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화의 우리민족 이주사진 기행(3)
상태바
주성화의 우리민족 이주사진 기행(3)
  • 주성화
  • 승인 2008.01.1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강희 51년(1712년) 5월 15일, 청나라 우라(길림) 총관 무커닝은 조선 접반사 박권, 함경관찰사 이선부 등과 함께 백두산정에 올라 변계를 확정하면서 정계비를 세웠다. 비석 높이는 통용자로 두 자이고 너비는 한 자 남짓하며 돌은 청석이다. 받침돌이 없이 땅을 파고 세운 다음 큰 돌로 뒤를 받쳤다. 특기할 것은 조선의 박권과 이선부는 도중 대오에서 떨어져버렸기에 이의복 이하 군관들만이 수행했다. 백두산정계비는 9.18 사변 약 두 달 전에 사라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상. 백두산 정계비

강희 51년(1712년) 5월 15일, 청나라 우라(길림) 총관 무커닝은 조선 접반사 박권, 함경관찰사 이선부 등과 함께 백두산정에 올라 변계를 확정하면서 정계비를 세웠다. 비석 높이는 통용자로 두 자이고 너비는 한 자 남짓하며 돌은 청석이다. 받침돌이 없이 땅을 파고 세운 다음 큰 돌로 뒤를 받쳤다. 특기할 것은 조선의 박권과 이선부는 도중 대오에서 떨어져버렸기에 이의복 이하 군관들만이 수행했다. 백두산정계비는 9.18 사변 약 두 달 전에 사라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백두산정계비를 배경으로 한 일본인 太田 기사 일생(1908년 5월 상순)

▲ 백두산 정계비를 배경으로 한 일본인 太田 기사 일행(1908년 5월 하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