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 찾기 운동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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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 찾기 운동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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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1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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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서울조선족교회는 동포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한국국적 회복운동에 참가하는 조선족동포들 때문이다.
11월4일 현재 신청자의 숫자는 5천명이 넘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신청하는 동포의 대부분은 한국에 온지 4년이 넘었지만 지금 당장 중국에 돌아갈처지가 못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의 요구는 훨씬 더 근본적이다.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를 돌려달라는 것이다. 이들 조선족동포들은 일제시대에 독립운동을 위해 혹은 도저히 한반도에서 살 수 없어 만주로 떠난 사람들의 후손이다. 해방 후 해외로 나간 사람들이 전부 귀국했지만 유독 만주로 간 사람들은 돌아오지 못했다. 北에 김일성 정권이 들어서면서 귀국길이 막혔기 때문이다.

1992년 한중수교이후 한국정부는 이들의 귀환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들은 1948년 제정된 국적에 관한 임시조례에 의해 전부 한국국민이 된 사람들이다. 그리고 한국국민임을 한번도 포기한 적이 없었다. 더구나 일제치하에서는 상해 임시정부에 세금까지 냈다. 대한민국 정부가 상해임정의 법통을 이어 받았다면 당연히 이들 상해임시정부의 국민들을 한국국민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그렇지만 합법의 길이 없어 이들은 불법체류자가 되었고 지금은 추방을 앞두고 있다. 이들은 이땅에 할아버지 묘지가 있고, 내 호적도 있고, 사촌도 여기 사는데 왜 나는 추방당해야 하는가하고 절규한다.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 찾기:
한국이 사는 길

92년 한중수교 직후에는 우리가 이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다. 실업난도 문제였고 안보상의 문제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우리나라는 3D업종의 인력난이 심하다. 한국인은 이제는 힘든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외국인노동자가 없으면 중소기업이 空洞化되어 국민경제가 심각하게 위협 당한다. 그렇다면 외국인노동자보다 우리 동포를 들여오는 것이 당연하다. 더구나 노인층은 늘고 인구는 감소추세여서 더 많은 외국 노동력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같은 핏줄인 조선족이 들어와야 사회적 후유증이 최소화된다.

또 한국기업의 중국진출을 위해서도 조선족동포가 필요하다. 이미 중국에서 사는 한국인이 30만 명이 되었다. 이 숫자는 앞으로 계속 늘 것이다. 한국경제의 살길은 중국진출이기 때문이다. 이미 한국경제는 중화경제권에 편입되었고 중국은 한국의 최대 무역국이 되었다. 그런데 한국기업의 중국진출의 일등공신이 바로 조선
족이다. 일본기업이 한국기업을 부러워하는 이유가 자기들은 조선족처럼 기업진출을 위해 도움 받을 사람이 없다는 데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기업과 조선족 사이의 불신이 큰 것이 문제다. 조선족이 한국국적을 취득한 후 일정한 훈련을 받은 후 다시 한국기업의 일원으로 중국에 재진출하면 신뢰문제가 완전히 해결된다.
그런데 동포에게 국적을 주어도 막상 취득할 사람은 60만명을 넘지 않을 것이다. 중국에서 잘사는 동포는 국적을 취득할 이유가 없다. 국적을 취득하면 중국국적을 포기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중국에서의 기득권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한국에 와서 일하다가 나이가 들면 다시 물가가 싼 중국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한국에서 어느 정도 돈을 모아도 다시 중국으로 돌아간다. 물정을 모르는 한국에서 단순노동을 하기 보다는 경제적 기회가 더 많은 중국에 돌아가 크게 활동하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동포들에게 국적을 주어도 대량입국현상은 발생하지 않는다. 또 입국자가 몰리면 적절하게 속도조절을 하면 된다. 이를테면 성년이 되어야 국적취득이 가능하도록 하고, 매년 국적취득이 가능한 인원수를 한정하고, 한국이 필요로 하는 인력에게 우선적으로 국적을 주고, 과도기 조처로 먼저 영주권을 획득한 후 일정기간이 지난 후 국적을 주면 된다.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 찾기:
중국조선족 사회가 사는길

