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 흘려 일하면 일찍 죽습네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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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 흘려 일하면 일찍 죽습네다레"
  • 동북아신문 기자
  • 승인 2008.03.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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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에세이>
‘땀 흘려 일하면 일찍 죽습네다레’ 라는 말의 뜻에 담긴 진의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2000년 9월.

 압록강 하구에 있는 단동을 출발하여 압록강 이천리와 두만강 일천 삼백리를 답사할 기회가 있었다. 밤만 되면 캄캄한 암흑의 늪 속으로 빠져드는 강 건너 신의주를 바라보며 일행은 우리 민족의 슬픈 현실을 실감하였으며 끊어진 신의주 철교인 단교(斷橋)를 관람하며 우리 민족의 슬픈 역사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끊어진 철교

  

  추악한 욕심

  광란의 칼바람이

  박제되어 보존된

  단동의 끊어진 철교


  영원히 치유될 수 없는

  내 민족의 치부를 들춰 놓고

  낯 뜨거운 관람료가 십오 위안이다

  옛말에

  뿌린 대로 거둔다 하였으니

  누가 무엇을 뿌렸기에

  오가는 사람들의 구경거리 되었나


  동강난 다리

  뿌린 자는 간데없고

  부질없는 가을비만

  소리 없이 내리네.


  부슬부슬 가을비 내리는 날 일행은 우산도 없이 15위안을 내고 끊어진 다리를 관광했다. 대한민국이 북침하여 이 다리가 끊어졌다는 가이드의 비뚤어진 안내를 받으며 우리 국민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의 무엇이 진실이고 또 무엇이 거짓이었을까? 오늘날의 우리 지식인들에게 심오한 과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오늘날의 몇몇 지식인들은 각자의 구미에 맞는 시류에 편승해 조잡한 논리의 잣대를 들이대며 해석하는 현실에서 때로는 분노와 비애를 느끼기도 한다.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논리가 절대적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일어나는 엄청난 우리 사회의 재난. 과연 그들의 판단에 나라의 운명을 맡겨도 될까 하는 의구심마저 떨쳐버릴 수가 없다.


 통일의 소중함보다는 전쟁의 비극이 얼마나 참혹한가를 일깨워 주는 순간이기도 했다.


 중국과 북한의 경계선인 압록강. 두 나라는 강을 국경선으로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정확한 두 나라의 경계선은 강의 중간 지점이 된다. 단동에서 쾌속정을 타고 신의주 강변 쪽으로 가깝게 접근을 했으니 꼬집어 말하자면 국경을 침범한 셈이다. 신의주 강변에 정박되어 있는 배는 거의가 다 군용 선박이었다. 그 당시 어려운 나라 경제에도 불구하고 많은 군인들이 달라붙어 썩어가는 폐선을 수리하고 있는 광경도 목격했다.


 우리 일행은 다음 목적지인 관전을 향해 일찍 단동을 출발했다. 관전은 중국 소수민족인 만족의 자치현이다. 관전 내에 있는 조선족의 집거촌인 작은 마을에서 환갑잔치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잠시 구경 차 들러 가기로 했다.


 그 곳에서의 환갑잔치 행사는 고유한 우리나라의 잔치 풍습과 매우 흡사했다. 온 동네가 일손을 멈추고 함께 어우러져 치르는 동네잔치의 모습과도 같았다. 지나가는 길손이라도 그냥 보내지 않고 한 상 가득 차려 대접하는 게 우리 옛 사회의 미풍양속이다. 한 상 푸짐하게 대접받고 잠시 시간을 내어 마을 유지들과 대화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마을 분들의 관심사는 온통 그 당시 일어났던 취업 사기 사건이었다. 그 곳의 많은 분들도 그 당시의 파렴치한 사기 사건의 대상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그 마을로부터 멀지 않은 압록강 변에서 잠시 멈춰 강가에서 일하던 아주머니로부터 중조 경계비가 중국 땅에 있게 된 사연을 들었다. 거기엔 중조 국경 경계비가 중국 쪽 강변에 세워져 있었다. 그 까닭인 즉 중조 경계비 상류 쪽에서 중국 땅으로 휘어져 흐르는 강물의 침식을 막기 위해 중국에서 석축을 쌓은 탓이다. 장마철에 불어난 강물이 중국 강둑의 석축을 들이받고 꺾인 물줄기가 북한 땅을 야금야금 침식하여, 지금은 아예 강물 줄기가 북한 땅으로 흐르고 원래의 강폭은 현재 중국 땅이 되어 경계비가 중국 땅에 놓여 있게 되었다.


 오늘날의 북한은 가난하여 국경에서 좀먹어가는 땅조차 지킬 수 없다는 이야기다. 눈으로 보이게 좀먹어가는 땅을 지킬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이 이렇게 빼앗긴 땅을 보충이라도 할 양 지금 어떤 일을 계획하고 있는가? 그저 두려울 뿐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7년 전에 비자 없이 북한 땅을 밟아 본 몇 안 되는 행운의 여행객이 되었다고 자부해도 될 듯싶다.


