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자 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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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자 돌림
  • 려호길
  • 승인 2008.04.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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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려호길 칼럼]
지난 1월, 조글로(조선족글로벌네트워크)연중행사에 참석했다가 사소한 일로 감동을 받았다. 한 테이블에 둘러앉은 30~40대의 회사원 경리 사장으로부터 50~60대의 작가 교수에 이르기까지 동갑내기 과외 하듯 머리를 맞대고 닉네임(nickname=별명 애칭)에 ‘님’을 부쳐 부르고 답하는 모습이 자못 화기애애했기 때문이다.

‘님’이란 이름 뒤에 붙어 그 사람을 높여 이르는 말이다. 과거 우리는 ‘선생님’ ‘부모님’ 등 특별히 존중해야 할 상대에 한해서 ‘님’을 부쳐 불렀고 대부분의 경우에는 ‘동무’나 ‘동지’로 통했다. 그만큼 ‘님’은 봉건사회, 자본주의사회 산물로 각인되어 찬밥신세를 면할 수 없었으나 ‘동무’나 ‘동지’는 혁명적이고 평등을 추구하는 당시 사회정서를 잘 반영했으므로 유행을 탔던 것 같다.

그 때 만약 이미자의 “님이라 부르리까. 당신이라 부르리까.”라는 오락가락하는 노래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면 그걸 듣고 얼굴이 빨개지지 않는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단순하면서도 순진한 것이 그 시대 사람들이었다. 당시 ‘님’에 대한 좋은 추억은 조선어문 교사들이 너나없이 써 먹던 “아버님, 대갈님 넘어 사발님을 주세요.”라는 명언이었다. 시집가는 딸에게 시아버지한테는 무조건 ‘님’자를 부쳐 부르라고 했더니 그런 해프닝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개혁개방이 되면서 ‘색정적’이고 ‘퇴폐적인’한국가요와 전통 민요들이 동풍을 타고 들어왔고 일부는 나이 지긋한 분들의 기억에서 소생했으며 ‘님’도 세간에 찾아와 혁명적이고 엄숙하며 씩씩함을 표방 하는 사람들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님이여” “님은 어디에 있나.” “님 따라가세” “님 생각이 절로난다.” “고와도 내님 미워도 내님”.......

그러나 본격적으로 ‘님’이 등장한 것은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인터넷이 파다히 보급되고나서부터다. 홈페이지와 카페, 블로그의 출현과 함께 본명 쓰기를 꺼리는 인터넷애호가들이 닉네임을 활발히 사용하면서 ‘님’은 닉네임이 없어 못 붙어먹는 시국을 맞았다.

닉네임의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다양한 닉네임도 출현했다. ‘물고기님’ ‘호박님’ ‘감자님’ ‘고추장님’해서 ‘세치네탕’ 한 냄비가 제꺽 만들어지는가 하면 ‘소고기님’과 ‘고추님’을 ‘주방장님’이 ‘식칼님’으로 썰어서 소고기 요리도 제꺽 만들어 냈다.

닉네임에 ‘님’이 꼬박꼬박 따라붙는 바람에 울지도 웃지도 못할 일도 벌어졌다. 인터넷 예의상 서로 ‘님’자를 붙이다보니 오프라인에서는 80대 할아버지가 여덟 살 애송이를 “아가야”하고 부르던 것이 온라인에서는 “아가님”이라고 불러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여덟 살 애송이가 “뭐, 이런 사가지 없는 아저씨가 다 있어.”라고 하게 되니 말이다.

또 온라인에서는 딸 같고 아들 같은 이도 ‘님’이요. 아빠 같고 엄마 같은 이도 ‘님’밖에는 될 수 없다. ‘나이는 수자에 불과하다.’ ‘피는 똑 같이 붉다.’는 주책이 ‘국책’이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님’의 출현은 상대적으로 감정표현에 인색하고 웬만해서는 남을 추슬러 줄줄도 추슬러 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에도 서툴고 또 꼭 해야 할 인사치레도 그럭저럭 넘어가려하고 생략하는데 습관 된 조선족들에게 있어서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생활미가 넘치는 닉네임을 만들어 부르는 재미, 거기에 꼬박꼬박 ‘님’을 부쳐 서로 격을 갖추고 존중하는 건강하고 매너 있는 인간관계로 승화할 수 있으니 말이다.

몇 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때 만난 ‘님’네들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나이를 잊은 아저씨 아주머니들, 나이를 잊은 30~40대 젊은이들, 그들이 서로 구애 없이 웃고 떠들며 환락의 도가니를 이룰 수 있는 것은 ‘님’자 돌림의 새로운 인간관계가 맺어준 연이 아니겠는가. (4월27일moraean@hanmail.net)

제공=려호길 조글로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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