그런데 이 운동은 중국 동포사회에도 도움이 된다. 일견 보기에 이 운동이 조선족사회를 약화시키고 무너뜨리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즉 조선족의 중국내 지위가 약화되고 조선족 동포사회가 무너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조선족의 지위가 오히려 더 강화된다. 중국에서 조선족동포들이 다른 선택의 길이 없으면 중국인으로부터 무시당하지만 한국국적을 취득할 수 있으면 중국정부가 조선족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더 우대할 것이다.
중국이 외국인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동포들도 당당해진다. 한족이 조선족을 제대로 대우하지않으면‘이런 식으로 하면 나는 한국국적을 취득하겠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 다른 선택의 길이 있는 사람은 절대로 굽실거리는 삶을 살지 않는다. 조선족 동포사회가 무너질 것이라는 염려도 맞지 않는다. 조선족 동포사회의 존속여부는 우리말의 유지여부에 있다. 조선족과 비슷한 시기에 고향을 떠나 연해주에 정착했던 고려인은 1938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할 때 3천명의 동포지도자들이 총살당하는 바람에 민초들만 남아 생명을 부지할 수 밖에 없었고 그 때문에 우리말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고려인은 조선족처럼 한국에 몰려올 수가 없었다. 그러나 조선족사회에서는 민족의식이 투철한 지도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마을마다 조선족학교를 세웠고 우리말을 철저하게 유지했다.
그런데 쌀값이 하락하면서 농촌에서 더 이상 살 수 없게 되었다. 그렇지만 동포들은 중국말을 잘하지 못했기 때문에 도시로 나가 직장을 구할 수 없었다. 유일한 길은 한국가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동포들은 돈을 천만원씩 쓰면서 한국으로 오게 되었다. 이른바 코리안 드림 열풍이다. 조선족동포들이 투철한 민족의식을 가
지고 우리말을 철저하게 유지했기 때문에 지금 이들이 한국으로 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족 마을이 붕괴되면서 조선족학교의 80%가 문을 닫아 조선족 어린이들이 급속도로 우리말을 잃게 되었다. 게다가 동포들이 한국에서 차별과 천대를 받고 추방까지 당한 후에는 중국사람으로 살 수 밖에 없음을 절감하게 되고 아이들에게 악착같이 중국말을 가르치기 위해 아이들을 한족학교로 옮긴다. 요즈음 동포들은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을 따라 천진, 청도, 위해, 상해 등지로 옮겨가고 있다. 그래서 그 도시에 새로운 조선족 거주지가 생겨나고 있지만 그곳에 조선족학교는 생기지 않는다. 조선족이 자기 자식을 한족학교에 보내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포들이 우리말을 잃어버리면 그들은 더 이상 우리동포가 아니게 된다. 미국이나 러시아에 간 동포들은 언어를 잃어버려도 동포사회를 유지한다.
피부색이 다르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차별때문에 동포사회가 유지된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조선족에 대한 차별이 별로 없기 때문에 우리말을 잃어버리면 곧바로 한족사회에 섞여 한족으로 되어버린다. 미국으로 간 조선족동포의 사례를 보면 잘알 수 있다. 조선족학교를 졸업한 사람은 미국에 가서 코리아타운을 찾아가지만 한족학교를 나온 사람은 차이나타운을 찾아간다. 언어가 모든 것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포들이 우리말을 잃으면 그것이 바로 조선족 사회의 소멸을 의미한다. 동포사회의 소멸위기를 가져온 두 가지의 현상이 더 있다. 하나는 조선족 출생률의 저하가 심각한 점이다. 지난 십 년 간 조선족 아이의 출생률이 사 분의 일로 줄었다. 국제결혼하여 한국으로 간 여성의 숫자가 크게 늘고 도시로 가서 유흥업소에 종사하는 조선족여성의 숫자가 늘어 임신가능한 여성이 그동안 사분의 일로 줄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중국정부가 "조선족의 漢族化"정책을 확고하게 밀고 나가기 때문이다. 중국정부는 특별히 연변자치주에서만 祖國觀, 歷史觀, 民族觀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즉 중국이 조선족의 조국이고, 중국역사 속에 조선족의 역사가 포함되고, 조선족은 중국민족이라는 것이다. 만주족, 여진족, 말갈족, 몽고족, 티벳족 등 수많은 주변 소수민족을 중화민족으로 同化시켜 온 중국의 同化의 역사가 지금도 진행중인 것이다. 이 때문에 동포들이 민족적 주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점점 더 불가능해지고 있다. 그래서 이대로 가면 조선족의 미래는 길어야 20 년을 넘지 못한다. 그러면 어떻게 이 "조선족의 漢族化" 흐름을
돌려놓을 것인가? 그것은 동포들이 원하면 한국국적을 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조선족은 자기 자식에게 악착같이 우리말을 가르친다.

