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앞서가고 중국은 바짝 뒤따라오는 양 대국 사이에 낀 우리 경제가 머지않아 절망적인 상태가 될 수도 있다고 진단을 한다. 이 같은 목소리는 재계의 일선에서 진두지휘하고 있는 실무자와, 또 정부의 경제 실무 담당자들의 입에서 불거져 나온 말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이런 불행한 세태로까지 몰락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훌륭한 정치인이라면 한 발짝 뒤로 물러나 미흡했던 자신의 정책을 되돌아보며 왜 최전선의 재계의 역군들이 이 같은 말을 하게 되었는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그래서 만의 하나라도 그 같은 불행한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미리 예방하여 정책을 더 잘 펴나가도록 사전에 조치를 취해주는 게 올바른 자세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 경제를 놓고 보는 시각이 방향에 따라 다르고 또 제각각인 게 탈이다. 서민들은 오늘의 우리 경제가 밑바닥을 치고 있다고 아우성을 치고, 넘쳐나는 실업자들이 우왕좌왕하고 있는 이때에 꼬박꼬박 월급도 받고 보너스도 받으며 판공비로 호의호식하고 있는 사람들은 저마다 그럴 리가 없다고 콧방귀를 뀌고 있는 실정이다. 어디부터 잘못 꿰어져 있기에 이 같은 엄청난 괴리가 발생한 것일까.
옛말에 ‘서울 놈은 비만 오면 풍년이란다.’ 라고 하지 않았던가. 속이야 어찌 됐든 2006년도에 2천억불 수출을 달성했다는 자료만 놓고 보면 해마다 수출이 연속 증가 하였으니 이런 추세라면 겉모양새로는 승승장구 호경기임에 틀림없는 사실이다.
수출액으로만 보면 해마다 호박이 넝쿨째 굴러 들어오는 형국이다. 굴러 들어오는 호박이 속 빈 강정은 아닐까 걱정을 해야 하는 시국인데도 말이다.
훗날 어려움이 닥칠 것을 마음속으로 예견하면서도 아닌 것처럼 달짝지근한 말로 환심이나 사겠다는 얄팍한 계산을 한다면 이건 앞날에 역사의 심판을 받지 않을 수 없는 문제다. 목소리 큰 자가 이긴다더니, 큰 소리로 돌절구에 겉보리 우겨 넣듯이 우겨서 될 일도 아니다.
일본은 부당하게 우리나라를 36년간이나 합병 통치하였으니 죽일 놈의 나라로 아예 적대시하는 민족감정이 판을 치고, 중국은 역사적 선상에서의 관계가 아닌 경제적으로 가난하여 더러운 나라로 치부하는 우리의 국민적 자세가 문제다.
다시 말하면 일본에게는 역사의 잣대를 들이대어 증오하고 저주하며, 중국은 경제적인 잣대를 들이대어 무시하고 깔보는 의식은, 무언지는 잘 모르겠지만 오히려 우리가 고쳐야 할 시급한 문제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1998년 여름 백두산에 갈 기회가 있었다. 한국인 관광객이 장백폭포 아래 계곡에 빙 둘러앉아 술을 마시며 양재기를 두드리고 고성방가를 하는 모습을 자랑이라도 할 양 비디오로 촬영하는 모습을 보고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우리보다 잘 사는 일본에 간 관광객들은 큰소리 한 번 못 내고 일본사람들 비위 맞추기에 여념이 없는 모습을 생각해 보면 왜 그럴까 하고 헛갈리게 된다.
바로 이게 우리 국민성의 본바탕이라면 우리 국민을 반겨줄 나라가 이 지구상에 과연 얼마나 될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된다.
현재 중국의 1인당 국민 소득은 5천불이지만, 우리나라가 경제 위기를 맞아 IMF 비상 체제로 들어갔을 당시 중국의 국민 소득은 5백불이었다. 베짱이가 개미에게 빌어먹으러 갔던 이솝 이야기처럼, 중국에 협조를 부탁하던 부끄러웠던 시절의 생각은 벌써 까마득하게 잊은 듯하다.
