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볼거리 연길 볼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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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볼거리 연길 볼거리
  • 려호길
  • 승인 2008.01.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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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려호길 칼럼>


서울에는 볼거리가 많다. 아침에 출근을 할 때면 길가 가판대에서 일간지를 하나 빼들면 세상이 일목요연하다. 또 지하철입구에는 ‘motr’ ‘am7’ ‘노컷뉴스’ ‘스포츠한국’ ‘zoom’ ‘focus’ ‘시티뉴스’ 등 무료지가 있어 당일 뉴스들을 볼 수 있다. 버스로 출근할 때는 ‘벼룩시장’ ‘가로수’ ‘교차로’와 같은 무료광고지들이 행인들이 손만 내밀면 닿을 수 있도록 비치해 두어 들고 가다가 깔고 앉았다 버리기도 좋다.

그러나 연길은 그렇지를 못하다. 당일 신문을 보려면 한낮이 되어야 가능하거니와 서울처럼 아무 신문이나 덥석 잡았다간 크게 실망한다. 신문들이 볼거리가 없거니와 눈에 띄는 것은 한국노무관련 광고들과 꼼수를 노리는 엉터리 중의사들의 광고로 장식되었다. 무료광고지도 마찬가지다. 발행되는 날 시내중심가에서 잠깐 무료이벤트를 한 뒤에는 길가 구멍가게에서 돈 주고 사야한다.

간만에 옛날 보면서 자랐던 잡지들을 사다가 펼쳐놓으면 도대체 끝까지 읽어 내려갈 글들이 없다. 케케묵은 이야기에 표현수법은 단순하고 시대를 반영한 인물형상은 찾아보기 힘들다. 작가들의 생활이 단조로운데다가 편벽한 시골에서 마누라만 지키다 보니 시야가 좁다. 거기다 우려하는 것들이 많아 본 것을 본 대로 적지 못하고 생각한 것을 생각한대로 적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작품이 시대에 떨어지고 품위가 떨어지고 독자가 떨어져 나간다.

방송사들도 마찬가지다. 아침에 일어나 라디오를 틀어놓으면 황금시간에 광고나 하고 있다. 일명 ‘광고약’이라고 하는 이런 약들은 방송사로 광고비가 빠지다 보니 내용물은 적고 포장만 잔뜩 부풀려진 것이 보기만 해도 흉측하다. 뉴스를 보려고 TV를 틀어놓으면 온통 회의소식과 간부들의 ‘발자취’를 보도한다. 오장육부가 뒤틀려 꺼버리면 밥맛까지 잃어진다. 그뿐이 아니다. 신문 잡지 방송사들이 공동으로 범하는 착오가 있다. 언어 문자구사가 연변식을 지키지 못하고 그렇다고 한국식도 따라가지 못한다. 괜스레 시체를 따라가느라고 몸에 배지도 않은 한국어를 억지로 쓰다 보니 쓰임새가 바르지 않아서 웃음만 자아낸다.

신문 잡지 방송사관계자들이 “원고료는 적지만.......”하고 원고청탁을 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이들이 지급하는 원고료는 아직 80년대 수준이다. 10전짜리 버스를 타고 다니고 31전짜리 ‘해란강표’담배를 피우고 18전짜리 마른명태를 찢으며 1원짜리 근들이 배갈을 마시며 글을 쓰라는 모욕적인 청탁이다. 그렇다고 그들 자신은 80년대 생활을 하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다. 오히려 실속 없는 광고나 실어서 백성들에게 해를 입히고 한 몫 챙겨 나눠 먹는다. 그러니 작가들이 글 쓰려는 의욕이 어찌 생기며 좋은 글이 어찌 나오겠는가.

간혹 이들 신문 잡지 방송사 관계자들과 한자리에 앉아보면 오히려 곁에 앉은 사람이 무색할 정도다. 말도 잘하고 나름대로 세상 살아가는 ‘이캄도 밝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권위적이다. 어찌 보면 볼거리가 있던 ‘상처문학’과 개혁개방초기 편집인 작가 기자의 지위를 조금도 잃지 않았다. 또 직업의식은 차하지만 직업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여 자칫 무고한 사람들을 기죽게 한다.

그들 신문 잡지 방송사업에 종사하는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들이 썼거나 다룬 작품이나 기사처럼 ‘볼거리’가 없다. 물론 그 중에는 민족을 고민하고 민족문화를 고민하는 정직한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적지 않은 사람들은 파벌을 묶고 침을 튕겨가며 서로 비난 공격하기를 일삼는다. 누가 봐도 볼거리가 없는 ‘집안’ 치고는 민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볼거리가 생겼다. 신문 잡지 방송에서가 아니라 연변문인들과 관련이 있는 사이트들에서다. 평소 코멘트마저 없던 이들 사이트에 갑자기 문단 특정인들을 지목하고 힐난하는 작가들의 글이 뜨기 시작했다. 옆에서 보기에도 얼굴 뜨겁다. 조직체계가 얼마나 허술했으면 요지경으로 유언비어가 난무하고 인사문제마저 외부에 내놓고 시야비야해야 하는가. 아무리 볼거리가 없는 ‘집안’이라고 해도 이건 결코 볼거리로 될 수 없다. 차라리 벽에다 강아지를 그려놓고 보고 있는 편이 났겠다.


2008년2월1일 연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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