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에는 부끄럽고 창피하고 화도 났지만....-
<P>얼마전에 신문기사 한 지면에 실렸던 세계 여러 나라 민족 순위에서 아이큐가 가장 뛰여난 국민으로써 한국인이 압도적인 상위권을 차지한 객관적인 기사를 보면서 나는 문득 역시 우리 한민족의 아이큐가 너무 비상하다는 말이 실감나게 하는 지난 일들을 추억해 보게 됩니다. <br><BR>내가 한국으로 국제결혼을 하여 방금 시집을 왔을때 있었던 참으로 기가막히게 웃기기도 하면서 서글픈 마음으로 꿍하게 받아들였던 별명이 "수입동서" 라고 불리우던 시절이였습니다.비교적 아이큐가 높은 민족임이 틀림없듯이 순간의 반짝이는 아이디어 발언에서 흘러나온 "수입동서". <br><BR>나의 시댁은 한 고장의 오래된 뿌리로써 토박이 상인의 대가족으로써 하나의 대 가정이였습니다.하여 처음엔 거의 한달이넘게 줄지어 우리 시댁식구분들과 좀이라도 연관된 사람들은 마치도 내가 외계인마냥 그정도의 관심으로 보러오는 분들이 많았답니다 .<br><BR>처음엔 난 인사말도 변변히 못하였습니다. 투박하고도 소프라노 이상으로 고음인 목소리가 행여라도 날보러 오는 분들에겐 흠이라도 될까 주저하여 기여들어가는 목소리로 그냥 끝없이 "네..네.." 만 하면서 될수록 이면 말을 많이 아끼고 톤도 많이 줄이면서 한없이 기여들어가는 모기소리로만 손님접대를 하였습니다.<br> <BR>그럭저럭 손님에 치여 살다가 이젠 좀 즘즘해지니 한국에서의 살아가는 생활 방식에 눈을 튀우는 실전생활에 들어가게 되였습니다. 오늘은 LG백화점, 내일은 관공서,모레는 시민시장, 그다음 날에는 발이 닿는대로 아무데라도 다니는 식으로 나름대로의 한국생활방식을 골고루 섭취하러 다니였습니다.<br> <BR>그러다 보니 내멋에 도취되여 돌아다니는 나를 알아보는 분들도 가끔 계시였는지..어느하루 저희집에 손위 동서 형님이 찾아왔습니다. 오자마자 절보고 웃으면서 하는 왈 "동서 어제 LG백화점에 갔댓어요? 오늘 내 친구가 백화점에 갔다오다 그곳에서 소연이네 수입동서를 보았다." 하면서 전하는 말을 토한자 빠짐없이 저한테 그대로 일러주는 것이였습니다.<br> <BR>그러자 온 집안에 갑자기 웃음바다가 펼쳐졌습니다. 모두들 킥킥 웃으면서도 내 눈치를 흘끔흘끔 쳐다보면서 혹여 내가 삐지가라도 할까 노심초사 하는 식구들의 씀씀이에,전 오래동안 쉼을 하여 팍팍 부풀어 오르는 빵의 분노처럼 솟구쳐 올라와도 꾸~욱 참았습니다. 감히 손위 형님앞이라 반감이 생겨도 내놓고 머라고 할수도 없는 어려운 사이를 실감하였습니다.<br> <BR>형님이 돌아간 다음 나는 혼자 가만히 낮에 일들을 까마득한 기억의 저편 주마등처럼 흘러만 보내지 않고 다시 끄집어 내여 곰곰히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분명히 똑같은 단군 할배의 후예이고 한민족임이 틀림없다고 자처하던 내가 한국으로 국제결혼이란 명목하에 고국을 밟아보니 그야말로 웃지도 울지도 못할 희귀한"수입동서"란 별명을 꼬리표처럼 은연중에 달게 되였다는 서러움과 허무함에 가슴이 오래동안 쨘 하게 아리여 왔습니다. <br><BR>그이후론 우리집식구들은 절 보고 다시는 "수입동서" 꼬리표를 애용하진 않지만 지금도 가끔은 제 친구들은 날보고 안부전화할때 "수입동서~ 잘 있었어.." 라고 하면서 우스개로 한답니다. 그러나 이젠 처음의 그 당혹감으로 어쩔줄을 모르고 마음이 상하던 고달프던 시기를 한 고비 넘기고 나니 지금은 오히려 "수입동서"란 그 애칭이 문뜩 그리워 날때도 있습니다.<br> <BR>"뭐. 한국에 국제 결혼을 하여와 나름대로의 삶을 열심히, 성실히 개척해가며 노력하는 각국의 수입동서 들이 어디 나뿐인감?.." 하면서 나절로 자아자찬 위로를 해가면서 전 오늘도 내일도 앞으로도 변함없이 묵묵히"수입동서" 역할을 톡톡히 보란듯이 하여 그누구도 우리 수입동서들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위치로 당당해지는그날을 향해 더욱 정진해 나갈것입니다. <br><BR>한국의 저처럼 뜻하지 않은 귀여운 애교 별명이 붙은 "수입동서" 여러분들 화이팅~ <br><br><br><BR><BR>2004년 1월 15일 서해바다 <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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