 그 마을에 사는 조선족 아주머니와 아쉬운 작별을 하고 하구하 마을에 속한 압록강 호반 속 조그만 섬에 있는 숙소에 투숙을 했다. 그 곳은 댐에 의해 생긴 조그만 섬이다. 다음날 유람선을 전세 내어 두 시간 여를 달려 수풍 댐에 도착하였다. 우리 일행을 바라보는 그 곳 조선족의 시선은 매우 차가웠다. 그 이유는 북한을 의식하기 때문이란다. 한국인 관광객은 수풍댐 접근을 일절 불허한다는 식당 주인의 말을 듣고 아쉬운 마음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숙소로 되돌아 왔다.


 아름다운 하구하를 뒤로 하고 두 대의 택시는 임강을 향해 또 다시 힘겨운 질주를 시작했다. 백산시를 거쳐 자정이 거의 다 되어서야 임강에 도착했다. 다음 날 아침 일행은 쾌속정을 타기 위해 압록강 가로 나갔다. 강 건너편은 북한의 중강진이다. 임강 강둑엔 연세가 지긋한 노인이 망원렌즈를 설치해 놓고 강 건너 원시인의 주거지 같은 북한의 모습을 중국돈 5십전으로 장사를 하고 있다.


 쾌속정에 몸을 싣고 북한 중강진 산자락 마을의 풍경을 바라보며 아래의 시를 읊조린다.


        임강의 강둑에서


  싸늘한 저녁 해가

  무심히 서쪽 산등성이로 지는 황혼녘

  가난으로 벌겋게 물들은

  강 건너 산자락 마을

  내 민족의 슬픔도

  나는 멀리서 바라보는 나그네


  폐허 같은 오두막집에 남루한 살림살이

  저 싸리문 너머, 들창 너머

  벌거벗은 민족의 수치가

  망원렌즈 속 몇 푼에 팔리고 있다

  어쩌다 내 민족이 이 지경이 되었는가


  반세기가 넘도록

  아무 희망도 없이

  아무 보람도 없이

  또 하루가 저물어 가는 임강의 강둑에서

  나는 보았네

  두 손 모아 비는 갸륵한 여인의 마음을…….


  임강을 뒤로 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안현으로 출발했다. 집안현에 도착해 호텔에 여장을 풀기 위해 숙박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호텔 종업원의 눈초리가 곱지 않았다. 절차도 몹시 까다로웠고, 행선지도 일일이 캐물으며 체크를 한다. 그 까닭을 알아 봤더니, 몇 개월 전에 쌍용총 고분 벽화를 도난당했단다. 그 주범은 아직 잡히지 않았고 공범은 집안현 조선족 박물관장이었으며, 그로 인해 그 공범은 곧바로 극형에 처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같은 사건 이후 삭막한 분위기로 인하여 답사도 제대로 못 하게 되었다. 그 때 들었던 섬뜩한 이야기인데 압록강 건너 만포시에서 있었던 이야기로, 시골의 어떤 서민이 배고픔을 참지 못해 매장한 시신을 꺼내 먹었다는 말을 듣고, 설마 꾸며댄 이야기겠지 하며 그냥 무심히 듣고 넘긴 일도 있었다.  그 때만 해도 북한은 극심한 가뭄으로 인한 식량난으로 인하여 엄청난 수의 북한 주민들이 기아로 죽어 갔고 살아남기 위해 탈북자의 대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갈 당시였다.

 집안현 맞은편은 만포시다. 만포시 하면 북한의 중공업 및 군수 산업의 중심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강 건너 멈췄던 화학공장의 굴뚝에서 그 해 봄부터 연기가 다시 뿜어져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 일행이 집안에 머무르는 동안에도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를 목격했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강 건너 보이는 공장이 비료공장이라고 하는데 비료가 실려 나가는 광경을 한 번도 목격한 일이 없었다며 간혹 군용 트럭만 들락거린다고 말해 줬다.


 장백산맥 고원지대를 넘어 여행은 이어졌다.

 김일성 아버지의 이름을 딴 김형직군과 또 압록강 강변에 위치한 김일성 어머니 고향인 김정숙군을 강 너머로 구경하고 장백현에 도착했다. 장백현은 압록강 상류에 위치한 조선족 자치현으로, 북한의 양강도 도청 소재지인 혜산시와 마주한 도시다.

  장백현은 압록강 상류에 있는 중국의 외딴 도시이며, 그곳에서 제일 가까운 중국의 조그마한 도시인 송강하도 험준한 장백산맥을 넘는 세 시간 거리에 있다. 그래서 그곳에 출입하는 한국인이 매우 드물다며 간혹 교회의 선교사들만이 잠시 들려가는 곳이라 한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한국인이 여기에 오게 되면 곧바로 강 건너 북한의 혜산시에서도 안다고 귀띔 해 준다.


  이름 있는 조선족 안내자가 함께 우리 일행의 가이드 역할을 했기 때문에 가는 곳마다 극진한 대접을 받았고, 또 지역에서의 관심 있는 사건들도 귀 동량하게 되었다. 한 한국의 중년 남자가 장백현에 들어와 사업을 한답시고 머무르며 젊은 여자와 놀아나다가 얼마 전에 피살되었다는 섬뜩한 말을 듣고는 늦은 밤 노래방에서 슬그머니 빠져나와 호텔로 돌아오기도 했다.   


