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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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생길
  • 허수남
  • 승인 2007.1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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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남의 삶의 이야기>

가정을 이루고 보니 어쩐지 모든 것이 더욱더 힘들어 지는 듯 싶다. 비록 달마다 받는 월급은 연변 기준으로 놓고 볼때 적지 않는 돈이나 이런 저런 비용을 떼내고 나면 남는 것이란 빈 봉투뿐이였다. 어린 아들은 많은것을 사고 싶어했고 나 자신도 아빠로써 많은것을 챙겨주고 싶었지만 쪼들린 생활을 하면서 경제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금 가정을 꾸려 나가기 위해서는 한푼 두푼도 생각하면서 지출을 조절해야 했으며 사소한 일도 때로는 큰일처럼 어렵고 힘들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또한 학업과 육아를 병행하면서 한다는것도 불가능한 일로만 느껴졌다. 그것은 나의 마음쏙에 깊이 깊이 간직한 소중한 꿈이였고 만약 수포로 돌아 간다면 그것은 나의 인생에서 영원히 지워버릴 수 없는 아쉬움으로 남게 될 것이며 어쩐지 한번 기회를 놓친다면 다시는 기회를 못 잡을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제보다, 오늘보다 더욱더 따뜻한 가정과 생활환경을 만들기 위하여 거듭되는 고민끝에 난 떠나기로 작심했다. 비록 가정과 함께 모여 어울리는 시간을 갖는것이 나로 놓고볼때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지를 알고 있으며 또한 집을 나서는 것이 나로 놓고볼때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알고 있지 만은, 또한 이별이 소중한 아들한테 얼마나 큰 상처가 될수 있을지 알고 있지 만은 오직 한번뿐인 인생길을 완벽한 삶은 아니더라도 가치있고 의의있는 삶을 위하여, 그리고 또한 어린 아이에게 진정 소중한 것들을 챙겨 줌으로써 그에게 참된 인생을 열어주기 위하여, 나 자신의 이루지 못하고 두번이나 접었던 아쉬운 꿈을 실현하려고 이렇게 어린 아들의 곁에서 힘이 되어 주지 못하고 떠날 수 밖에 없었다.

떠나던 날 안해는 눈에 눈물을 가득담고 나를 바래 주었고 어린 아들도 나의 품에 안겨 애타는 눈길로 나를 바라 보는것 같았으며 그 순간 나 자신도 어쩐지 마음속 깊이 뜨거운 그 무엇이 흐르고 있음을 새삼스레 느꼈다. 그렇다, 아들은 비록 너무나도 나이가 어리지만 나의 마음을 녹여줄 수 있는 미소를 지을 줄 알고 있으며 사랑을 듬뿍 주고 받을 줄 아는 능력을 누구보다 많이 가지고 있는것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그 심정은 말로 표현할수 없을 정도로 아프고 쓰린 것 같다.

이젠 한국에 온지도 어느덧 반년이 되는 듯 싶다. 내가 취업한 곳은 도시 변두리에 자리잡고 있는 변압기를 제조하는 회사였는데 부지 면적과 규모는 엄청나게 큰데 반면 직원수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 였으며 기능과 기술을 많이 요구하고 있었다. 나 자신이 맡은 사업은 권선을 감는 일인데 이 기술은 나의 전업과 는 크게 연관이 없어서 인지 애로가 많았는데 하도 계장님의 내심하고 차근한 가르침이 있었기에 시간이 지나면서 일에 능률도 오르고 서서히 안정을 찾아가고 있음을 느끼게 되였으며 더불어 하루에도 많은 량의 권선을 감을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고 있는것 같았다. 이렇게 나의 한국 생활은 균형과 안정을 잡기 시작했고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는 것 같았다.지금 생각해보면 숨가쁘게 하루하루 권선작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반면 나의 인생을 날마다 감는 듯 싶었으며 자기가 맡은 사업에 최선을 다해야 생존할수 있다는 진리를 더욱더 심심히 느끼게 된다.

