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봄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종달새의 노래소리가 꿈같이 은은히 들려오고 고향의 민들레는 활짝 피여 여기저기서 별처럼 반짝인다. 여느 해 같으면 이맘때면 끼니마다 밥상우에 민들레가 한양재기씩 오르군 하겠지만 올해는 먹기 싫은것도 있지만 라태한 탓도 없지는 않았다. 그래도 오늘은 어쩌다 들놀이를 해서 캐온 민들레를 나는 된장에 찍어먹어본다. 하지만 안해있을 때와는 달리 맛이 없다. 그래 혼자 먹는 밥이 뭐가 맛이 있으랴.
안해가 타국으로 간지도 어언 2년이 넘었다. 태아는 열달 잉태요, 해산은 하루 아침이다. 하루가 여삼추라고 나는 2년을 십년맞잡이로 지내왔다. 안해가 있을 때는 산나물, 들나물을 즐겨먹었다. 곰취, 참취, 떡취, 고사리, 고비, 동나물, 뽀족나물, 삽주싹, 고추나물, 오갈피, 나세이, 달래, 미나리, 뽕구대, 가시나물, 민들레, 베짱이 등 어떤 나물은 좀 알아보려고 사전을 찾아보아도 알 길이 없다. 아마도 지방사투리인것 같다.
안해는 민들레를 한줌씩 쥐고 고추장을 듬뿍 찍어서는 입이 미여지게 맛나게 먹는다. 참취도 쌈을 싸서는 볼이 볼록하게… 나는 신기해서
《그게 그리 맛있소?》라고 하면 그는 《잡수어보세요!》 하며 나물을 쥐고는 고추장에 푹 찍으려 한다.
《아니, 된 된장엡》
나물을 한줌 쥐여 된장에 찍어서 입에 넣고 씹노라면 그 맛 참 씁쓸하면서도 향긋하여 입이 한결 거뿐해진다.
《특히 당신은 민들레를 많이 잡숴야 해요. 뒤집 최멍석도 이 민들레를 1년 장복하여 전렬선까지 고쳐 이젠 사생활도 잘 한다더구만, 나 같은 놈이니깐 당신하고 붙어살지 에그…》
하면서 안해는 눈을 곱게 흘긴다. 그러면 나는 그저 피씩 웃고 만다. 《고개숙인》 남자이니 안해에게 뭘 말하랴. 그저 항상 미안한 마음이 구석을 차지하고있다. 하지만 난 력사적사명은 완성한 셈이다. 아들딸이 다 컸으니 말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렇지 않다. 남자라면 항상 따뜻하게 녀편네를 포옹해주어야 한다는것이다. 여기에서 《따뜻하다》는 형용사의 함의가 대단히 심오하다. 나는 항시 랭혈동물과 같이 뱀살이 되여 춘하추동 변함이 없다. 특히 겨울에는 따뜻한것이 좋은데 나는 그렇지가 않다. 하여 늘 안해의 몸에 그 차거운 내 몸을 덥히군 한다. 나는 몸을 덥힐 때마다 미안하여
《안 차갑소》라고 한다. 때론 안해는 나를 확 밀어뜨리며
《남들은 다 남자가 마누라의 몸을 덥혀준다던데 이놈의 나그네는…》한다. 이때 나는
《이것이 바로 하느님이 내려보낸 한쌍의 원앙새가 아니오? 나도 덥고 당신도 더우면 불이 나서 어떻게 살겠소. 양…》 하면 마누라는 또 눈을 살짝 흘긴다. 안해의 따사로움이 내 몸을 녹여줄 때면 나는 안해의 그 그윽한 향기의 도가니속에 빠져 스르르 잠이 든다. 이러고보면 안해는 나에게 기여만 할뿐 리득은 없다. 안해의 마음속의 상처를 지울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한때는 맹호였었는데… 후유―
밤마다 안해더러 등을 긁어달라는것은 버릇처럼 되여있다. 그것도 요구에 따라《거기, 저기, 고기, 우에, 우에, 밑에, 밑에...》하면서. 이젠 긁어달라고 할 사람이 없다. 그것도 혼자 긁개로 긁군 한다. 그런데 이제는 풍습으로 팔이 아파 제대로 긁지도 못한다. 때론 신경질을 쓰다가 긁개를 웃방에 휘익― 집어던진다. 잠자리에 누울 때도 항상 내 베개와 안해의 베개를 가지런히 놓는다. 다소 안위를 받으려고…
이젠 나도 오십이 넘어 륙십고개로 톺아오르고있다. 얼마 지나지 않으면 퇴직하게 된다. 정작 퇴직을 앞두고 보니 섭섭한 회포 금할 길 없다.
교편을 잡은지 몇년이 안되여 개혁개방의 바람이 불자 사람마다 돈벌기회가 생겼다. 그래서 나는 안해더러
《이 잘난 봉급으로 언제 아빠트 사고 별장짓고 살겠소. 아예 다 때려치우고 장사해서 돈을 벌기오.》라고 하자 안해는 정색해서
《당신이 교편을 놓는 그 시각, 바로 제가 사라질줄 아세요. 그것만 기억하세요.》라고 말하면서 문을 《쾅!》닫고 나가는것이였다. 이 말 한마디가 나에 대한 호된 채찍이였다. 하여 나는 그후부터 자률적으로 살아가게 되였고 늘 인격도야에 힘을 기울이게 되였다 (참된 인간이 되자! 참된 인간이 되자!). 무엇이 인간의 삶이며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차요한가를 알게 되였다. 참 그때의 그 안해가 고맙다!
전번에 안해한테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나요.》
《아직 안 쉬세요?》
《아이구 말도 마오. 당신도 알다싶이 20여년동안 감기라곤 몰랐는데 금년에는 어떻게 된 판인지 한달동안 링겔주사를 맞고 20여일 침구를 해도 낫지 않소.》
《당신, 봉급이 오르지 않았어요. 그저 아끼지 말고 약도 사잡수시고 보건도 하세요. 내가 돌아가는 날 건강한 신체로 맞아줘야죠.》
순간, 나는 짜릿한 감을 느꼈다. 볼수도 없고 만질수도 없고 다만 감지할수 있는 그 향기가 전화줄을 타고 내 가슴에 와닿았다. 샘물처럼 솟구치는 눈물이 밭고랑처럼 나의 두 볼을 타고 좔좔 흘러내렸다. 결혼한지 몇십년이 되여도 안해에게 목걸이 하나 걸어주지 못하고 반지 하나 끼워주지 못한 바보같은 내가 아닌가. 그런데도 안해는 나같은 사람을 자기 남편이라고 그렇게 힘들게 일하면서도 날 걱정하고있지를 않는가.
한참 침묵이 흘렀다. 안해는 한참을 머뭇거리는것 같더니 《듣고 계세요, 여보세요. 여보세요…》라고 웨쳤지만 나는 전화를 끊고 한참이나 울었다.
오늘 이 밤도 안해의 그윽한 향기가 피여오르는것 같다. 집안에도, 정주칸에도, 밥가마에도, 된장독에도, 고추장단지에도… 길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