심양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청소원이 빗자루로 고속도로를 쓸고 있는 모습을 보고 한국 관광객들이 설왕설래 떠들어대며 박장대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이란 나라가 얼마나 큰가를 생각해 보면 저 한도 끝도 없는 고속도로를 빗자루로 쓸고 있으니 웃음이 날 만도 하다.
그 순간에 조선족 안내원이 이런 말을 했다.
“지금은 할 일이 거의 없어서 이처럼 넓고 긴 고속도로를 빗자루로 쓸고 있지만, 저 값싼 노동력이 산업 현장의 일꾼으로 투입되는 날에는 온 세상 사람들이 깜짝 놀랄 것입니다. 그 때 가서 여러분들은 맘껏 웃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비웃음을 꾸짖는 듯한 말투로 흐트러진 분위기에 일침을 가한다.
맞다. 그 때의 조선족 안내원의 말처럼 지금은 세계 방방곡곡에 ‘Made in China' 상품으로 도배가 되어 있다. 세계 모든 나라들이 경악을 금치 못할 현실이 도래한 것이다.
현대 사회는 경제력이 국력이다. 그래서 우리 국민이 중국 국민에게 큰소리 치고 살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역사적 잣대로 보면 별로 큰소리칠 처지가 못 되지만 좀 잘 산다는 게 큰 힘이 되어 목에 힘을 주고 살았던 게다.
우리나라가 국제 사회에서 ‘미운 오리새끼’가 되지 않으려면 많은 부문에서의 국민의 정서를 고쳐 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여동생이 가정사로 하여 이역만리 떨어진 산 설고 물 설은 캐나다 토론토로 이민을 가게 되었고, 고국을 떠난 외로움을 극복하며 어떻게 타국에서 살아가고 있나 위로도 하고 관광도 할 겸 방문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매제가 1년여를 캐나다에서 생활하면서 느꼈던 점을 내게 말해 준다.
우리들 생각으로, 한국 하면 아시아에서는 나라의 경제 규모로 보아 일본과 대만 다음으로 잘 사는 부자 나라이기 때문에 캐나다로 이민을 가면 몇 손가락 안에 꼽혀 대접받는 나라가 아닐까 생각을 했는데, 막상 와 보니 애초에 이런 생각을 했던 자신이 부끄럽기까지 하더라고 실토를 한다.
물론 한국을 아는 캐나다 사람들은 다른 동남아시아 나라보다 잘 산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왜 그런지는 잘 몰라도 한국인이 무시를 당한다는 것이다. 중국, 필리핀, 인도, 말레이시아, 태국인들만도 못하게 대접을 받는 까닭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단다. 이런 보이지 않는 멸시의 눈초리는 우리의 역사가 짧아서도 아니다. 아마도 뚜렷하게 ‘이거다’ 하고 말할 수는 없지만 총체적으로 보이지 않는 문제점이 깔려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꼭 꼬집어 역설적으로 표현한다면 우리 민족 핏속에 흐르는 우월적인 민족 정서가 잠재되어 있어서가 아닌가 하고 추측해 보기도 한다.
2004년 여름 장춘의 <장백산> 잡지의 이여천 부총편집장을 초청하게 되었다. 한국에 입국한 이 부총편집장으로부터 전화 연락이 왔다. 장춘에 아는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中國, 長春永泰有限責任公司>의 회장이 모터 기술 제휴 업체를 물색하러 일본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한국의 중소업체인 모터 생산 업체를 방문할 계획이 있으니 만약 그 분들이 한국을 방문하게 되면 잘 안내해 달라는 부탁을 받게 되었다. 이런 연락을 받고, 본인은 서울 근교의 관광지도 잘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서울 근교 관광을 시키자면 차를 필요로 하는데 도와줄 수 없겠냐는 내용이었다. 이 연락을 받고 나는 쾌히 승낙을 했으며, 약속 날짜를 정해 내게 연락을 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 분들이 한국에 도착해 기술 제휴의 타당성을 확인하기 위해 부곡에 있는 공장을 방문하고 그 날로 모든 업무가 끝나 이틀 후면 장춘으로 돌아간다는 연락을 받고, 다음날 아침 일찍 성산동 내 사무실로 모시고 오라는 약속을 하게 되었다.
