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후사(武侯祠)는 중국 성도(成都)에 있는 제갈공명의 사당이다. 이곳에는 유비의 묘인 혜릉(惠陵)과 유비전(劉備殿)이라 불리는 한소열묘(漢昭烈廟)와 공명전(孔明殿)이라 불리는 무후사(武侯祠)가 있다.
무후사는 남북조부터 당송(唐宋) 시대에 이미 유람승지로 널리 알려졌다.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도 “승상의 사당이 어디인가, 금관성 밖 송백 빽빽한 곳이로다(丞相祠堂何處尋 金官城外柏森森)”라는 명구를 남겼다.
그런데 이곳을 어째서 촉(蜀)나라 임금을 모신 유비전이나 그의 능침(陵寢)인 혜릉이라 하지 않고, 유비의 신하인 제갈량(諸葛亮)의 사당인 ‘무후사’라 부르는가?
유비전에는 “業紹高光”이란 판액(板額)을 달아놓았는데, 유비를 계승하여 한(漢)의 고조 유방(劉邦)과 광무제 유수(劉秀)가 제업(帝業)을 크게 일으킨 뜻이라 한다. 유비로부터 시작되어서 전후 일천년의 한(漢)나라가 빛나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도 유비전보다 무후사로 불린다.
이상한 느낌은 또 하나 있었다. 유비의 소상(塑像) 왼쪽에 유비의 손자인 유심(劉諶)의 소상이 있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아도 아들의 것은 보이지 않았다.
전각 동편전에는 관우(關羽)와 그의 아들 관평(關平), 관흥(關興)의 소상이 있고, 서편전에는 장비(張飛)와 아들 손자 3대의 소상이 있었다. 의형제들인 관우와 장비도 그들의 아들과 손자까지 있는데, 왕인 유비만은 손자의 소상만 있을 뿐 제2대 왕이었던 아들 유선(劉禪)의 것은 없는 것이다.
나는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관우는 의(義)로 중국 역사상 최고의 인물로 여겨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고 있다. 장비의 성(誠)도 중국의 대표적인 모범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므로, 관우와 장비는 의형제여서만이 아니라, 의와 성의 인물로서도 자리를 함께 할 수 있다.
그래도 유비의 아들은 빼고 손자의 소상을 안치한 점은 일반적 상식으로는 얼른 이해가 되지 않았다.
유비의 아들 유선은 나라를 다스리는데 무능한데다 여자들을 좋아하고 나약(懦弱)하여, 끝내는 위(魏)나라에 투항하고 말았다. 하지만 손자 유심은 서기 263년에 위나라 대군이 성도에 쳐들어왔을 때 유선이 항복하자고 하자, “아비와 아들, 임금과 신하들이 성을 등지고 싸워 사직을 위해 죽음으로써 돌아가신 할아버지[유비]를 뵙는 것이 옳습니다” 하고 간곡하게 청하였다. 그래도 유선이 항복을 결정하자 유심은 유비묘에 가서 통곡하며 호소한 뒤, 먼저 아내와 아이들을 죽이고 자신도 자결하여 순국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이 유선은 이를 갈며 미워하고 유심은 존경하며 숭상하였다. 유비전에 아들 유선의 것은 설치하지 않고 손자 유심의 소상을 안치하게 된 것은 바로 이런 까닭이었다.
사람들은 위계(位階)를 중시한다. 임금과 신하 사이에는 언제나 임금을 앞세우며 먼저 위한다. 임금이 어리석고 신하가 훌륭해도 임금부터 꼽는다. 그런데, 무후사는 신하 제갈량의 사당 이름인데도 그의 임금의 것인 유비전이나 혜릉으로 불리지 않는다. 실제로 유비전과 혜릉만이 아니라 유비와 관련된 것이 훨씬 더 많은데도 이곳을 무후사라 부르는 것이다. 유비가 위업(偉業)을 일으켰어도 제갈량의 삶이 워낙 훌륭해서 보다 더 존경받기 때문인 것이다.
사람들은 또 혈연(血緣)을 매우 소중히 여긴다. 못생겼어도 내 새끼라고 귀엽게만 여기고, 못났어도 내 자식이라며 감싼다. 자식이니 거두어 먹여주기야 가족으로서 해야겠지만 무조건 감싸기만 하려 들 수는 없는 일이다. 유선이 비록 왕이었어도 어리석고 무능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국난(國難)에 싸우지도 않고 스스로 항복하였으니 어찌 개탄하지 않겠는가.
무후사 경내에는 유비와 제갈량, 관우, 장비 등 촉한의 문무(文武) 인물들 소상(塑像) 28좌가 봉안되어 있다. 그들 모두가 의(義)와 성(誠)으로 산 사람들이다. 그 밖에도 각종 비각(碑刻)과 많은 문물자료들이 있고, 도원(桃園), 삼의묘(三義廟), 결의루(結義樓), 박물관에 여러 누각과 정원, 연못 등도 있다. 위치도 시내 중심부에 있어서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둘러보고 있다.
그런데 이들 중에 이곳을 유비와 관련되게 부르지 않고 제갈량의 사당 ‘무후사’라 하는 뜻과, 유비의 손자의 것은 있는데 왕이었던 아들의 소상이 없는 까닭을 과연 얼마나 깊게 인식하고 갈까?
존경하는 것은 신분의 높고낮음이나 위계의 순서대로가 아니다. 그 많은 제왕(帝王)들 중에 존경받는 사람이 과연 몇이며, 제왕이 아닌 사람이 그들보다 훨씬 더 존경받는 것은 왜일까. 무후사는 존경받는 삶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