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값 한 마리에 160억…극진한 대접받는 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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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값 한 마리에 160억…극진한 대접받는 쥐
  • 동북아신문 기자
  • 승인 2008.0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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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질병치료 해결사… 몸값 높아진 ‘쥐님’

인간 게놈과 97% 유사 1년에 몇 代孫 볼 수 있어
인간 대신 실험대상으로

비만·당뇨 유전자 없앤 쥐
거대 제약회사에서 160억원에 특허권 가져가

2008년 무자(戊子)년 쥐띠 새해가 밝았다. 쥐는 곳간의 식량을 갉아먹고 페스트 같은 몹쓸 병원균을 옮기는 해로운 동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과학계에서 쥐의 위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1마리당 몸값이 최고 160억원에 이르는 쥐가 나오고 있고, 전용 호텔에서 호의호식하는 쥐들도 많다. 이처럼 쥐의 몸값이 올라가는 이유는 갖가지 난치병을 치유할 수 있는 유전공학의 발전에 없어서는 안 될 동물이기 때문이다. 쥐는 이제 지난 세월 인류에게 끼친 해악을 넘어 인류의 구세주로 떠오르고 있다.


◆두 개의 게놈(genome) 프로젝트

고양이의 멋진 수염, 개구리의 커다란 눈처럼 각 동물이 가진 독특한 특성이 자손대대로 이어지는 것은 유전자 때문이다.

한 생물이 가진 모든 유전 정보를 게놈이라 부른다. 현재 인류의 게놈 자체를 파악하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수만 개에 이르는 개별 유전자 하나하나의 기능과 역할은 알지 못하고 있다. 마치 여의도 63빌딩에 설치돼 있는 수많은 전등 스위치의 존재와 위치는 파악했지만, 어느 스위치가 어느 전등을 켜고 끄는 데 쓰이는지는 세세하게 모르는 것과 같다. 유전자의 구체적인 기능을 알려면 스위치 하나하나를 껐다 켜봐야 하는데 이것이 쉽지 않다. 수정체에서 특정 유전자만을 지우고 어떤 기능이 없는 사람을 탄생시키는 것이 윤리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인간 대신 실험 대상으로 쓸 동물이 필요한데, 바로 쥐가 그에 해당한다. 미국 MIT 연구진은 2002년 12월 생쥐(mouse) 게놈 프로젝트를 완성했다. 2001년 4월 인간 게놈이 파악된 지 1년 반 만이었다.

유전자 연구 대상으로 다른 많은 동물 중에 생쥐를 선택한 것은 실험 결과를 확인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적은 데다, 쥐와 인간의 게놈이 97% 비슷하기 때문이다. 연세대 생화학과 이한웅(48) 교수는 “침팬지 같은 원숭이류가 더 적합할 수도 있지만, 침팬지의 유전자를 바꿔 결과를 새끼에서 확인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면서 “쥐는 1년 안에도 몇 대손을 볼 수 있고, 한 번에 많은 새끼를 낳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쥐 한 마리에 160억원

1982년 미국의 리처드 파미터(Palmiter) 박사팀은 생쥐의 수정란에 조작된 성장 호르몬유전자를 주입했다. 생쥐가 아연을 섭취하면 보통 쥐보다 몇 배나 성장할 수 있도록 한 유전자였다. 실제로 이 유전자 조작 생쥐는 아연을 섭취하면서 더 이상 생쥐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커졌다. 〈사진 참조
1994년에는 몸값이 100억원이 넘는 쥐가 탄생했다. 미국 록펠러 대학의 제프리 프리드먼(Friedman) 박사는 비만과 당뇨를 일으키는 유전자를 없앤 쥐를 만들었다. 거대 제약업체인 암젠(Amgen)은 2000만 달러(당시 약 160억원)를 들여 이 쥐에 대한 특허권을 사갔다. 쥐와 인간의 유전자가 공통점이 많은 만큼 쥐의 비만을 해결할 수 있다면 사람의 비만도 의학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본 것이다.

몸값이 높아진 쥐들은 더 이상 시궁창에 살지 않는다. 초호화 호텔에 준하는 거주 환경이 제공된다. 미세 필터로 미생물을 걸러낸 깨끗한 공기를 공급받고, 사료나 물도 멸균 처리된 것만 먹는다. 심지어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소음까지도 통제한다. 어렵게 만든 유전자 변형 쥐가 ‘장수(長壽)’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고통을 덜어 줄 쥐

쥐는 인간을 대신해 각종 유전공학 실험의 대상이 되고 있다.

노화 촉진 유전자를 넣기도 하고, 신약 후보물질을 최종적으로 검증하는 독성 검사도 대신한다. 신약 후보 물질이 의도했던 질환을 치유하는 것 외에 새로운 독성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 유전자의 기능을 검증하는 데도 이용되고 있다. 이를테면 ‘베타3-AR’이라는 동물 유전자는 당뇨병 치료에 효과적이지만, 인체의 베타3-AR 유전자는 치료에 효용이 없었을 뿐 아니라 부작용까지 있었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 쥐의 베타3-AR을 지우고 사람의 같은 유전자로 대체하는 식으로 실험을 진행하는 것이다.

건국대 수의학과 한진수(47) 교수는 “쥐가 없었다면 유전공학의 발전은 무척 더뎠을 것”이라며 “2007년 노벨 생리·의학상이 유전자 변형 쥐를 생산한 연구진에게 주어진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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