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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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솔 길
  • 동북아신문 기자
  • 승인 2008.03.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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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길우의 수필 95>
  우리가 다니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다. 곧게 뻗은 고속도로가 있는가 하면 꼬불꼬불한 산길도 있고 막다른 골목길도 있다. 풀이 무성한 두렁길과 낙엽이 깔린 숲속길도 있고, 모래길 자갈길 흙탕길도 있으며, 바윗길에 비탈진 언덕길과 물길도 있다. 떄로는 고층 건물의 계단길이 있는가 하면, 사닥다리나 외나무다리 징검다리로 된 길에, 발이 푹푹 빠지는 수렁길도 있고, 아스팔트나 시멘트로 잘 다듬어진 포장도로도 있다.


  이런 여러 가지 길 가운데에서 가장 다니는 맛이 나는 길은 어느 길일까? 그것은 무어니무어니 해도 오솔길일 것이다. 그것도 마을들이 듬성듬성 깔려 있는 시골의 오솔길이라면 더욱 좋을 것이다.


  오솔길을 걷노라면 가지가지의 맛을 느끼게 되고, 알지 못하는 사이에 마음이 누그러지고 평온해지게 된다. 골치 아프던 것도 싹 가시고 속상하던 마음이랑 괴로웠던 심정들이 말끔히 사라져 버리고 만다. 어느 사이에 마음 속에는 새파란 풀잎이 들어서고 나뭇잎이 산들거리며 물소리 바람소리 산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들이 가득 찬다. 그러기에 나는 오솔길 걷기를 좋아한다.


  오솔길은 적당히 좁아서 좋다. 알맞게 오르내리고 꼬부라져서 좋다. 그래서 사람들은 많이 다니지 않아서 거닐기가 편해서 좋다. 교통법규 같은 것은 생각할 필요가 없다. 고속도로에서처럼 신경을 곤두세우고 달려갈 것도 없다. 가고 싶은 데로, 발길 닿는 대로 그냥 걷기만 하면 된다.


  오솔길은 또 적당히 변화가 있어서 좋다. 풀숲이 있고 나무들이 자라고, 산새들이 놀아서 좋다. 가끔은 예쁜 꽃과 열매도 볼 수가 있다. 포장도로에서처럼 같은 모양, 같은 색깔, 같은 간격으로 늘어놓아져 있지 않아서 좋다.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풀 냄새, 나무 냄새, 산 냄새가 풍겨와서 더욱 좋다.


  오솔길은 소음도, 시장 바닥의 아귀다툼도 없다. 무엇보다도 밤낮 시끄러운 자동차 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좋다. 가끔 멀리서 종소리, 개 짖는 소리가 아득할 뿐이다. 내 발자욱 소리가 문득문득 걷고 있음을 알려 오기도 한다. 그러기에, 오솔길에서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가 있어서 좋다. 조용함은 마음에 평온함을 가져다 주고, 평온함은 사색을 하게 한다.


  오솔길은 그리고 조금은 두려운 느낌이 들어서 좋다. 작은 두려움이 있어 산이 위대함을 알게 되고, 자신이 보잘 것 없이 작음을 생각나게 한다. 나보다 힘센 것을 느끼게 하고, 더 위대한 것을 생각하게 하고, 신이며 하느님을 만나게도 해 준다. 힘의 한계를 느끼고, 겸손과 자중을 배우게 하며, 자만과 만용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한다.


  오솔길은 또, 약간은 쓸쓸해서 좋다. 쓸쓸하기에 외로움을 알고, 외롭기에 정을 깨닫고 정이 소중함을 생각하게 한다. 쓸쓸하기에 네 계절의 변화를 이해하고, 세월을 느끼고, 삶의 한계를 깨닫는다. 양보와 순정을 배우고, 독단과 위선의 잘못을 느끼고, 착하고 진실한 마음의 바탕이 열려지게 된다.


  그런데, 오솔길은 걸어서 가는 길이다. 걸으면서 구경하고, 구경하면서 느끼고 생각하고 판단하고, 그러면서 세상을 알게 되는 길이다. 아무 거칠 것도 없고, 꺼리낄 것도 없으며, 간섭을 받지도 않는다. 따라서, 바쁠 것이 없고, 그러기에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가 있어서 좋다.


  오솔길은 인생길에서 가장 풍부한 삶을 하게 해 주는 길이다. 그래서 오솔길은 걸어야 맛을 알게 되는 것이다.


  오솔길을 걷자. 자주 걸으면서 삶의 맛을 즐기며 살자. 포장이 잘 된 고속도로만을 걸으려 하지 말자. 삶이란 크고 많고 빠른 것만이 최선은 아니다. 작고, 적고, 느릿느릿한 속에서도 맛있고 멋있게 사는 지혜를 오솔길을 걸으면서 배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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