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려호길 칼럼>
나이 올해로 마흔다섯을 맞지만 아직도 성(姓)과 이름과 민족이 '확실'치 않다. 나의 성과 이름과 민족을 남들이 제멋대로 생각하고 제먹대로 부르기 때문이다. 애완견도 주인이 뭐라 하면 그대로 따라주는 세상이건만 한 인간에 대한 호칭이 각자 제멋대로니 여간만 열 받는 일이 아니다. 시골에서 소학교에 입학할 때 내 이름은 ‘려호길(呂鎬吉)’이었다. 족보대로 하면 동(東)자 돌림이니 이름에 응당 동(東)자가 들어가야 하건만 9대장손인 이종형님이 ‘革命’을 일으켜 호(鎬)자를 단 것이 근거가 되어 호길(鎬吉)로 지었다 한다. 그런데 남들이 호(鎬)자를 발음할 때 늘 고(gao)로 발음하여 늘 양미간을 찌푸리곤 하였다. 물론 호(鎬)는 hao와 gao로 발음되는 다음자(多音字)다. 그러나 이름자에 붙을 때만은 hao로 발음한다.
그런데 기분 나쁜 것은 모두들 조선어 표기인 ‘려호길’을 상기하고는 제멋대로 ‘호’자를 범호(虎)자 혹은 넓고 클 호(浩)로 바꿔 쓰는 것이다. 내가 항변하면 아무거나 쓰면 되지 별걸 다 따진다는 듯 강아지 이름 고쳐 부르듯 제멋대로다. 그러다가 중학교 때 현성으로 이사 가면서 천출증을 떼어보니 거기에도 려호길(呂虎吉)로 되어있었다. 그냥 넘어갈 수 없어서 호적원과 시비를 하니 언제 어떻게 바뀌었는지 자기도 모르거니와 현재로써는 원시기록을 깰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나는 호랑이를 달고 현성으로 이사 가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름 중에 범호(虎)자가 있는 것이 싫어 늘 원래대로 가비 호(鎬)자를 썼다. 그리고는 꼬박꼬박 고(gao)가 아니라 호(hao)로 발음한다고 설명하곤 했다. 좀 번거롭지만 그렇게라도 내 이름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당연함이 곤혹을 치르게 했고 시정할 수 없는 과오도 범했다. 대학공부를 하면서 학적에 려호길(呂鎬吉)로 밝힌 것이다. 그런데 얼마 뒤에 신분증제도가 실시되면서 호적을 근거로 하다 보니 신분증이 려호길(呂虎吉)로 되었다. 결국 졸업증은 물론이고 성적표에도 이름이 려호길(呂鎬吉)로 되고 만 것이다.
“이거 본인 졸업증 맞소?”
“예. 그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
구구히 손짓 고개 짓 해가면서 설명하다 보면 그냥 발짓을 하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다행이 졸업증을 쓸 일이 몇 번 없었으니 망정이지 이런 억울함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럭저럭 신분증대로 범 호(虎)자로 완전히 ‘껍질’을 바꾸는 수밖에 없었다. 이름에 호랑이를 달고 다니는 것이 여간 반갑지 않았지만 별다른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민족으로 곤혹을 치르게 되었다. 입사해서 회사일로 남방에 자주 다니다 보면 조선족을 모르는 한족들이 꽤 있었다. 대체로 학교 때 남들 연애하는 거나 납작 엎드려 보고 쌈박 질할 때 옷이나 들어주던 공부 못한 부류의 사람들이다. 신분증을 건네주면 눈이 휘둥굴해서 “조선에서 왜 왔는가?”고 묻는다. 어처구니없게도 신분증 민족란에 ‘조선’이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보고 착각하는 것이니 무작정 원망할 수도 없었다. 열물을 꿀꺽 삼키고 조선족 이주사로부터 개척사 혁명사까지 이야기해 주면 그쪽에서 “오! 그럼 언제 조선으로 돌아가느냐”고 한다. “안 간다.”고 하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머리를 절래절래 젓는 품이 평생 터득할 기미가 아니다.
그 뒤 성과 이름과 민족에 대한 불편은 한국으로 이어졌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곤혹스러운 것은 두음법칙이었다. 나의 성인 ‘려’가 두음법칙에 따라 ‘여’로 바뀐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공문서에서가 아니라 입말에서 그친다. 공문서에서나 외국인 등록증에서는 ‘려’도 ‘여’도 아닌 한자영어표기인 'lu'로 성을 표기하고 이름도 ‘huji’로 표기한다. 이건 고국에 온 것이 아니라 어느 영어권나라에 온 느낌이다. 그것도 실제 한자표기인 ‘뤼’가 아닌 ‘루’로 읽는다. ‘뤼후지’가 ‘루후지(luhuji)’로 된 것이다.
거기다 민족은 조선족이 아닌 ‘한국계 중국인’으로 표기하고 구두상으로는 ‘한민족’ ‘중국동포’ ‘중국교포’로 되었다가도 저들 심기가 불편할 때는 ‘중국놈’ ‘때놈’이 된다. 내가 ‘중국놈’ ‘때놈’이면 너희들은 ‘양놈’‘족발이놈’인가. 그리고 김대중정권 때는 ‘재외동포법’에서 제외되었으니 “중국인”이 되었고 ‘재외동포법’이 헌법불합치 판정이 난 뒤 노무현정권에 와서는 ‘재외동포’즉 ‘한국계 중국인’으로 된 것이다.
그럭저럭 한국에서 아리송하게 보내다가 중국에 돌아오면 또 너는 조선족이니 당연히 ‘여’가 아닌 ‘려’가 되어야 한다고 혀를 감게 만든다. 그러다가 이북에 가면 또 “너희는 조국에 왔다.” 고 한다. 그 말인즉 너는 ‘조선인’이라는 것이다.”
도대체 나는 무슨 죄를 지었기에 성과 이름과 민족으로 늘 혼란을 겪어야 하는지 한가슴 울화가 치민다.
2008년2월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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