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벌써 두 명이 강제출국 당했습니다.
이에 한중수교 이전에 입국해서 17년이나 한국에서 살고도 추방의 위기에 놓인 저희 조선족들이 예장 총회를 찾아와서 우리의 딱한 사정을 호소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한국에 온지 17년이나 된 사람들입니다. 살인을 해도 15년이 지나면 공소시효를 넘겨 죄를 묻지 않는데 고향에 돌아와 17년을 살았는데도 추방을 당해야 한다니 이처럼 안타까운 일이 없습니다. 이제는 중국말도 많이 잊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추방당하는 문제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고 동시에 모든 조선족의 문제입니다. 한국정부가 조선족 동포를 포용하는 정책을 취할 때 제일 먼저 혜택을 입어야 할 사람들이 체류한지 17년이 넘는 <한중수교 이전 입국 동포들>이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우리를 추방한다면 앞으로 다른 동포도 전부 추방함을 의미합니다. 우리에 대한 추방조치가 다른 동포에 대한 온정적인 조치를 막는 前例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중수교전 입국자>에 대한 조치는 앞으로 이명박 정부가 조선족동포 정책을 어떻게 취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입니다.

우리에게는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일제시대에 조선 땅에서 도저히 살 수 없어 고향을 떠나 만주로 간 사람들의 후예입니다. 그리고 해방직후에 귀국길이 막혀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1992년 한중수교가 되었을 때 고향에 돌아오기를 원하는 동포들에게 귀국의 기회가 주어져야 했으나 이런 기회는 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들어온 동포들은 대부분 불법체류자로 살아야 했습니다. 이 동포들이 그 후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을 하면서 동포들에게 국적취득과 합법체류의 기회가 주어지게 되었고 국제결혼의 기회도 넓어져 이제는 국적을 취득한 동포의 숫자가 십만명에 달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문제되고 있는 <수교전 입국자>들은 한중수교 이전에 고향에 갈 길을 찾아 온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입국시 입국서류를 제대로 갖출 수 없어 적법한 절차를 밟지 못하고 입국한 사람들입니다. 적법한 절차를 밟은 분들은 이미 국적을 취득했지만 우리는 그 기회에서 제외된 채 17년간 불법체류자로 살아오고 있습니다.
이미 17년이나 살아 온 이 땅은 우리가 살아야 할 땅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국적을 원합니다. 국적을 주지 못한다면 영주권이라도 주기를 원합니다. 그것도 어렵다면 5년간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는 H-2 비자라도 받기를 원합니다. 이미 우리들 중에 나이가 많은 분, 병이 있는 분, 자식이 있는 분, 노부모를 모시는 분은 H-2 비자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자식이 있으면 비자를 주고 불임이어서 자식을 갖지 못하면 추방당해야 한다면 매우 불공평한 것 아닙니까?
그동안 한국정부는 미국과 일본에 거주하는 동포들과는 달리 중국과 구 러시아에 거주하는 동포들을 차별해 왔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차별적인 재외동포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바 있습니다. 이 때문에 한국정부는 재중동포에 대한 차별을 시정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해 왔습니다. 지난 십년간 법무부의 조선족 정책은 법을 지키는 것 보다는 동포들을 포용하는데 있었습니다. 그래서 불법체류자에게도 온정적인 조치를 취하여 H-2비자를 주어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나아가 밀입국자와 가짜 이름으로 입국한 사람들까지 다 구제해 주었습니다.
또 수교前 입국 동포들에 대해서도 인도적인 차원에서 이들을 강제출국시키지 않았습니다. 법무부가 중국동포가 조국에서 불법체류자가 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차별로 인한 제도적 잘못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고 또 이들은 조국에서 살 수 있는 천부적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암묵적으로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이후에 동포포용정책이 실종되고 말았습니다.
이번 법무부의 방침은 법 지키기와 상관이 없습니다. 정말 법 지키기가 중요했다면 자녀가 있으면 구제하고 그렇지 않으면 추방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일부를 구제한 것은 국민의 분노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딱한 사람을 봐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들도 국내체류기간이 22년이 된 후에는 중국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번 방침은 동포포용정책에서 동포포기정책으로의 전환을 의미할 뿐입니다. 세계 어느 나라도 자기 동포를, 그것도 17년 동안 범법행위 없이 살아 온 동포를 불법체류자라고 추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추방당한 동포들은 중국에서 잘 살아야 겠다는 일념에서 자식들을 한족학교로 옮기게 하고 자식들은 우리말을 잃어버리면 그냥 漢族이 되고 맙니다. 동포포용정책이 동포포기정책으로 바뀌게 되면 지금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漢族化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고 조선족은 급속하게 소멸의 길로 가게 될 것입니다. 故國이 조선족을 내쫓는데 조선족이 漢族化되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번 정책은 국내체류 화교와 비교해도 형평성을 잃은 정책입니다. 일제시대에 땅에 와 살았던 중국화교들은 해방 후에도 계속 이 땅에 살았습니다. 그들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이 된 후에도 불법체류자로 남았습니다. 십여 년이 흐른 후 정부는 이들의 기득권을 인정하여 일괄적으로 영주권을 주어 이 땅에 살도록 허락하였습니다. 이렇게 장기 불법체류한 화교들에게도 영주권을 주었다면 우리에게도 영주권을 주어야 하지 않는가요?
이에 우리는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에 찾아와서 우리들의 안타까운 사정을 호소하고자 합니다. 총회에 폐를 끼치게 되어 대단히 죄송스럽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락없이 찾아온 우리를 거두어 준 것을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조선족 동포들을 돌보고 포용하는 일에 앞장서 왔습니다. 이번에도 우리의 호소를 들어 우리 대신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를 호소합니다.
2008년 5월 20일
한중수교 이전에 입국한 조선족 동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