일요일 아침 9시경 이 부총편집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홍대 지하철역인데 몇 번 마을버스를 타느냐고 묻는다. 15번 마을버스를 타고 성서 초등학교 앞에서 내려 내게 전화를 달라고 알려줬다. 잠시 후 5층 우리 집 벨이 울려 준비를 하고 곧 내려갈 터이니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부탁을 했다. 말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있는데 핸드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지금 몹시 급한 일이 생겼으니 빨리 내려와 달라는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전화가 끊겼다.
다급한 목소리로 보아 심상치 않은 문제가 발생한 것 같았다. 부랴부랴 5층 현관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도로 쪽에서 고래고래 소리치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급하게 층계를 뛰어 내려가 도로변 마을버스 정류장으로 달려갔다.
웅성거리는 사람들 틈 사이로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어떤 사람이 낯선 사람의 멱살을 움켜쥐고 건물 벽돌담으로 밀어붙이며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 그 사이를 이 부총편집장이 달라붙어 말리려 애쓰지만 역부족이다.
“야 이 개XX야. 너 그거 못 내놔? 너 죽고 싶어?” 멱살을 잡힌 젊은이는 아무 대꾸도 못하고 일방적으로 당하고만 있었다. 멱살을 잡힌 채 호흡을 못 해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젊은이가 조그만 손가방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친다.
싸움을 말리고 있는 이 부총편집장이 나를 보자마자 조금 전의 상황을 내게 알려준다.
“지금 멱살 잡힌 저 분들이 중국 장춘에서 온 한족 손님인데, 조금 전 마을버스에서 내려 비디오로 마을의 전경을 찍고 있는데, 마침 차도를 무단 횡단하여 이쪽으로 오던 소년의 아버지가 왜 내 자식 도로 횡단하는 걸 찍느냐고 다짜고짜 달려들어 시비를 걸어 온 겁니다.”
장춘에서 온 사람들은 한족인 관계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에서 까닭도 모르고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다. 이 말을 듣고 나도 급히 달려들어 젊은이를 떼어 놓으려 애썼으나 허사였다. 아침인데도 입에선 술내가 진동한다. 여기 이 분들은 한족이라 말을 못 알아들으니 화만 내지 말고 차근차근 대화로서 풀라고 타일렀지만 그 사람은 막무가내였다. 내 말을 듣더니만 한층 더 소리를 내어 욕설을 퍼붓는다.
“야, 이 거지 새끼들, 더러운 가난뱅이 새끼야. 왜 우리 집 애 사진 찍는 거야. 카메라 이리 내놔.”
젊은 청년은 더욱 더 심한 완력을 가한다.
초청을 받고 우리 사무실까지 온 한족은 창백한 얼굴로 두려움에 떨며 초죽음이 되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라가 다르고, 또 당사자로서는 다짜고짜 낯선 사람이 까닭도 모르게 달려들어 손가방과 비디오카메라를 빼앗으려 하니 두렵지 않을 리 없다.
손가방에는 우리나라 돈으로 계산하면 수백만원이 들어 있고 또 일본에서 구입한 값비싼 비디오카메라도 들어 있지 않은가.
“너 이 새끼들 우리말 할 줄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거지? 이 뙤놈들 경찰에 신고를 해 잡아가도록 할 거야.”
이 말은 즉 이 분들이 돈 벌러 한국에 불법체류한 자들로 간주를 했기 때문에 나온 말 같아 보였다.
도저히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 비디오카메라를 그 사람에게 내주라고 통역을 부탁하고, 또 동네 아주머니에게는 경찰에 신고를 해 줄 것을 부탁했다. 비디오카메라에서 빼낸 필름은 그 사람에게 강탈당하고, 일방적인 싸움은 이렇게 허무하게 끝났다. 비디오 필름을 뺏은 사람이 어린 아이를 차에 태워 사라진 한참 뒤 경찰차가 출동을 했다.
