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독립가의 운명(연재 3) 귀향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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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독립가의 운명(연재 3) 귀향길
  • 동북아신문 기자
  • 승인 2008.06.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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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연산의 장편인물전기>

3 귀 향 길

바로 그때부터 그들은 새로운 인생에 돛을 단 셈이었다. 희망에 부푼 가슴을 안고 그들 셋은 미래를 꿈꾸었다. 당분간 근검고학(勤儉苦學)하여 기량을 닦는 것을 명심하자, 그리고 학교를 졸업하고 각기 화북(華北)으로, 조선으로, 동북으로 가서 누구든지 항일계통을 찾기만 하면 서로 소개를 하여 가입하자고 굳게 약속을 하였다. 위대한 지도자를 만나 장차 항일구국에 헌신하려고 일치하게 마음을 다졌던 것이다.

그런데 학교에 진학하여 불과 몇 달 안 된 1942년 5월 22일에 박재호는 만주에서 보내온 편지를 받았다. 그 한 통의 편지가 그로 하여금 <<평생을 통하여 잊지 못할 만큼의 큰 변동>>을 일으켰다. 아버지의 친필 편지에는 어머니가 중병에 누우셨으니 어서 돌아오라는 내용이었다.

더는 머뭇거릴 수 없었다. 5월 22일에 급보를 받고 이틀 간 준비를 하고 24일 오후에 귀로에 올랐다. 하관(下關)행 열차가 동경을 떠날 때 차창으로 손 저어 바래는 친구들을 바라보며 그는 끝내 눈물을 지었다. 누구라 없이 고생살이신세였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격동적인 생활과 정다운 순간들이었다. 20시간 남아 달려서야 기차는 하관에 이르렀다. 그리고 밤 9시 반에 떠나는 부산행 여객선에 몸을 부탁했다. 여로의 피로와 몸의 때를 벗기려고 목욕을 하고 잠에 들었다. 이튿날 날이 밝는 대로 부산에 도착했고 다시 부산에서 신경(新京: 오늘의 장춘) 행 급행열차를 탔다.

열차는 대구를 지나고 경성(京城)을 거쳐 바람처럼 달렸다. 달리는 열차의 차창 밖으로는 고향산천이 끝없이 흘러갔다.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산이며 물이며 풀과 나무며 그리고 고향 하늘을 유유히 흐르는 구름 한 조각이라도 놓칠세라 바라보았다. 그 산천, 그 토양, 그 동포 --- 어느 것 하나 무심히 지나칠 수 없었다. 모두가 의미 깊고 한숨 깊은 존재였다. 혹은 만주에, 혹은 구미(歐美)에, 혹은 일본에 그리고 이 세상 그 어디에서나 표류하고 방황하는 동포들은 모두가 이 강산의 정기를 타고났고 이 강토의 전통적 기운을 품고 난 형제들이다. 저 언덕 밭 한 뙈기, 저 강속 물고기 한 마리, 저 숲 속 나무 한 그루, 저 길 옆 풀 한 포기 --- 그것은 그대로 조국의 살결이었다.

그는 달리는 열차에서 이렇게 개탄했다.

금수(禽獸)의 연자(燕子)며 가축도

제 집을 떠났다가 찾아오는데

만물의 영장이라 자처하는 우리 인간은

어찌하여 내 고향 내 조토(祖土)로 돌아오지 못하는가

그리고 1943년 1월 2일에 그는 귀향 길을 회상하면서 한시 한 수를 지었다.

신출조선지토(身出朝鮮之土 조선의 땅에서 난 몸)

식우이방지수(食于異邦之水 남의 땅 물을 먹으며)

기유수십지년(己有數十之年 벌써 수십 년을 살았건만)

동동회모지극(憧憧懷慕之極 갈수록 그리운 마음 사무 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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