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바보들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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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바보들 ①
  • 동북아신문 기자
  • 승인 2008.06.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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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길우의 수필 101>

 

申 吉 雨  문학박사, 수필가, 국어학자  

 skc663@hanmail.net

 

건널목

거리에는 가끔씩 차들이 지나간다. 인도에는 사람들이 띄엄띄엄 어울려서 걷고 있다. 건널목에는 신호등이 색깔을 바꾸면서 켜져 있다.

젊은이들 몇이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걸어간다. 신호등은 초록빛이 정면으로 깜박거리고 있다. 그들이 막 건너가려는데 빨강불이 켜진다. 마침 좌우에는 지나가는 차들이 없다.

“야! 뛰자.”

한 사람이 달려가자 다른 이들도 덩달아 뛰어 건너간다. 그들이 다 건너고도 신호등은 빨강빛을 빛내고 있다.

헌데, 한 젋은이가 그냥 이 쪽에 서 있다. 건너간 젋은이들이 손짓을 하며 외친다.

“이 바보야! 빨리 건너와.”

그래도, 그는 히죽이 웃으면서 바보처럼 그냥 그대로 서 있기만 했다.

교통사고

도로는 잘 포장되고 곧게 벋어 있다. 거리에는 아무도 없다. 차들도 이른 새벽이어선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알맞은 간격으로 늘어선 가로수들이 한결 풍치를 돋운다. 안개마저 아스라이 끼어서 도시는 마치 꿈속의 마을처럼 곱게 느껴진다.

저 쪽에서 승용차 한 대가 달려온다. 아무 것도 거칠 것이 없다는 듯이 유유히 달린다. 그러더니 속도를 줄이지도 않고 그대로 오른쪽으로 돈다.

순간, 차도를 쓸던 청소부와 부딪친다. 차는 급히 멈추어지고 사람들 서너 명이 차에서 뛰쳐나온다. 차에 치인 청소부는 포도 위에 쓰러진 채 꼼짝을 않는다.

한 사람이 청소부의 고개를 흔들어 보더니, ‘틀렸군’ 하고 말한다.

“운전사. 빨리 도망가1

차 안에서 다시 큰 소리가 난다. 그래도 그는 바보처럼 그냥 그대로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기만 했다.

수위실

허술한 차림의 50대 남자가 정문으로 들어선다. 수위가 그를 불러 세운다.

“어디 가시오?”

“네. OO과 이 계장을 만나려는데요.”

“점심시간에 오슈. 근무시간엔 안 되니까.”

“아니, 좀 바쁜데요.”

“글쎄, 안 돼요. 있다 오라구요.”

수위는 작은 덧문을 딱 닫는다. 머리가 희끗거리는 그 남자는 그대로 바보처럼 서 있었다.

신사복을 입은 중년의 사내가 택시에서 내려 수위실 쪽으로 온다.

“저― 실례합니다. OO부 김 과장을 좀 만나려는데요.”

수위는 사내의 위아래를 죽 훑어보고는 묻는다.

“어디서 왔지요?”

“시내에서 왔습니다.”

“왜 만나려고 하지요?”

“아, 네, 볼일이 좀 있어서요.”

수위는 수화기를 들어 알아본다.

“지금 자리에 없답니다. 있다 오시오.”

“어디 나갔답니까?”

“내가 아우? 자리에 없다니까.”

그 중년 사내는 그냥 그대로 바보처럼 서 있었다.

자가용 한 대가 정문 쪽으로 달려온다. 정문 앞에서 수위가 잠시 세운다.

“어디 가시지요?”

뒷자리에 탄 셔츠 차림의 젊은이가 귀찮다는 표정을 하며 응답하듯이 되묻는다.

“박상무, 어디 안 나갔지요?”

“네. 계실 겁니다.”

“알았어요.”

젊은이가 얼굴을 정면으로 향하자, 자가용은 유유히 정문 안으로 들어선다.

수위는 그냥 그대로 바보처럼 멍하니 자가용의 뒷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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