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은 ‘8.15광복절’을 ‘노인절’로 정했다. 어버이들에게 과거 광복의 희열까지 느끼라고 그날로 정했는지는 모르나 ‘노인절’이 오면 자식들은 어버이들에게 옷도 맞춰주고 용돈도 주고 식사도 함께하는 미풍양속으로 제법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5월8일을 ‘어버이날’로 정하고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 있다. ‘어버이날’이면 자식들이 선물과 함께 빨강 카네이션을 부모의 가슴에 달아주고 축복해준다.
한국에 사는 조선족들에게는 ‘어버이날’이 예사롭지 않는 날이 된다. 카네이션을 달고 가족끼리 어울리는 한국인들의 모습을 보면 부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옛날 그들도 아들딸과 손자손녀들과 어울려 공원에 가고 민속촌에 가고 논두렁 밭두렁 길을 걷는 재미라도 있었건만 지금은 부모 따로 자식 따로 손자손녀 따로 사는 세상이 되어버리니 젊은이들은 효도하며 사는 한국인들이 부럽고 부모님들은 카네이션을 만지며 싱글벙글하는 한국의 어버이들이 부럽다.
“어쩌다 우리는 돈에 목을 매고 이리 살아야 하는지.......”
서글프게 개탄하는 부모님들의 모습이 안쓰럽다. 부모가 중요하지 않은 가정이 없고 자식이 중요하지 않은 부모 없으며 사회의 기본단위인 가정이 중요하지 않는 사회 또한 없건만 빨강 카네이션에 마음을 빼앗기고 섭섭함을 감추지 못하는 한국의 조선족들의 처량한 모습이 안쓰럽기만 하다.
한국의 5월은 또 ‘가정의 달’이기도 하다. 아내에게 남편에게 자식에게 부모에게 소중한 의무를 다 하고 소심했던 과거를 반성하고 최선을 다하는 계절이어서 조선족들에게는 다시 예사롭지 않은 계절이 된다. 그젠 날 이불을 따뜻이 덥혀주던 남편 아내 아빠 엄마가 그리워 온몸을 바르르 떨며 베게 깃을 적시는 아이들 엄마들 남편들의 한숨이 깊어지는 계절이기도 하다.
대체로 숫기가 없는 조선족들은 사랑한다는 말을 번지지 못한다. 그렇다고 ‘사랑한다.’의 변종인 “잘해 줄게.”도 잘 번지지 못한다. 그냥 또 다른 변종인 ‘돈 부쳐줄게.’ “사고픈 걸 사!”로 너그러움을 표시할 뿐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장기간의 별거생활은 또 하나의 쓴 고배로 된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들어보지 못하고 5년 10년을 기다려야 하는 우리네 남편들 아내들, 간혹 가다 돈거래만 하던 부모를 만나면 “아빠” “엄마”라고 불러야 하는 우리의 민망한 아이들, 그리고 그에 못지않게 자식들이 낯 설은 부모들, 조선족사회는 지금 오손도손 모여앉아 아들 딸 손자손녀가 달아주는 카네이션이 얼마나 절박한지 모른다.
그래도 이 봄에 따스한 소식하나가 서해를 질러왔다. 금년 봄에 치러진 무연고동포한국어시험에 참가한 조선족들 대부분이 남편을 찾아 아내를 찾아 한국에 오려고 시험에 참가했단다. 모처럼 희망이 보이는가 싶다. 그러나 외 토리 부모에게나마 기대이던 우리네 아이들의 서러움은 또 얼마나 클까. 그 외로움에 타는 동심의 애간장은 또 얼마나 깊어질까.
고향에 계시는 우리네 부모님들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주고 싶다. 그리고 부모가 없어 일찍 철이 들 수밖에 없는 우리네 아이들에게도 전례를 깨고 카네이션을 달아주고 싶다. 그리고 한국의 구석구석 힘든 곳에 진을 치고 힘든 생을 사는 조선족 아빠 엄마들에게도 카네이션을 달아주고 싶다.
아! 카네이션, 조선족가족끼리 모여앉아 부모님들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주고 서로 위로해 주며 카네이션처럼 예쁘게 활짝 웃는 날은 언제가 될까.
2008년5월27일 인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