행패를 부리던 사람의 집이 바로 앞 건물이라고 알려주어 경찰이 그 집을 찾아 갔으나, 이미 그 사람은 외출하고 없다며 전화번호만 확인하고 피해자 일행을 경찰차에 태워 성산 지구대로 데려가 피해자 조서를 받게 되었다.
회장의 비서로서 동행했던 그 젊은이는 목과 팔목에 심한 찰과상으로 인해 몹시 괴로워한다. 나는 그 분들의 끓어오르는 분노를 진정시키려 무진 애를 썼다. 피해자인 한족 일행은 대사관에 연락을 해 달라고 부탁을 했으나, 좋은 방법으로 해결을 하자고 그 분들을 오히려 내가 설득을 하게 되었다.
좋은 일을 하려다 일어난 사건으로 분위기가 껄끄러워진데다가 또한 다음 날 오후 비행기로 장춘으로 떠나야 했기 때문이었다. 지구대 순경에게 부탁을 해 빠른 시간 내에 빼앗긴 필름을 찾아주도록 부탁을 했다. 파출소 순경이 이 사건을 어찌 했으면 좋겠느냐고 내게 묻는 말을 듣고 참으로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이 사건은 외국인이 아니더라도 일단은 강탈 죄에 속한다. 피해자가 이래라 저래라 할 성질의 사건이 아니다. 나는 아무 것도 모르는 양 빨리 필름이나 찾아 달라고 오히려 부탁을 하는 처지가 되었다.
나중에 가해자 대신 부인이 필름을 가지고 지구대에 찾아와 애걸복걸 하며 남편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눈물을 흘리며 애원을 했지만, 그 분들은 분을 참지 못해서인지 처벌을 해 달라는 부탁을 한다. 기쁜 마음으로 근교 관광을 시켜 드렸어야 했는데 시작부터 잡쳐버린 하루였다.
세 시간 가까이 이렇게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장흥으로 모시고 가서 간단한 점심식사를 대접하고, 가해자 대신에 헤어질 때까지 아무런 잘못도 없는 내가 가해자를 대신해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몇 번인가 머리를 조아려 사죄를 했다.
이 사건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중국 국민에게 비친 저질스러운 한국인들의 진면목이 보인 것 같아 매우 씁쓸한 사건이었다. 그 일행은 중국 정부 소관인 국영회사의 회장단으로서 공무수행 차 출장을 나온 것이다. 한순간에 망신을 당한 분은 그래 뵈도 장춘에서는 존경 받는 그룹 회사를 거느린 회장이다. 그 분이 고국에 돌아가서 한국은 동방의 예의지국으로서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예의 바르고 친절하더라고 한국인을 칭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한 사람의 잘못이 우발적이든 계획적이든 간에 국가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왜 중국 국민은 가난하고 더러운 국민으로 우리 뇌리에 각인되어 있을까? 설사 그런 생각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들을 대할 때의 개개인들은 곧 자신의 나라를 대표하는 외교관 역할을 하기 때문에, 외국인을 대할 때 한 사람의 잘못은 한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국가의 잘못으로도 연계된다.
내가 중국조선족문화예술인 후원회를 결성하여 조선족을 자주 만나다 보니까 별의별 고충을 다 듣게 된다. 얼마나 그들을 인간적으로 대하였는지 우리 모두 가슴에 두 손을 얹고 생각해 볼 일이다.
조선족이 한국에 들어와 허접스러운 일에 종사한다고 그 인격조차 허접스러운 사람들이 아니다. 냉대와 괄시, 그것도 모자라 비인간적으로 대할 때는 말없이 뒤돌아서 한없이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남을 위해 좋은 언행을 한다고 해서 뺨 맞는 세상도 아니다. 이제는 시대에 걸맞게 우리의 의식도 변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