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점에서 <원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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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점에서 <원점>으로
  • 동북아신문 기자
  • 승인 2007.1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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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림 강영애

 가을산과 들녁과 물을 보고 왔을 때다. 산골 깊은 곳 작은 마을을 지나고 작은 개울과 들을 건널 때 그 사람 생각이 간절했다. 산의 품에 들고 싶었다, 깊숙이. 물의 끝을 따라 무작정 가고 싶었다. 물소리랑 그 사람이랑 한없이.

 

서리 낀 아침 들길을 걷고 왔을 때다. 발밑에서 부서지는 언 지푸라기들의 비명소리가 들릴 때 그 사람 생각이 간절했다. 사랑이란 이렇게 이슬이 서리가 되는 아픔이라는걸 서리가 이슬이 되는 그리움이라는걸 정리하고싶었다, 곰곰히. 아픔의 깊이만큼 그리움의 넓이만큼 더 성숙해진다는걸 얘기하고 싶었다. 서리랑 그 사람이랑 차분히.


그 사람은 정녕 먼지투성이인 나를 반짝반짝 빛나게 했던 태양같은 존재였었다. 잠시라도 그 사람과 동행할수 있다는 현실이 자그마한 행복으로 적막한 내게로 발볌발볌 다가왔다. 그래서 캄캄한 밤하늘에서 언제나 그 사람에게만은 별이 되여 빛나게 해달라고 순진하게 소박하게 두 손 모아 기도도 했었다. 마치 사춘기에 처해 울렁거리는 가슴 붙안고 있는 17세의 천진한 소녀처럼 얼굴을 살짝 붉히면서.


행복을 찾지 못하더라도 행복을 만들줄 알면 된다고 생각하고 마른 나무 꺾듯 선택했던 그 인생의 집이 결국은 밑거름이 필요하다는 현실을 가슴깊이 느끼고서야 마음조차 둘 곳도 없고 쉴 곳도 없다는 자신의 현실이 너무나도 초라해 보이고 너무나도 가슴 시려했던 그 나날에 노을처럼 조용히 나타난 그 사람이라서. 의미를 잃은 하늘아래 고개를 짓수그리고 망연히 서있는 나의 잠자는 마음을 살며시 깨운 그 사람이라서. 뜻을 잃은 이른 아침에 자오록한 안개속에서 갈팡질팡 헤매는 나에게 꽃술같은 봄비처럼 잔잔하게 다가와 사랑 알게 했던 투명한 사람이라서. 입도 못대는 술도 남들처럼 우아하게 마셔보겠다며 어설픈 왼 손으로 술잔을 잡는 나와 마주 앉아서 묵묵히 내 상처의 흔적에 귀를 기울이던 그 사람이라서. 한 순간의 실수로 궁지에 빠졌다고 아예 제 발로 무작정 낭떠러지로 향하는 나에게 눈 뜨면 보이지 않다가도 눈 감으면 어느 새에 곁에 와서 끌고 무작정 산꼭대기로 끌고가며 용기와 위로를 주던 그 사람이라서.


그러던 어느 날, 그 사람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이름을 부른다는것은 마음을, 믿음을, 사랑을 준다는 뜻이 아닌가? 내가 그 사람을 잠시라도 아무런 부담없이 홀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할 지경이였다. 문득, 그 사람의 새까만 눈동자속에 나의 모습이 환하게 보이였다. 그 사람을 받아들일수 있는 마음도 내 안에 있고 나를 변화시키는 사람도 결국은 다름아닌 내 안에 있다는걸 보아냈다. 그 사람과 같이 걸어가고 있는 이 길은 끝이 전혀 보여지지 않는 길이였다. 처음 시작했을 때의 그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분명 자꾸 내 머리속을 비집고 들어오려고 바득바득 애를 쓰고있었다. 이 세상 모든 일을 가슴이 시키는대로 할수 있는게 아니라면서.


조각달이 걸려있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그 사람과 같이 걸었던 길을 뒤돌아보았다. 그 사람은 대체 어디에서 왔을가? 그 사람은 대체 어디에서 왔을가? 그 사람은 도대체 어디에서 왔을가? 령혼의 진동이 있었다는건 단순한 마주침이 아니라 만남, 그것도 진정한 만남이란걸 의미한다. 그런데 나의 령혼이 흐려져있었다. 그 우연이 낳은건 가슴 아픈 필연의 뿌리였다. 반드시 삶의 방향키를 과감하게 돌려야 했다. 갈 길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도.


아! 그 사람은 옷깃 스치며 지나가는 바람타고 왔었다. 과거로 과거를 떠나보내야만 한다는 생각이 내 가슴을 때렸다. 하늘의 메세지가 담겨있는 뜨거운 령혼의 맑은 눈물이 량볼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메말랐던 눈동자가 씻겨지면서 령혼이 닦이면서 내 등에 진 짐을 느꼈다. 기억속 장면의 주인공이던 그와 나는 깨끗이 지워지고 함께 거닐던 거리, 뺨을 스치던 바람, 차분히 내려앉던 보슬비, 소소한 주변 것들만이 불현듯 선명해짐을 느끼엿다. 결국 그와 나는 한쌍의 레루였다. 순간적인 교차는 있을순 있어도 영원한 교차에서 머물수는 전혀 불가능한 레루였다.


이제 막 붉게 물들기 시작하는 가을산이 아름다운 성숙의 계절에, 랑만의 계절에 끝내는 원점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자신을 고집했다. 내 인생의 사전에 그 사람이 지울수 없는 흔적을 남긴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자신을 달래면서. 그 사람이 내 가슴에 남아 있는 한 아무것도 사라진 것은 없었다. 그저 돌아가는거 뿐이라 생각하였다. 아침 이슬이 공기속에 섞이는 것처럼, 그래서 물기를 머금은 그 공기가 다시 찬 기운과 만나 이슬로 내리는 것처럼 말이다.


6개의 365일전의 울긋불긋한 옷을 갈아입은 단풍잎들이 나무가지에 한들한들 매달려 나를 유혹하던 가을에 운명적으로 만난 그 사람이였는데. 홀로 술잔을 비우며 기나긴 시간과 싸우다가 지친 가슴 안고 아픔에 떨며 비워버리기로 했다. 저 하늘이 바다처럼 다시 파래질 거라고 믿으면서, 락엽을 한잎 두잎 떨어뜨릴 가을바람이 차가운줄 빤히 알면서도, 그 사람만을 담아두던 내 마음이 도저히 안된다고 되뇌였지만. 가혹한 운명의 얼굴에 끝없는 형벌에 두 마음이 편히 쉴 곳이 없으니까.


아, 산은 그토록 아름다운데. 형용할수 없는 울렁임이 가슴을 타고 목울대를 넘나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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