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바보들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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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바보들 ②
  • 동북아신문 기자
  • 승인 2008.06.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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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길우의 수필 102>

 

申 吉 雨  문학박사, 수필가, 국어학자

skc663@hanmail.net

 

사기당한 동정

한 젊은 장교가 시외버스에서 막 내린다. 옷차림새로 보아 전방 부대에서 모처럼 외출을 나온 것 같다. 곧장 공중전화실로 간다. 금방까지도 엄숙하던 표정이 이내 밝아지면서 웃으며 나온다.

그때, 쉰 살쯤 되어 보이는 여인이 그에게 다가간다. 등에는 두세 살짜리 아이를 업고 있다.

“저― 장교님, 이 늙은이 좀 도와주시라구요.”

여인은 인제 되었다 싶은 지 사설을 늘어놓는다.

“내사 경상도 안 삽니꺼. 아들이 교통사고로 죽응께 며늘아이가 이 아이를 놓고 달아낭기라. 서울로 갔다카기에 안 찾아나섰나. 인자 돈도 떨어지고, 며늘아이도 몬 찾고, 내 혼자 우찌 산당가? 칵 죽고 싶지라우.”

여인은 금새 울음을 터트릴 듯하며 치맛자락으로 눈물을 훔친다. 젊은 장교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바라보기만 하고 있자 그 여인은 아침도 못 먹었노라고 하소연한다.

“그러면 아주머니, 식당으로 가시지요. 제가 사 드리겠습니다.”

젊은 장교의 말에 여인은 얼른 정색을 하면서 반대한다.

“아니라예. 비싼 걸 묵을 수가 있당가예. 한 푼이라도 차비를 모아야지예.”

장교는 망설이다가 돈을 얼마 꺼내어 준다. 아이에게도 빵을 하나 사서 들려준다. 그 여인은 몇 번이나 고개를 숙여 고마움을 나타낸다.

얼마 뒤 친구와 이곳을 지나던 그 장교가 걸음을 멈춘다. 분명히 아까 그 여인이 신사 한 분을 붙들고 사정하고 있다. 등에는 여전히 아이를 업고 있다.

“왜 그래? 뭐가 있어?”

“저 여인 좀 보라구. 아까, 도망간 며느리를 찾아 나섰다가 차비도 없다기에 내가 좀 주었는데, 여태 안 가고 구걸을 하고 있단 말야.”

“그래?”

친구는 그가 가리키는 그 여인을 쳐다보고서는 피식 웃으며 말한다.

“이 친구, 순진하기는. 저 여자는 단골범이야. 저러면서 사는 사람이라구.”

그 말에 장교는 발걸음을 멈추어 섰다. 그리고는 친구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면서 그냥 그대로 바보처럼 서 있었다.

헌 책 값

고서적상에는 옛날 책들이 많다. 내용도 다양하고 지질과 크기도 제각기 다르다. 글자 모양도 여러 가지이고, 인쇄와 제본의 방식도 각양각색이다. 때 묻고 헐어진 것까지 책마다 다르다.

그래선지 값도 책마다 다르다. 어떤 것은 오래 되어서 비싸고, 어느 것은 하나밖에 없어서 고가이다. 이 책은 이 활자본으로서는 드물어서, 저 책은 초간본이라서 비싸고, 이것은 저자가 훌륭해서, 저것은 필사자(筆寫者)가 유명인이라서, 그것은 서발(序跋)을 쓴 이가 저명해서 값이 나가기도 한다. 또 어떤 것은 소장자(所藏者) 도장이 가치가 있기에, 어느 것은 하사기(下賜記)가 적혀 있어서 비싸다. 값을 따질 때 핑계 없는 책은 없는 듯하다.

그런데, 고서에는 또 이런 가치가 곁들여져서 비싸지기도 한다.

한 번은 어느 고서적상에 들렀다가 마음에 드는 책을 하나 발견하고는 값을 물었다. 초판본 고서인데 4만원을 내라고 한다. 망설이다가 결국 뒤 몇 장이 낙장(落張)이 된 것이 마음에 걸려서 그냥 나오고 말았다.

한 달쯤 지나서 다시 그 책방에 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 책이 그대로 있는 것을 보고는 그냥 사려고 마음을 먹었다.

“이거 얼마 주면 된다고 그랬지요?”

“40만원이요.”

뜻밖의 대답에 잘못 들었나 하고 다시 물었으나 같은 대답이었다. 지난번에 4만원이라 하던 것이 어떻게 된 것이냐는 내 말에 그 고서적상 주인은 담담히 이렇게 대답한다.

“그때는 내가 잘 몰랐지만, 지금은 이 책의 가치를 알기 때문이지요.”

“그래도 그렇지요, 열 배가 뭡니까?”

어이없어 하는 나에게 그는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던지, 자주 들리니 30만원에 가져가라고 한다. 그냥 돌아 나오는 나에게 그는 한 마디 더 붙인다.

“지금 안 사시면 또 후회할 겁니다. 몇 달 뒤면 이 책이 그만큼 더 오래된 책이 되니까 아무래도 값이 더 붙게 될 테니까요.”

나는 그 말을 뒤로 들으면서 매매 세태를 한탄해 하기보다 그 책이 나와 인연이 없음을 안타까워하면서, 바보처럼 쓸쓸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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