그리고 또한 어제도, 오늘도 사람마다 열심히, 정말로 최선을 다하여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나로 하여금 깊은 인상을 남기게 한것 같다. 권선반을 책임진 계장님은 나이가 든 분 인데 머리는 하얗게 변해가고 있었고 많은 풍파와 곡절을 겪어서 인지 몹시 여위고 말랐으며 반면 평온한 마음, 친절한 성품과 안정된 스타일을 갖춘 사람이였다. 우리 모두는 그를 계장님이라고 불렀는데 그는 내가 중국 동포라는 차원에서 다른나라 직원들보다 많이 나를 보살펴 주시고 아껴 주시였으며 야근이 있으면 종종 나를 시켜 나로 하여금 많은 돈을 벌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회사 직원가운데는 또한 아줌마들도 여러명 있었는데 역시 동포라고 자신의 친 동생처럽 생각하여 주었을 뿐만 아니라 많은 보귀한 경험과 따스한 사랑을 주셨다. 이렇게 나의 주변에 한결같은 따뜻한 격려와 위로, 그리고 너그럽고 따뜻한 손길로 나를 기꺼이 도와줄 수 있는 차분한 아저씨들과 아줌마들이 있는 것으로 하여 난 매우 기쁘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안해한테서 전화가 걸려 왔는데 가라앉은 목소리로 아버지가 간암 진단을 받았다는 것이였다. 그 소식을 접한 순간 나의 세계는 그대로 멈춰버린것 같았다. 어쩐지 인생이 무의미해지고 감당할수 없게 느껴질 뿐더러 삶이 이치에 맞지 않아 보인다. 또한 어떻게 살아갈지 ,살아간다 해도 왜 살아가야 하는지 갑자기 의문스럽고 앞길이 캄캄하기 만 하다. 비록 나 자신이 의사는 아니지만 간암은 불치의 병이고 말기에 이르면 복수가 생기면서 생명은 경각에 이르게 됨을 알고 있는 터이다. 나 자신이 비록 아버지를 몹시 근심했지만 그리고 어떻게 효성을 하겠다고 굳게 다짐했지만 아쉽게 한 걸음 늦은것 같아 보인다.

그날 저녁 난 많은 술을 마셨다. 어쩐지 취하고 싶었고 쓸쓸함과 더불어 영원히 취하고만 싶어졌다. 그 후부터 나의 삶의 균형은 깨져 버렸고 마음은 늘 흔들리고 그늘이 지기만 하였으며 많은 시간을 죄 의식속에서 보냈다.. 사랑하는 아내는 내가 우울증이 걸릴가봐 몹시 근심했고 내게 용기를 주었으며 또한 아내는 주변 사람들까지 챙겨 가면서 남편을 위할줄 아는 현명한 여자였다. 시간이 얼마쯤 흘러서야 난 잠시 나마 안정을 되 찾은듯 싶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신의 뜻인듯 싶었고 감정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 받아 들여야 함과 동시에 지금 힘들어 하는 자신에게 더는 가혹하게 굴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생각나는 모든 후회에 대해 평온함을 느끼도록 노력 하여야 됨을 새삼스레 느끼게 되였다. 아마도 완벽하고 후회없는 삶을 산다는건 비 현실적 인것이다.

나 자신이 할수 있는 일이라면 아버지의 제한된 생명을 연장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하는것인것 같다. 그것은 많은 자금이 수요되는것이다. 허지만 회사에서 주는 월급으로는 간암이라는 불치의 병으로 병마에 시달리는 아버지의 의료비용,석사공부를 하면서 수요되는 비용, 사랑하는 아들의 양육비용 등을 지출하는데 곤난이 있는듯 싶었다. 그래서 지금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드라마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고 인젠 습관화 되였으며 나의 생활의 한부분이 된것이다. 잉여 시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듯 싶다. 이 모든 모든것 가운데서 난 그 어느 하나도 포기할수 없는 처지에 있었으며 특별히 아버지의 경우가 더욱더 그렇다고 볼수 있다.

