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에서는 바람이 바다에서 육지로 분다. 이런 현상은 동서남북 어느 해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평평한 수면에서는 바람이 거칠 것 없이 불기 때문이다. 다만, 위치에 따라 바람이 적게 불거나 약한 지역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누구나 바닷가에 가면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마주하게 된다. 이처럼 바람은 어디서나 대개 바다에서 육지 쪽으로 분다.
그런데, 이와 반대인 곳이 있다. 바람이 육지에서 바다 쪽으로 분다. 바람이 산을 타고 내려와 바다로 사라진다. 그것도 언제나 그런 것이다. 그곳이 바로 하와이제도의 마우이 섬 서북쪽 라하이나(Lahaina) 지역이다. 이곳에서는 바람이 사시사철 같은 방향인 바다 쪽으로만 분다.
마우이(Maui) 섬은 하와이 군도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이다. 섬 전체의 모양은 마치 사람의 흉상(胸像)처럼 생겼다. 머리와 목과 가슴을 온전하게 갖춘 옆모습의 사람이다.
라하이나는 흉상의 이마와 앞머리 부분에 자리하고 있다. 동남쪽에는 해발 1851m나 되는 푸우 쿠쿠이(Puu kukui) 산이 높이 솟아 있다. 산자락들은 마치 주름치마를 펼쳐 놓은 것처럼 사방으로 해안 쪽을 향하여 흘러내렸다. 바람은 바로 이 산자락을 타고 라하이나 해안 지대로 불어 내리는 것이다.
이곳의 바람은 항상 산에서 바다로 내려 분다. 거의 모두의 지역에서처럼 바다에서 육지 쪽으로 불 줄은 모른다. 봄․가을 계절이 바뀌어도 바람은 사시사철 바다 쪽으로만 분다. 그래서, 이곳의 모습들은 다른 곳과 여러 가지로 다른 특이한 것들이 많다.
이곳은 바다 수면과 백사장과 해안가 도로가 거의 수평을 이루고 있다. 물론 방파제나 뚝 같은 것도 없다. 그 차이가 1m 정도밖에 안 된다. 물결 또한 잔잔하기만 하기 때문에 넘칠 수가 없다. 폭풍우도 없고, 파도가 길을 덮을 만큼 높지가 않다. 그래서, 바닷물은 항상 길가에서 찰랑거리기만 한다. 해변을 달리다 보면 맑은 바닷물이 그냥 그대로 차창으로 넘어 들어올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또 이곳의 나무들은 한결같이 바다 쪽을 향하여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다. 가지들도 모두 바다 쪽을 향하고 있다. 피사의 사탑처럼 한 쪽으로만 기운 나무 둥치들, 햇빛이 잘 드는 남향이 아닌, 서북쪽으로 바다를 향해 뻗은 나무 가지들, 나무들은 한결같이 그런 모습을 하고 서 있는 것이다. 한참을 가다 보면 좌우가 한쪽으로 심하게 경사진 도로를 달리는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난다.
또 이곳 바닷가에는 떠밀려 온 쓰레기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바다는 물론, 해변 언저리는 매우 깨끗하다. 맑은 바닷물이 그대로 육지의 바위나 모래에 와서 찰랑댄다. 물이 하도 맑아서 물고기들이 수초 사이를 헤엄치는 모습들이 그대로 환히 들여다보인다. 마치 어항 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이와 같은 현상들은 모두 바람의 영향으로 일어난 것이다. 바람이 언제나 바다 쪽으로만 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해안의 도로와 백사장과 바다 수면이 거의 수평을 이루고 있어도 물이 도로를 덮지 않는 것도, 나무들이 모두 바다를 향하여 기운 것도, 해변에 밀려온 쓰레기가 전혀 없는 것도 모두 바람이 육지에서 바다 쪽으로만 불어서 생겨난 현상이다.
세상에는 특이한 곳도 많다. 그러나, 바람이 항상 바다 쪽으로만 부는 곳은 거의 없다. 그러기에, 마우이 섬의 라하이나 지역은 아주 특별한 곳이다. 바람이 바다로만 부는 곳, 그래서 해일도 없고, 밀려온 쓰레기도 없고, 나무들이 바다 쪽으로만 기운 곳, 그런 특이한 곳이 바로 라하이나 지역인 것이다.
그래서, 이곳에서 종이배를 띄우면 곧장 바다로 간다. 절대로 육지로 되돌아오거나, 나뭇가지에 걸리는 법이 없다. 점점 멀리멀리 대양을 향하여 흘러간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그래, 바로 이것이다. 여기에서 내 더러운 모든 것을 띄워 보내자. 옷을 털어 먼지만 보낼 것이 아니라, 깊은 날숨으로 속에 쌓인 더러움도 뱉아 내서 보내자. 그리고, 가슴속에 낀 나쁜 감정과 더러운 마음들까지도 실어 보내자.
바람이 육지에서 바다로만 부는 라하이나, 바람을 타고 한 번 떠나가면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는 이곳, 그곳에 서서 깊은 한숨을 몇 번이나 쉬고 또 쉬곤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