자식이 成年이 되어 한국국적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선족 60만명이 전부 한국에서 사는 것이 아니다.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일할 수 없게 되면 대부분 중국으로 돌아간다.
중국이 물가가 싸기 때문이다. 또 젊은 동포들은 대부분 중국에 진출하는 한국기업에 취직해서 다시 중국의 현지법인으로 나가게 된다. 요즈음 한국에서 조선족동포를 채용하고 싶어하는 중국진출 한국기업이 늘고 있다. 중국에서 조선족을 채용하면 믿을 수 없기 때문에 한국에서 동포들을 채용해서 몇 년간 훈련을 시킨 후에 중국으로 파견시키고 싶어한다. 믿을 수 있는 동포를 원하기 때문이다. 이제 국적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중국에서 살 한국인은 백만 명까지 늘 것이다. 그리고 이들 한국인은 조선족과 함께 어우러져 코리아타운을 만들어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국적을 주면 조선족 사회는 오히려 더 강화된다.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 찾기:
중국 정부가 반대하는가?

조선족의 국적회복운동을 중국정부가 반대할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중국정부는 이 운동을 반대할 명분이 없다. 중국정부 자신이 재외동포들에게 중국국적을 주어 왔기 때문이다. 또 이미 한국정부가 동포1세의 국적을 회복시켰지만 중국이 이를 반대한 바가 없다.
더구나 우리는 <조선족의 漢族化>를 결코 그대로 방관할 수 없다. 이들은 우리가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우리민족의 중요한 인적자산이다. 이들이 한국어와 중국어를 둘 다 사용할 줄 아는 인구로 남는 것이 우리민족의 장래를 위해 너무도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조선족이 한국어와 중국어를 다함께 하는 민족이 되어 중국과 한국 사이에서 가교역할을 잘 해내는 것이 중국정부의 입장에서도 크게 지지할 일이라고 본다. 한국이 2백만 조선족의 도움을 받아 중국에 적극 진출하는 것이 중국에게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한가지 중국정부가 국적회복운동에 대해 오해없기를 바라는 점이 있다. 이 운동은 중국을 등지는 운동이 아니라는 것이다. 처음 서울조선족교회가 중국국적 포기운동을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홍보차원에서의 기획에 불과했다. 국적신청운동을 하면 언론이 관심을 갖지 않지만 국적포기운동을 하면 언론의 관심이 비상해진다. 이 기획이 알려지면서 예상했던 대로 언론이 동포들의 문제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중국국적 포기운동을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혹시나 중국정부가 오해할까 보아서였다. 또 조선족 지식층으로부터도 안 하는 것이 좋겠다는 권고가 있었다. 최근에는 국적회복운동 조차도 중국을 등지는 운동으로 오해될 우려가 있다고 하여 운동의 명칭을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찾기
운동으로 바꾸었다. 우리가 하려는 일이 중국을 등지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잘 아는 동포지도자로 심양에 사시는 박경옥 할아버지가 있다. 그 할아버지는 독립운동가의 후손이고 지금은 아들이 사업을 크게해서 부유하게 살고 계신다. 그분이 나를 만날 때마다 강조한 점이 바로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였다. 그 할아버지는 중국이 좋기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가 살고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분은 왜 <고향에 돌아가 살 권리>가 주어지지 않는가고 항변하셨다. ‘나는 내가 선택해서 중국에 있고 싶다’고 했다.

이번에 동포들이 국적회복운동을 하는 것은 진짜로 국적회복을 위해서가 아니다. 박경옥할아버지처럼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를 되찾기 위해서다. 이 권리가 회복된 후에 그 때 가서 동포들은 각자 자유롭게 국적을 선택할 것이다. 따라서 중국정부는 이들 6천명이‘배은망덕하게 중국을 등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기 바란다.
조선족동포의 문제를 국적법으로 해결하지 말고 재외동포법으로 풀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다. 다만 문제는 그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데 있다. 이미 재외동포법에 대해서는 중국정부가 강하게 반대의사를 밝힌 바 있다. 그리고 국회의원 몇분이 재외동포법과 관련해서 중국방문을 하려 했는데 중국정부가 아예 비자를 내주지 않았다. 이유는 내정간섭이었다. 재외동포법은 중국국민인 조선족을 상대로 한 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중국정부는 자기들의 재외동포를 특별대우하지 않는가? 아니 특별대우 한다. 다만 중국에는 재외동포법과 같은 법은 없고 대신 행정조처로 동포들을 우대한다. 그래서 중국정부는 한국이 재외동포법으로 조선족동포를 우대하려는 것을 반대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한국정부과 국회는 중국정부의 신경을 거스르는 입법은 하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중국정부와의 현안이 많은데 동포문제로 중국정부와 등질 수 없기 때문이다. 재외동포법으로 동포들을 돕는 것도 불가능한데 국적회복은 어떻게 가능하겠는가하는 질문이 있을 수 있다. 사실이다. 그러나 어차피 시간이 걸릴 일이면 정공법으로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구체적인 해결방법은 재외동포법으로 풀든 국적법으로 풀든 정부에게 맡기자는 것이다.

