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국제결혼으로 한국에 왔는데 남편이 사망해서 기간연장을 할 수 없어 문의 드리는 겁니다.”“국제결혼한 사람인데 가출했거든요. 불법체류자 단속을 할 거라는데 어떻게하면 좋죠?”
11월 15일이 다가오는 요즘, 이런 문의 전화를 많이 받는다. 조선족 교회에서 매주 일요일마다 신혜수 교수는 국제 결혼한 여성들을 위하여 고충상담을 하고 있다. 신 교수와 평일 상담전화를 받아 온 지도 어언 간 7개월이 되어 온다. 예전엔 언론매체를 통해서 위장결혼, 사기결혼, 국제 결혼여성의 가출 등등 사실만 알고 있었던 나는 직접 상담전화를 받은 후에는 세상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저의 남편이 가출했어요.”
“아니, 남편이 가출했단 말씀입니까?”
“네, 남편이 도박 빚 때문에 숨어 살다가 실종되었어요.”
국제 결혼한 여성이 어느 날 보따리 싸서 가출한다는 말은 자주 TV나 신문에서 듣고 봐왔지만 한국인남편이가출했다는것은금시초문이었다.
그러나 상담전화를 받는 수가 늘어나면서 이런 피해사례도 점점 늘어났다. 한국인 남편이 가출하는 경우는 대게 빚쟁이들 때문이거나 남편이 바람나서이다.
가출은 했어도 집이라도 남겨 놓았으면 그래도 양반이다. 그러나 대부분 집은 월세방이어서 부인은 실종된 남편을 찾을 겨를도 없이 생업에 종사해야 했다.
재혼한 어떤 남성은 본처의 아이들을 남겨두고 가출을 했다. 그 부인은 피도 섞이지 않은 애들이지만 가여워서 잘 키울 것이라 한다.
오늘도 남편이 일본에 출장 간다고 나가서 1년 동안 무소식이라면서 외국인등록증연장기간도 다 지나갔는데 어떻하면 좋냐는 문의전화가 걸려왔다.
어떤 남성은 부인을 시댁에 남겨두고 혼자 어디론가 종적을 감추었다. 시댁의 성화에 그 여성은 그 집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그 여성은 미리 남편의 가출신고를 해놓았기에 외국인등록증기간을 연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6개월 후 다시 기간연장을 하려 하니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이젠 더는 안된다고 하니 어떻게 해야 좋겠냐며 다시 중국으로 강제송환되면 부모님 얼굴을 어떻게 보고 동네사람들 얼굴을 어떻게 볼 것이며 자신은 죽어도 한국땅에서 죽을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제가 국제결혼으로 한국에 온지 4년이나 되었는데 외국인등록증을 취득하지 못했어요.”“4년이 지났는데 외국인등록증이 없다니요?외국인등록증은 입국 후 금방 나오는 거 아닙니까?”“저의 남편이 교통사고로 제가 입국하자마자 사망했거든요. 그래서 외국인등록증을 신청하지 못했어요 시댁식구들이 나서서 해결하려 해도 외국인등록증을 취득할 수 없었어요. 개인적으로 이곳저곳 다 쫓아 다녀 봐도 가망이 없어서 포기한 채로 살았어요. 저처럼 이런 일을 당한 언니들이 있어요?”인명제천이라고 아무리 젊고 건강했던 사람도 죽음 앞에선 어찌할 수가 없다. 사랑하는 부인 얼굴도 못 본 채 이 세상을 떠난 그 남편은 아마 저 하늘나라에서도‘며칠만 더 살아서 부인의 외국인등록증이라도 신청해 주었으면 좋았을 걸’하고 안타까워 할 것이다. 그 여성도 슬퍼할 겨를도 없이 의식주 해결에 신경 써야 했고 불법체류자라는 딱지에 짓눌려 한순간도 편안하게 살 수 없었다.
