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와 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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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와 매미
  • 동북아신문 기자
  • 승인 2008.0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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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길우의 수필 92>

  개미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것이 한 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것을 알게 된다. 긴 두 개의 더듬이를 계속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개미는 끝없이 무엇을 추구하려 한다. 뿐만 아니라 개미는 실제로 끊임없이 다리를 움직여서 무슨 일이든지 하고 있거나 하러 돌아다닌다. 쉬고 있거나 잠자고 있는 모습은 발견할 수가 없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일에 대한 강한 그 활동력에 우리는 탄복하지 않을 수가 없다. 

  원종(原種)으로는 같은 것인 벌에 있어서도 이와 같은 모습은 그대로 발견된다. 벌들도 어느 것 하나 가만히 있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더구나, 벌들은 날개까지 달려 있어서 지상과 공중 그 어느 곳에나 마음대로 옮겨 다니면서 끝없이 일을 하면서 살고 있다. 이러한 놀라운 활동력은 아마 개미나 벌들 자신이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는 것 같다.


  이에 반해, 매미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놀기만 하는 것으로 흔히들 생각한다. 이 나무 저 나무로 옮겨 다니면서 삶이란 무척 즐거운 것이라고 소리 높여 노래하는 것으로 여긴다. 자기의 삶을 마음껏 즐기기만 하는 녀석으로 누구에게나 매미는 비쳐지고 있는 것이다. 사실 매미는 찬바람이 불기 전에, 더 절실하게 말하면 그들이 죽기 전에 짝짓기 위하여 자기 짝 암놈을 애타게 부르고 있는 것인데도 사람들에게는 노래나 부르며 놀기만 하는 건달로 보이는 것이다.


  더구나, 그들이 이런 성충이 되기까지에는 수많은 세월 동안 어둡고 답답한 땅속 생활을 견디어 내야 했으며, 성충이 된 뒤의 매미로서의 삶도 그의 일생으로 보아서는 얼마 안 되는 짧은 기간인데도 사람들은 매미를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따라서, 매미의 입장에서 보면, 사람들의 매미에 대한 이런 잘못된 인식은 억울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그들이 애벌레인 굼벵이로 4년 내지 6년, 어떤 종류의 것은 13년, 혹은 17년씩이나 살아온 것을 생각하면, 성충 매미로서의 삶은 정말로 쉬고 놀고 즐기지 않을 수 없는 것이고, 어쩌면 고생 끝에 낙이라는 당연한 사실―권리로서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사람들의 인식에 있다. 개미는 부지런하고, 매미는 놀기만 한다. 그러므로, 개미는 우리가 본받을 만한 모범 청년이요, 매미는 본받아서는 안 될 건달이라는 점이다. 물론, 개미와 매미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어떤 한 면에서만 보고 얻어진, 완전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설령 그것이 피상적인 인식이라 하더라도 우리의 삶과 연결시켜 볼 때 과연 그런 해석이 긍정될 수 있을까?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기도 하고 때로는 쉬기도 하며 가끔씩은 놀기도 하며 산다. 본업에 충실하면서도 부업까지 틈틈이 하기도 하며 두세 가지 일을 같이 조금씩 추진해 나가기도 한다. 실제로 라디오를 들으며 공부할 수도 있고 테레비를 보면서 신문을 뒤적일 수도 있다. 가끔씩 허리를 펴 쉬기도 하지만 한참을 누워서 놀기도 하며, 때로는 며칠 동안을 일을 않고 쉴 때도 있다. 1, 20분쯤 놀고서 일하기도 하고 한두 시간을 놀기도 하며, 어느 때에는 며칠을 놀 수도 있다.


  이러한 다양한 삶을 하는 인간들에게 있어서는 실제로는 개미와 같이 일만 하거나 매미처럼 놀기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일하는 것도 살기 위한 것이요, 쉬고 노는 것도 살려고 그러는 것이다 일하기 위해 사는 것은 분명히 아니며, 쉬거나 놀기 위해 사는 것은 더구나 아니다. 중요한 사실은 쉬고 노는 것이 모두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어느 것은 중요시하고 어떤 것은 경시할 수가 없는 것이며 이들 모두가 중요하고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일의 중요성과 일하는 미덕을 강조한다 하더라도 사람이란 일만 하며 살 수는 없는 것이며, 쉬거나 노는 것이 악덕일 수만은 또한 없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어쩌다 쉬거나 놀고 있을 때 공부하라는 어머니의 말이 학생에게는 얼마나 듣기 싫은지를 알아야 하며, 매일 끝없이 일해야 하는 농번기의 농촌 청소년에게 있어서는 한 달에 단 한 번만이라도 놀 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이 얼마나 간절한가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때문에, 일요일은 매일 일하는 직장인들에게 있어서는 매우 크고 중요한 가치를 가지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일하는 것은 좋고 옳은 것이며, 노는 것은 나쁘고 좋지 않은 것이라는 생각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따라서, 개미는 부지런해서 좋고 매미는 놀기만 하니까 나쁘다는 생각은 그것이 편협되거나 피상적인 것이어서보다 기본적으로 잘못된 인식이라서 문제가 된다. 이것은 좋고 저것은 나쁘다거나, 무엇은 훌륭하고 어느 것은 못되다는 이원적 판단은 매우 초보적인 인식의 단계이며, 이런 방식이 계속되면 결국 모든 사물을 정과 반 두 가지로만 생각하게 만들 염려가 있다.


  모든 사물은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개체마다 서로 똑같은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것이다. 또한 모든 사물들은 그것을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달리 보여 지기도 하고, 또 볼 적마다 다른 모습이나 느낌이 들게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사물을 인식할 때 너무 정반(正反)․진가(眞假)․시비(是非)․흑백(黑白)․가부(可否)․우열(優劣) 등의 양단식(兩斷式) 인식에 매여서는 안 될 것이다. 설령, 그것이 어느 한 면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또 다른 면들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갖지 않게 만드는 것이 되기 때문에 잘못이다.


  개미와 매미에 대한 우리의 인식도 그런 것이다. 한 쪽으로만의 생각은 그 자체가 잘못이기 때문에서도 문제이지만, 우리들의 사물에 대한 인식을 자꾸 일방적이게 하고 나아가서는 잘못되게 만들게까지 하기 때문에 더 큰 문제가 되는 것이다. 또한, 설령 개미와 매미에 대한 그런 피상적인 잘못된 인식을 긍정하더라도 그것이 우리의 생활에 그대로 적용될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와 같은 인식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이란 개미처럼 살 수도 없고 매미같이만 살 수도 없는 존재이다. 사람은 그러한 삶들을 다 가지며 스스로 자신의 삶을 엮어 가는 사람으로서 살아야 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개미의 삶은 본받고 매미와 같은 생활은 하지 말아야 된다는 사고방식이나 태도를 강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일하고 노는 것이 다 삶인 이상 우리는 개미처럼 일도 하고 매미처럼 놀기도 하면서 살아가야 할 것이다. 한 쪽을 취하고 다른 한 쪽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둘 다 알맞게 취하여 사는 슬기와 그런 인식이 더 필요하고 중요할 것이라 생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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