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에서 우리 조선족 동포들을 위로하여 펼쳐졌다는 설날 큰 잔치는, 여기 미국의 흑인 민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주니어(Martin Luther King, Jr.) 기념일을 맞아, 생전에 그가 어떤 사람인지 한번도 본 적조차 없는 한국계 이민자들, 정확히 한국인 불법체류자들까지 같이 미국 연방법정 공휴일(Federal Legal Holidays)을 향수하는 같은 의미의 오죽한 감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작년 11월 중순부터 시작한 불법체류 외국인 단속으로 숨을 죽이고 두문불출하던 우리 조선족의 동포들은 이날 시름을 활활 털어버리고 친척, 친구, 애인들과 함께 설날 큰잔치에 참석하여 저마다 푸짐한 상품을 받아 안고 기쁨을 금치 못하며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고 하니, 나는 역시 우리 조선족의 불법체류자들에게는 서경석목사(亦是 徐京石牧師也!...)라는 생각이다.
흔히들 미국을 이 지구상에서 인권이 가장 발달한 나라로 알고 있지만 따져놓고 보면 미국의 인권사(人權史)는 일천하기 짝이 없다. 거진 미국의 법을 그대로 답습하듯이 배운 한국의 법임을 감안하면, 피를 나눈 자기 동포를 불법체류자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붙잡고, 잡아갇우고, 내쫓고 하는 그 모습들을 지켜볼 때에, 그 옛날 흑인들을 비롯한 유색인종들이 백인들에게서 차별당하고 멸시받던 더럽고 천박하고 근거 없는 미국의 인종차별에 비해서도 오히려 열배, 백배 더 더럽고 천박하고 비렬하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1862년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 선언을 했지만, 실지 그 이면에 들어가보면 노예들의 인권도 인권이겠지만, 보다는 미국 남부 주들에게 연방복귀 압력을 가하기 위한 것이 그 본 의도였으며, 그 이후에도 흑인들은 오랜 세월동안을 인종차별시정책에 의해 피눈물나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꼭 같이 조선족동포들을 찾아서 "마음은 진한데..."라고 말했던 한국의 대통령은 대통령대로, 그리고 그 치하(治下)의 생각만 해도 메스꺼운 동포차별법은 차별법대로, 보호소의 감방들에는 죄없는 자기 동포들을 갇아두고 상금(尙今)도 진행중이다. 그러나 미국은 결국 1957년 7월 미 의회가 공론화된 ‘공민권법’(Civil Rights Act)을 통과시켜 대통령에게 흑인투표권 실시에 관한 권한을 부여했고, 각종 차별이 근절되지 않자 1964년 7월 인종차별철폐법을 통과되기까지는 수십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던 것이다. 많은 피의 대가와 희생이 필요했다. 1968년 4월에는 우리 인류가 존경하는 마틴 루서 킹 목사까지 암살당하는 일이 발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과연 최고의 "인권국가"라고 말할수 있는가?
있다! 왜?
그것은 바로 미국의 독립이념이 자유와 평등과 인권이었고, 민주주의가 최고도로 발달했으며, 짧은 기간 동안 모든 인종이 더불어 사는 사회를 구축했기 때문이라는 데 우리는 그 어떤 이의도 달 수 없는것이다. 하다면 한국은 어떤가? 우리는 남들처럼 어디 인종이라도 다른가? 아니면 피부색깔이 다른가?
인종도 피부도 같고, 언어도, 문화도 같고, 나아가서 핏줄도 같고, 조상도 같은 자기 형제자매를 그런식으로 학대하는 한국의 건국 이념이 무엇인지 한번 의심하지 않을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반가운 것은 2004년 새해를 맞으면서, 그 보호소의 죄없는 우리 조선족의 동포들에게도 인권을 달라! 동일을 혜택을 달라고 호소하는 성명서가 나왔다. 그 성명의 발표자, 역시 다른 누가 아닌 우리 조선족의 가장 좋은 친구 서경석목사(亦是 徐京石牧師也…)였다는 사실에 또 한번 감동을 받는다. 미국의 인권운동은 아직도 진행형,‘최고의 인권국가’라는 수식어 역시 "가장 인권이 잘 보장된 나라"라는 의미가 아니라 "인권을 위해 최고로 애쓰는 나라"쯤으로 해석하면 틀림이 없듯이, 한국도 마찬가지다.
동포차별을 박멸하기 위한 인간 서경석의 "홍해 건너 뛰기"는 아직도 진행중, 그 과정에서의 이런저런 시빗거리, 그리고 그에 따른 모함과 험담 따위는, "신선한 바람을 위해 열어젖히지 않을수 없는 창문으로, 바람과 함께 파리와 모기도 몇마리 같이 쓸어들어오는 것"쯤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다 풀릴것이다.
언제라도 각기 다른 반대 의견을 갖는 것은 시한부 없는 자유다. 미워하는것도 얼마던지다! 동포들의 차별법 반대 투쟁을 "한치보기들의 난동"으로 보는 중국내 모 교수의 견해나, 그리고 단식기간에도 돈 걷우는 교회의 일부 행태를 눈꼴사납게 보아왔던 나 청설의 견해나, 또는 서울조선족교회의 일련의 운동을 사기니, 협잡이니, 하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다 배를 치고 가슴을 때리며 반대 의견을 낼수 있다.
다만 입은 비뚤어도 말은 바른대로 하자는 것이다. 아니, 세상이 아무리 험악하더라도, 인심이 아무리 간사하더라도, 조선족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어른들끼리 서로 물고 뜯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세상에 망신이라도 이같은 망신이 더 없다. 같은 교내의 도리를 다는 알바가 없지만, 그런 식으로 서로 제 불알통이 더 크다고 자랑하다가 아니 되니 이제는 아주 성명서까지 발표해가면서, 다시 말하자면 아주 사진까지 찍어서 세상밖에 내돌리면서 봐봐! 내것 더 크지 않냐! 이런식이라면 웃고 좋아할 놈들치고 또 누가 더 있겠는가!
조선족과 동포 사랑, 그리고 우리 한민족, 이런것들을 더 이상 욕보이지 말라. 그건 동포에 대한 모독이며, 자기 고국에서조차 억울하게 탄압받는 조선족에 대한 모독이다. 더 크다고 자랑해대는 불알통으로 여자 등쳐먹은 후 “사랑에 눈이 멀면 멍청해진다”고 히죽거리는 기생오라비나 다를 게 뭔가? 그런 부류는 조선족을 위한 동포해방운동에서 추방해야 한다.
첩첩산중, 산 넘어 산, 어쩌면 인종간 "차이" (differences)가 존재하는 한 "차별" (discrimination) 또한 영원히 존재할는지도 모른다. 미국의 킹 목사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던 듯이 보인다. 그가 주장했던 것은 그 "다름"을 인정해달라는 것이었지 "다름"을 무기 삼자는 것은 아니었다. 마찬가지다. 한국의 서경석목사가 주창해온 조선족의 "중국국적 포기"나, 또는 "한국국적 회복"도, 결국은 동포를 동포로 인정하라는 한 목소리일 따름이었다. 이념도 주의도 다 이기는 형제와 동포, 그리고 한 민족의 평화로운 "공존" (co-existence). 우리 한국의 역사상 한번도 실현된 적이 없는 그 "꿈"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는 인간 서경석목사님에게 심심한 사의와 함께 다시 한번 존경을 표시한다!...(새해 2004년 1월, 미국 뉴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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