왜 국적회복신청을 하고 헌법소원을 내는가? 그리고 왜 단식농성을 하는가?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찾기 운동을 위해 국적회복 신청을 하는 사람들은 6천명까지 될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들은 전부 법무부를 찾아가서 국적회복신청을 하게 된다. 그러면 법무부는 동포들에게 접수거부확인서를 떼어준다. 불법체류자여서 신청을 못받아 주겠다는 것이다. 이유치고는 너무 졸렬하지만 규정이 그렇다니 어쩌랴! 우리는 이 접수거부확인서를 가지고 행정소송을 낼 예정이다. 불법체류라고 신청을 받지 않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 우리의 주장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 문제를 다투느라 시간을 끌 수 없기 때문에 동포들은 다음날 헌법소원을 내러헌법재판소로 간다. 근본적으로 이들은 1948년 5월 11일에 공포된 <국적에 관한 임시조례>와 1948년 제헌헌법 부칙 10조에 의해 대한민국 국민이 된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자손들도 대한민국 국민이 되었다. 이들은 그 후 대한민국 국민임을 포기하겠다고 말한 적이 없다. 다만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꼼짝없이 중국국민이 되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한국정부는 이들이 대한민국 국민임을 포기했는지를 물어봐야 한다. 그런데 한국정부는 이 절차를 거치지 않고 이들을 한국국민이 아닌
것으로 간주했다. 우리는 이점이 위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헌법소원을 내는 것이다. 헌법소원을 제출한 다음에는 서울시내 10개 교회로 흩어져서 단식농성에 들어갈 예정이다. 6천명의 동포 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단식을 할지는 알 수 없다.

사실 중국동포는 단식이 익숙하지 않다. 그렇지만 서울조선족교회는 단식을 하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결정한 이유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동포들의 깊은 한(恨)과 고통을 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동포들이 결연한 행동을 보여주지 않는 한 국민여론은 움직여지지 않는다. 우리는 이번에 단식을 하면서 동포들의 애절한 사연들을 공개할 예정이다. 그 중에는 임신 3개월의 몸으로 시어머니한테서 쫓겨나 불법체류하고 있는 여성도 있고 유일한 혈육인 딸이 한국에 시집오면서 따라온 할아버지, 할머니도 있다. 신장투석 중인 여성도 있고 그동안 번돈 4천만원을 몽땅 한국인에게 사기당한 마음씨 착한 아주머니도 있다. 이들은 다같이 도저히 돌아갈 수 없다고 절규한다. 우리가 행동을 하지 않으면 이들 동포들의 절규가 한국사람들의 귀에 들리지 않는다.

나는 그동안 조선족 동포들에게 중국으로 돌아가서 민족적 주체성을 가지고 잘 사시오 하고 설교해 왔다. 그러한 내말을 들으면서 동포들이 상당히 섭섭해했다.
그래도 나는 내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런데 작년 9월 연변 자치주 50주년 행사에 참석한 후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조선족 동포사회의 미래에 비관적인 전망을 하게 되었다. 나는 고민했다. 교인들에게 앞으로 내가 어떻게 설교해야 할 것인가? 도저히 중국에 돌아가 잘 살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결국 오랜 고민끝에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를 찾아주는 운동을 하는 것만이 해결책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때부터 나는 이 문제를 위해 글도 쓰고 사람들도 만나면서 그들에게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를 돌려줄 것을 역설하고 다녔다. 노무현대통령에게는 그분이 후보시절 경실련 토론회에 오셨을 때 20분간 이 문제를 설명했다. 고건총리께는 일부러 찾아가서 이 문제를 상세히 설명했다. 강금실장관, 청와대 수석등 주요 정부 인사들에게도 찾아가서 설명했다. 국회의원도 스무명에게 설명했다. 모든 사 람들의 반응은 거의 비슷했다. 머리를 끄덕거리며 내의견에 일단 동의를 표했다. 그리고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나중에 가서야 깨달았다. 이 문제는 말로 되는 것이 아니다.
동포들이 행동하지 않는 한 아무도 이들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이 문제를 가지고 행동하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4년이상 된 사람들은 돌아가야 한다고 그들을 은근히 설득했다. 그런데 동포들의 반응은‘전혀 아니올시다’였다. 동포들의 간절한 눈빛… 그들은 도저히 돌아갈 처지가 아님을 내게 호소하고 있었다. 결국 나는 그들에게 졌다. 그리고 지금 내가 할 일이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찾기 운동임을 깨달았다.

