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동포들에게 역대 한국대통령 중에서 인물을 꼽으라고 하면 아마 김대중 전 대통령을 꼽을 것이다. 일찍이 1973년의 ‘김대중납치사건’과 독재에 항거한 민주투사로 중국에 널리 알려졌고 대통령시절에는 남북정상회담을 이끌어 내고 ‘6.15남북공동선언’을 발표하였으며 햇볕정책으로 남북의 관계개선에 물고를 트게 하였고 한국 최초 노벨 평화상 수상자이기도 하니 말이다.
그런 김대중 씨가 대통령시절에 중국동포들을 괴롭힌 사건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이 다름 아닌 1998년8월에 발효한 중국동포와 구소련동포, 일본의 무국적동포를 제외한 ‘재외동포법’즉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에 서명하여 통과시킨 것이다. 법 제정취지는 잘 사는 해외동포들이 한국을 방문할 때 한국인과 비슷한 법적지위를 보장해주기 위한 것이었다.
한국사회에서 가뜩이나 소외감을 느끼고 전전긍긍하던 중국동포들은 “잘 사는 동포만 동포고 못 사는 동포는 동포가 아니냐.”고 반발하고 나섰고 명동성당 앞에서는 20여일 째 ‘거꾸로 매달기’농성이 벌어졌고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에서는 84일 동안 ‘재외동포법’개정을 촉구하는 동포들의 농성이 이어졌으며 여기저기에서 크고 작은 중국동포들의 집회가 있었다. 드디어 1999년8월, 중국동포 문현순 등 3명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출하였고 2001년11월, 헌법재판소로부터 ‘재외동포법’은 동포에 대한 차별이며 헌법에 위배된다는 ‘헌법불합캄판정을 받아냈다.
노무현대통령이 중국동포를 말할 때 입말처럼 하는 말이 있다. “변호사시절에 시집온 조선족여성의 안건을 접수하게 되었는데.......이들은 독립투사들의 후손입니다.”
노무현정권의 출마로 재한중국동포사회는 해방을 맞았다. 도적고양이처럼 숨어 다니던 중국동포들은 음지에서 양지로, 햇볕 따스한 거리로 활보하며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한국인과 동등한 ‘노동3권’을 부여받고 재입국을 통하여 불법체류자로부터 합법화되었으며 방문취업제의 전면 실시로 5년간 합법체류자격을 얻었다. 또 고령 동포의 고국방문은 65세에서 60세로 낮추어졌고 한국어시험과 컴퓨터추첨을 통한 무연고동포의 고국방문취업도 가능하게 되었다.
노무현대통령의 행보는 파격적이었다. 2003년10월29일, ‘국적회복운동’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중국에 돌아가기를 거부하고 단식농성으로 떼를 쓰는 5000여명 불법체류중국동포들을 방문하고 위로함으로써 농성을 풀도록 하였다. 이에 법무부는 중국동포 불법체류자들의 강제추방을 연말까지 잠정적으로 유보하였으며 뒤이어 ‘동포자진출국프로그램(재입국)’이 선을 보이게 된 것이다.
노무현정권의 동포정책은 그가 대통령선거공약에서 제시한 사항들을 잘 관철하였다. 거주국에서 안정하게 살 수 있도록 정착지원을 해 주고 동포들의 권익을 보호하며 모국과의 유대강화, 한민족 정체성 유지, 한민족 네트워크 구성 등에서 볼 수 있으며 중국과 구소련동포의 출입국에 대한 인도적인 배려와 그들에게 국내 근로자와 동등하게 노동관계법을 적용한 점에서도 볼 수 있다. 물론 일각에서는 ‘프랑스소요사태’의 영향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하지만 노무현대통령은 중국과 구소련동포들에게 최선을 다한 대통령이다.
이제 CEO출신의 이명박 정부의 차례다. 이명박 당선자의 중국동포관련공약부터가 분명하게 나와 있질 않다. 외교에서 친미원화(親美遠華)정책을 쓰고 한-미-일 공조를 강조하며 이북에 대한 지원도 국민적인 동의를 우선한다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중국동포정책이 부정적인 영향을 받지 않을까 우려된다. 그러나 앞에서 두 분 대통령이 화해와 협력, 공동발전의 기틀을 마련한 이상 엇박자가 힘을 얻기는 힘들 것이다.
요즘 중국동포들의 한국행은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과거 한국은 떼돈을 벌어가는 고장이었으나 요즘 한국을 다녀왔다고 하면 모두 심드렁해 한다. 그만큼 중국경제의 고성장으로 생활이 유족해지어 꼼꼼히 따지고 살면 한국에 다녀온 가정이 부럽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 한국행을 하는 중국동포들을 보면 땅을 내놓은 농민들과 도시무직업자들로 일색을 이룬다. 또 더는 부자가 되려고 한국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러’ 가고 직업 구하러 간다.
이명박 정부의 대중국동포정책도 새로운 시대 중국동포들의 직성에 맞게 변화돼야 한다. 새 정부는 고령동포고국방문과 재외동포체류자격(F-4)으로 중국동포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고령동포고국방문 연령을 55세로 낮추어 노후설계가 되지 않은 중국동포들이 아직 일할 수 있을 때 고국에서 청소라도 해서 노후설계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며 방문취업제(H-2)가 끝나는 중국동포들에게 재외동포체류자격(F-4)을 부여함으로써 그들이 다시는 도적고양이가 되어 잠적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또 현유의 불법체류동포들에게도 하루빨리 재입국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일전에 대통령직에서 퇴위하고 봉하마을로 돌아가는 노무현 씨를 배웅하려고 중국동포들이 서울역으로 나갔단다. 물론 모든 재한중국동포들이 똑같은 마음이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멀리 연변과 동북에서 한국에서 부모자식들이 부쳐 보낸 돈으로 살아가는 중국동포어린이와 학생들, 연로한 노인들도 노무현대통령에게 감사하고 있다. 이는 노무현대통령이 임기 내 중국동포들을 관심하고 배려한 결과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퇴위하고 청와대를 떠날 때에도 배웅 나온 중국동포들로 길거리를 메우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명박! 이명박!”을 외치며 환호하는 중국동포들의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2008년3월24일moraean@hanmail.net)
려호길 조글로 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