식보다 사실의 중요성을 다시 깨닫게 한다.

지금도 마을에는 마놀린 또래의 소년들이 뛰놀고, 산티아고 같은 노인들이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본다. 반세기가 지났어도 코히마르 마을은 소설 속의 모습 그대로 이곳에 그냥 남아 있다.

헤밍웨이는 갔으나 바다는 여전히 푸르고 파도는 끊임없이 일렁인다. 작가는 없어도 그가 즐겨 찾았던 술집 <테라자>는 여전히 그곳에 그대로 있다. 그런 것들을 구경하며 사람들은 위대한 작가를 기억하고 작품을 가슴에 담는다.

위대한 작가 헤밍웨이, 그의 삶은 비록 훌륭하다고만 할 수는 없을지라도, 그의 작품들은 끊임없이 그를 떠올리며 기리게 한다. 많은 사람들이 헤밍웨이가 살던 곳을 찾아보고 유물 유품들을 보려고 몰려오는 것도 그의 훌륭한 작품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삶보다 작품으로 오래 기억하게 한다는 생각이 이곳에 오면 더욱 실감되게 한다. ☺

<2008. 6. 1. 월간 문학공간 6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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