 장백현을 출발해 백두산 장백폭포 입구에 있는 이도백화를 거쳐 두만강 발원지인 숭선진에서 또 여장을 풀었다. 그 다음 날 아침 식사를 늦게 마치고 두만강 강둑에 나갔다가 들었던 이야기가 새삼스럽게 오늘날에 와서 가슴을 치고 있는 까닭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숭선진은 북한과 아주 가까이 인접해 있는 진 소재지이다. 진 소재지라고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시골의 작은 마을 같았다. 북한과의 사이에 놓인 좁은 다리로 변변치 않은 무역이 이루어지고는 있지만, 다시 말하면 무역이라 말할 수도 없는 보따리 물물교환소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게 전부다. 간혹 백두산에서 벌목한 원목을 실은 차량이 한두 대 건너올 따름이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일행은 느지막하게 두만강 둑에서 북한의 가난한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북한쪽 강 건너 둑에 꽤 많은 농부들이 일을 할 생각은 전혀 없이 오도카니 앉아 강 너머 이곳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하도 괴이하여 곁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조선족 청년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저 강 건너 말입니다. 저 쪽 젊은이들은 왜 일을 않고 강둑에 저렇게 계속 앉아만 있습니까?”

 “예? 저 사람들이예? 부지런히 일해 땀 흘리면 일찍 죽습네다레.”

  조선족 청년은 이런 물음이 약간은 귀찮다는 듯 퉁명스레 대답한다. 나는 부지런히 일하면 일찍 죽는다는 대답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되어 또 물어보게 되었다.

  “땀 흘려 부지런히 일하면 일찍 죽는다니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나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조선족 청년에게 재차 질문을 했다.

  “미음 같은 잡곡 죽을 몇 숟갈 떠먹고 어떻게 일을 하겠심까?”

  그 청년은 오히려 내게 그런 것도 모르냐는 말투로 대답한다. 나는 또 이상한 생각이 들어 재차 질문을 했다.

 “잡곡 죽을 먹다니요?”

 “저 분들이예, 왼종일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놀고 있는 사람과 똑같이 하루 5백그램의 식량 배급을 받심니더. 하루 배급량이 말로는 5백 그램이라 하지만 높은 데서 내려오며 떼어 먹고 또 떼어 먹고, 이러다 보니 실지로 하루 배급량으로 받는 양은 2백5십그램도 안 되지예. 2백5십그램 가지고 하루 세 끼 밥을 해 먹을 수 있심까? 그러니 영양실조에 걸리고, 영양실조에 걸린 몸으로 땀 흘려 일하면 곧바로 죽을 수 밖에예. 그 지경으로 누군들 열심히 일하겠심까? 눈치껏 놀고 배급받는 사람이 똑똑한 사람이지예.”

 이 말을 들은 나는 어안이 벙벙하여 할 말을 잊고 말았다.


 청산유수처럼 흘러나오는 조선족 청년의 말은 저 쪽 강변에 앉아 쉬고 있는 북한 사람들을 위한 변명 아닌 변명을 대신하는 것 같았다. 이 조선족 청년의 말 몇 마디로 북한의 현 실정을 모조리 대변한 것이다. 저 같은 현실 속에서 식량 증산이 될 리 만무하고 부족한 식량을 골고루 나누어 먹자니 너나없이 배를 곯을 수밖에 없다.


 “저 앞산을 보시예. 북한에 있는 산이 모조리 저 지경이니 조금만 비가 와도 홍수가 나제, 또 며칠 못 가서 곧바로 한해(旱害)로 이어지니 농사일을 망치는 게 당연하제. 지난 날 우리도 다 겪었던 찌꺼기랍네다. 놀고먹는 사람에게 제 아무리 많이 퍼준다고 뭐 해결 난답디까?” 북한 실정의 정수를 정확히 찌르는 논리정연한 말이었다.


 단동을 출발해 압록강을 따라 여기까지 오는 동안 북한의 산들은 거의 다 까까머리 민둥산이었다. 산을 개간하여 파종을 하면 첫해야 그럭저럭 추수를 할 수 있겠지만, 해가 갈수록 피폐한 땅으로 변질될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위에서 조선족 청년이 말했듯이 약간의 비만 내려도 토사가 유실되어 개간된 땅에는 자갈만 앙상하게 남게 되고, 또 빗물에 쓸려간 토사가 하천 바닥을 메워 조그만 비에도 범람한 하천물이 농경지를 덮쳐 한 해 농사를 망치게 된다. 그러니 피폐한 땅과 피폐한 노동력만 남게 되어 오늘날 기아의 근원이 된 셈이다.


 너나없이 골고루 잘 먹고 잘 사는 행복한 사회가 아니라 너나없이 골고루 굶고 골고루 못 사는 불행한 사회다. 이 같은 북한의 현실을 누가 감히 부정할 수 있으랴. 오! 불쌍한 내 민족이여! 광명의 그 날이 올 때까지 부디 생명만은 보존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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