11월 15일이 지나면 이들은 전부 잠적한다. 그렇게 되면 목소리를 높여 자신의 문제를 호소할 사람들도 사라진다. 11월 15일 전에 이들이‘이 땅이 내땅인데 우리보고 어디로 가란 말이냐’하고 소리질러야 한다. 그래서 나는 동포들에게 국적회복운동을 제안했다. 그리고 동포들에게“여러분이 행동하지 않는 한 아무도 여러분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여러분의 문제를 제기
하십시오!”하고 선동했다. 지금까지 동포들은 차별과 천대를 받으며 눈물과 한숨 속에서 살아왔다. 이 모든 고통은 한국이‘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를 돌려주지 않은 데에서 비롯된다‘여러분은 여러분의 자식에게 또다시 눈물과 한숨을 넘겨 줄 것입니까? 아니면 결단을 하고 조선족을 위대한 민족으로 탈바꿈시킬 것입니까?’하고 나는 동포들에게 도전했다. 그리고‘당신들이 단식을 한다면 나도 하겠오. 지난번에는 23일간 단식을 했지만 이번에도 승리하기 전에는 절대로 단식을 중단하지 않겠오’라고 말했다.

어떻게 싸울 것인가? 이들이 10개 교회에 들어가면 의사가 진단해서 도저히 단식하면 안 되는 사람들은 단식 못하게 할 것이다. 며칠에 한번씩 의사가 검진하면서 계속 더 이상 단식하면 안될 사람은 중단시킬 것이다.
그렇게 하면서 끝까지 단식과 농성을 계속 할 것이다. 교회에는 말할 수없이 죄송스럽다. 그러나 11월 15일 이후에는 이들은 잡혀가기 때문에 농성을 중단할 수도 없다. 교회를 민수기 35장의 억울한 살인자를 위한 逃避城처럼 생각하고 찾아간다면 교회가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우리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문을 걸어 잠그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단식의 목표는 무엇인가? 그것은 단 한가지다. 조선족동포들에게 고향에 돌아와 살 천부적인 권리가 있다는 점을 한국정부가 인정하라는 것이다. 이 점을 정부가 인정할 때까지 우리는 결단코 단식을 중단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장은 아니더라도 이러한 인식에 부응하여 고통을 겪고있는 동포들의 문제를 최대한 인도적인 차원에서 해결책을 찾아달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구체적으로 다음의 몇가지 사안들이 이루어져야 한다.

첫째는 이번에 헌법소원을 내는 국적회복신청자들로 하여금 판결이 나올 때까지(판결은 6개월내로 나오는 것이 원칙이다.) 국내에 체류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 (원래 소송중일 때는 출국을 유예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재판중인 많은 동포들이 보호 일시해제 조치를 받았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정부가 이들 헌법소소원을 낸 동포들에게 인도적 조처를 취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둘째 딱한 사정이 있는 동포들은 중국으로 추방하지 말아야 한다.

셋째 금년 3월 31일당시 불법이었던 사람들은 다 구제하면서 3월 31일 당시 합법인 사람은 구제하지 않는 것은 옳지 않으므로 이들도 구제해야 한다.

넷째 친척방문으로 입국해서 3월 31일 이후에 불법이 된 사람은 원래는 취업관리제로 얼마든지 합법으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인데 정부가 홍보를 제대로 하지 않아 불법으로 빠졌으므로 이들을 구제해야 한다.

다섯째 국회에 계류중인 국적법 개정에 국회가 늑장을 부리고 있어 국제결혼을 했다가 신랑측의 귀책사유로 이혼된 사람들이 추방당하게 되었다. 국회는 이 국적법개정안을 즉시 통과시켜 이들이 억울하게 추방당하지 않게 해야 한다.

기자들 중에는 우리의 행동이 중국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는 편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우리 생각은 다르다. 그렇게만 보면이 운동을 왜곡된 시각으로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 운동은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를 찾는 운동이다. 그리고 이 기회에 동포들에게도 분명히 말씀드리려고 한다. 조금 더 체류하기 위한 편법으로 이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서류와 행정경비를 찾아가기 바란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원치 않는다. 그런 사람은 결코 단식투쟁을 할 수 없다.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찾기를 위해 몸을 내던져 투쟁할 사람만 남아달라. 옛날바로왕의 압제에서 이스라엘을 해방시킨 하나님께서 이들 절규하는 동포들의 편에 서주실 것을 간절히 기도드린다.

서경석 목사 <서울조선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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