외국인등록증 취득 후 남편이 사망한 경우에는 시댁식구들이 신원보증을 서면 기간을 연장할 수 있는데 이 경우에는 총 5년의 기간을 연장해야 일반귀화를 할 수 있다 한다. 그 기간에 시댁식구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불법체류자로 된다.
어떤 시댁식구들은 애초부터 신원보증을 서주지 않는 경우가 많아 남편 사망시 한순간에 불법체류자로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불합리한 제도 때문에 소위 말하는 불법체류자의 수가 계속 증가하는 것이다. 남편을 잃은 것만 해도 분통하고 슬픈데 불합리한 제도 때문에 한 번 더 울어야 하고 평생 그 짐을 지고 가라해도 어디에다 하소연 할 곳도 없는 우리 피해 여성들의 현실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남편이 사망하면 아이는 한국인이고 엄마는 중국인이어서 한국의 법대로라면 생이별을 당하는 것이다. 선진 한국에 서 이런 일이 발생하여도“그게 다 복불복 이지 뭐.”하고 가볍게 넘길수 있겠는가?“제가 아이 데리고 가출했거든요.” “가출하면서 아기는 왜 데리고 나오셨죠?”“남편이 저와 아이한테 폭행을 일삼아서 아기 두고 나오면 아빠한테 맞아 죽을 것 같
아서요.” TV나 신문에서 아기 두고 가출한 여성을 인간 쓰레기 취급하는 보도만 봐오다가 이런 상담 전화를 받으면 존경심까지 우러난다. 그 누가“대한민국국민이 되기 위해선 맞아 죽더라도 야만인 남편의 갖은 폭행을 참고 견디세요.” 라고 할 수 있는가? 그러나 대한민국의 법은 대한민국국민과 결혼한 외국인은 혼인 후 남편폭력에 맞아죽든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려 정신병 환자가 되어도 꾹 참고 귀머거리, 눈봉사, 벙어리가 되어 국내에서 2년을 동거해야 한국국적을 부여한다고 한다.
늑대소굴에 갇힌 어린 양을 보고 조금만 참고 견디라고 하는 것과 무슨 다른 점이 있는가?
한국에 입국하자마자 남편의 빚 문제로 빚쟁이들 한테 쫓겨 다닌 여성, 시골의 재래식 화장실에서까지 소주박스를 끼고 소주를 들이키는 남편과 술주정을 하는 시어머니를 견디다 못해 홀로 집을 더난 여성, 손에 닿는 대로 부수고 던지고 칼들고 위협하고 불법체류한 친척들을 신고한다고 협박 일 삼는 남성, 자기주장이 없어서 마마보이도 아닌 자기 동생의 말만 듣는 동생보이 남성, 이틀 일하고 노는 남성, 평소에 중국인이라고 무시하고 깔보고 업신여겨서 아무 말이나 함부로 하면서 자기가 부인을 한국사람 만들어 놓았다고 허풍 떠는 남성, 제왕절개 하여 출산한 산모를 위해 몸조리 시켜주기는커녕 시어머니는 아기를 약탈해가고 남편은 바람나서 부인을 돌보지 않은 일도 드라마속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공공연히 벌어 진사실이다. 혼은 자신이 선택한 만큼 불행의 원인을 모두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정부는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의 부정행위(위장결혼, 사기결혼)를 차단한다는 명목으로 한번 결혼에서 실패하여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다시 한번 울리는 일은 천부당만부당한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 갈 수 있는 최소한의 생존권만은 보장받아야 한다. 국제결혼으로 한국에 입국하여 여성의 잘못이 아닌 남성 측의 잘못으로 외국인등록증기간을 연장하지 못하여 불법체류자로 된 여성들은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한국에선 당당한 한국인으로 살아 갈 수 없을 뿐 만 아니라 중국에 돌아가도 한평생 떳떳하게 살아 갈수 없다.
상생과 화합의 시대에 인권이 존중받는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평화와 행복이 충만하기를 기원한다.
박미자 <국제결혼 여성 상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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