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9월 마오쩌둥이 숨진 뒤 개인 재산을 조사하던 마오의 경호책임자 왕둥싱(汪東興)은 깜짝 놀랐다. 중국의 중앙은행인 중궈런민(中國人民)은행 본점에 ‘중국공산당중앙위원회 중난하이(中南海) 제1당 소조(小組)’ 명의로 7582만 위안이 예치돼 있었던 것.
이 돈은 마오쩌둥이 생전에 모은 선집, 문선, 단행본, 시 등 각종 저작물의 원고료와 인세로 확인됐다.
마오쩌둥은 평소 이 은행 중난하이 지점에 자신의 명의로 80만∼90만 위안을 예치해 놓고 조금씩 빼내 사용해 온 사실이 밝혀졌다.
중국 정부는 이를 비밀에 부쳤지만 낌새를 챈 마오쩌둥의 부인 장칭(江靑)은 5차례에 걸쳐 유산을 돌려달라고 정부에 요구했었다.
당내에서 이를 둘러싸고 논쟁이 일었지만 장칭 등 사인방(四人幇)을 몰아내며 집권한 덩샤오핑(鄧小平) 등 중국 지도부는 “마오쩌둥의 저작물은 당 전체 지혜의 결정체”라며 유산 인도를 거부하여왔다.
왕 씨도 “마오쩌둥이 평소에 ‘내가 죽으면 예치한 원고료를 모두 당비로 내라’고 말했다”며 지도부를 거들었다. 장칭이 사망한 뒤 마오쩌둥과 두 번째 부인 허쯔전(賀子珍) 사이에 태어난 장녀 리민(李敏)과 장칭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리너(李訥)가 유산을 넘겨 달라고 요구했으나 중국 정부는 두 사람에게 주택 구입비 등으로 200만 위안만 주고 나머지 유산의 인도를 지금까지 거부했다. 온바오/김씨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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