의사의 말에 의하면 치료만 중단하면 한해를 넘기지 못한 다는 것이다. 의사의 충고는 나로 하여금 위기감을 가지게 하였고 도전이 닥쳐오는 듯 한 불안한 느낌을 주었으며 또한 그 어느날엔가 아버지를 잃을수도 있다는 상실의 예감이 더욱 깊어지는 듯 싶었다. 난 잠을 이룰 수 가 없었고 최대한의 방법을 강구 해야 만 했으며 어떠한 난관과 곤난에 부닥치더라도 맞서 나가야만 했다. 난 병마를 막을 능력은 없어도 막을 의지는 있는것이다. 그렇다, 인간이라면 그누구도 생명은 한사람의 인생에서 단 한번 밖에 가질수 없는 귀중한 존재임을 알고있고 옛 속담에도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것은 생명이다. "라는 말이 있듯이 만약 아버지의 생명을 될수있는 한 일분, 일초라도 연장할수 있다면 , 살아있는 동안 아무런 부담이 없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할수 있다면 난 내일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모든 힘을 다 할 것이다. 물론 난 강철이 아니다. 혹시 그 어느날엔가 쓰러질수도 있을것이다. 그리고 위대한 과학자 큐리 부인처럼 위대한 인간이 될수는 없어도 그래도 내 삶의 역사에서 후회와 아쉬움이 없도록 참된 삶을 살고싶은 마음이다.

또한 나 자신이 비록 인생길이 순탄하지 않고 가끔씩 구분길이 있음을 알고 있고 아버지 병으로 하여 슬픈 마음을 헤아릴 수 없으며 비록 최선을 다 하여 노력해도 어려운 처지에 있지 만은 그 과정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모든것을 포기하는 그런 인생길을 보내고는 싶지 않으며 또한 그 어느 날엔가 맑은 햇살이 나를 반겨 줄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시간은 이렇게 어제도, 오늘도, 지금 이 순간에도 소리없이 흘러가고 있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난 지친 몸으로 퇴근길에 들어섰다. 이젠 가을과 겨울이 교차되는 계절이 되어서인지 기온이 뚝 떨어지고 몹시 추운것 같았다. 또한 깊은 밤이여서 인지 대지는 쥐죽은듯이 조용 하기만 하였고 거센 바람에 낙엽이 날리는 소리만 귀속에 들려온다. 횡단 보도에도 많은 낙엽이 널려 있었는데 매 하나 하나의 낙엽은 가을을 상징하는 붉은 단장을 하고 있었고 마치 살아 숨쉬는 생명처럼 느껴졌다. 어쩐지 바람따라 여기저기 날리는 낙엽이 처량 하기만 하다. 쓸쓸하게, 외롭게 걸어 가고 있는 나에게 오늘도 밤 하늘에는 여전히 무수한 별들이 나를 반겨주고 있었고 매 하나 하나의 별들은 마치 하루도 빠짐없이 머리속에 각인시켜 온 귀엽고 사랑하기만 하던 나어린 아들의 모습과 정기도는 한쌍의 눈처럼 반짝이였으며 매일과 같이 나의 길동무가 되여주고 있는 듯 싶다. 집에가서는 또다시 나 자신의 인생의 새로운 한페이지를 열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했으며 단, 영어에 더욱더 신경을 써야 될 것 같았다. 이렇게 나의 하루는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 난 어려운 상황에서 버티고 있다고 말할수 있다. 하지만 이런 시기일수록 강한 의지와 용기가 더더욱 수요됨을 알고 있으며 모든것 이 잘 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어린 아들이 장래에 커서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행복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한걸음 한걸음 성실하게 앞으로 나아 갈 것이다.


허수남

주소:경기도 시흥시 정왕2동 1261(시화공단 2나 301호)
회사명칭:(주)조일성업전기
이메일:xushoun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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