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체류자여서 신청을 못받아 주겠다는 것이다. 이유치고는 너무 졸렬하지만 규정이 그렇다니 어쩌랴! 우리는 이 접수거부확인서를 가지고 행정소송을 낼 예정이다. 불법체류라고 신청을 받지 않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 우리의 주장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 문제를 다투느라 시간을 끌 수 없기 때문에 동포들은 다음날 헌법소원을 내러 헌법재판소로 간다.
근본적으로 이들은 1948년 5월 11일에 공포된 <국적에 관한 임시조례>와 1948년 제헌헌법 부칙 10조에 의해 대한민국 국민이 된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자손들도 대한민국 국민이 되었다. 이들은 그 후 대한민국 국민임을 포기하겠다고 말한 적이 없다. 다만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꼼짝없이 중국국민이 되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한국정부는 이들이 대한민국 국민임을 포기했는지를 물어봐야 한다.
그런데 한국정부는 이 절차를 거치지 않고 이들을 한국국민이 아닌 것으로 간주했다. 우리는 이점이 위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헌법소원을 내는 것이다.
헌법소원을 제출한 다음에는 서울시내 10개교회로 흩어져서 단식농성에 들어갈 예정이다. 6천명의 동포 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단식을 할지는 알 수 없다. 사실 중국동포는 단식이 익숙하지 않다. 그렇지만 서울조선족교회는 단식을 하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결정한 이유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동포들의 깊은 한(恨)과 고통을 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동포들이 결연한 행동을 보여주지 않는 한 국민여론은 움직여지지 않는다.
우리는 이번에 단식을 하면서 동포들의 애절한 사연들을 공개할 예정이다. 그 중에는 임신 3개월의 몸으로 시어머니한테서 쫓겨나 불법체류하고 있는 여성도 있고 유일한 혈육인 딸이 한국에 시집오면서 따라온 할아버지, 할머니도 있다. 신장투석 중인 여성도 있고 그동안 번돈 4천만원을 몽땅 한국인에게 사기당한 마음씨 착한 아주머니도 있다. 이들은 다같이 도저히 돌아갈 수 없다고 절규한다. 우리가 행동을 하지 않으면 이들 동포들의 절규가 한국사람들의 귀에 들리지 않는다.
나는 그동안 조선족 동포들에게 중국으로 돌아가서 민족적 주체성을 가지고 잘 사시오 하고 설교해 왔다. 그러한 내말을 들으면서 동포들이 상당히 섭섭해했다. 그래도 나는 내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런데 작년 9월 연변 자치주 50주년 행사에 참석한 후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조선족동포사회의 미래에 비관적인 전망을 하게 되었다.
나는 고민했다. 교인들에게 앞으로 내가 어떻게 설교해야 할 것인가? 도저히 중국에 돌아가 잘 살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결국 오랜 고민끝에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를 찾아주는 운동을 하는 것만이 해결책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때부터 나는 이 문제를 위해 글도 쓰고 사람들도 만나면서 그들에게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를 돌려줄 것을 역설하고 다녔다. 노무현대통령에게는 그분이 후보시절 경실련 토론회에 오셨을 때 20분간 이 문제를 설명했다. 고건총리께는 일부러 찾아가서 이 문제를 상세히 설명했다. 강금실 장관, 청와대 수석 등 주요 정부 인사들
에게도 찾아가서 설명했다. 국회의원도 스무명에게 설명했다. 모든 사람들의 반응은 거의 비슷했다. 머리를 끄덕거리며 내 의견에 일단 동의를 표했다. 그리고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나중에 가서야 깨달았다. 이 문제는 말로 되는 것이 아니다. 동포들이 행동하지 않는 한 아무도 이들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이 문제를 가지고 행동하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4년이상 된 사람들은 돌아가야 한다고 그들
을 은근히 설득했다. 그런데 동포들의 반응은 ‘전혀 아니올시다’였다. 동포들의 간절한 눈빛… 그들은 도저히 돌아갈 처지가 아님을 내게 호소하고 있었다. 결국 나는 그들에게 졌다. 그리고 지금 내가 할 일이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찾기운동임을 깨달았다. 11월 15일이 지나면 이들은 전부 잠적한다. 그렇게 되면 목소리를 높여 자신의 문제를 호소할 사람들도 사라진다.
11월 15일 전에 이들이‘이땅이 내땅인데 우리보고 어디로 가란 말이냐’하고 소리질러야 한다. 그래서 나는 동포들에게 국적회복운동을 제안했다. 그리고 동포들에게“여러분이 행동하지않는 한 아무도 여러분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여러분의 문제를 제기하십시오!”하고 선동했다.
지금까지 동포들은 차별과 천대를 받으며 눈물과 한숨 속에서 살아왔다. 이 모든 고통은 한국이‘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를 돌려주지 않은데에서 비롯된다‘여러분은 여러분의 자식에게 또다시 눈물과 한숨을 넘겨줄 것입니까? 아니면 결단을 하고 조선족을 위대한 민족으로 탈바꿈시킬 것입니까?’하고 나는 동포들에게 도전했다. 그리고‘당신들이 단식을 한다면 나도 하겠오. 지난번에는 23일간 단식을 했지만 이번에도 승리하기 전에는 절대로 단식을 중단하지 않겠오’라고 말했다. 어떻게 싸울 것인가? 이들이 10개 교회에 들어가면 의사가 진단해서 도저히 단식하면 안 되는 사람들은 단식 못하게 할 것이다. 며칠에 한번씩 의사가 검진하면서 계속 더 이상 단식하면 안될 사람은 중단시킬 것이다. 그렇게 하면서 끝까지 단식과 농성을 계속할 것이다. 교회에는 말할 수없이 죄송스럽다. 그러나 11월 15일 이후에는 이들은 잡혀가기 때문에 농성을 중단할 수도 없다. 교회를 민수기 35장의 억울한 살인자를 위한 逃避城처럼 생각하고 찾아간다면 교회가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우리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문을 걸어 잠그는 일은 하지 않을것이다.
그러면 단식의 목표는 무엇인가? 그것은 단 한가지다. 조선족동포들에게 고향에 돌아와 살 천부적인 권리가 있다는 점을 한국정부가 인정하라는 것이다. 이 점을 정부가 인정할 때까지 우리는 결단코 단식을 중단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장은 아니더라도 이러한 인식에 부응하여 고통을 겪고 있는 동포들의 문제를 최대한 인도적인 차원에서 해결책을 찾아달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구체적으로 다음의 몇가지 사안들이 이루어져야 한다.
첫째는 이번에 헌법소원을 내는 국적회복신청자들로 하여금 판결이 나올 때까지 (판결은 6개월내로 나오는 것이 원칙이다.) 국내에 체류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 (원래 소송중일 때는 출국을 유예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재판중인 많은 동포들이 보호 일시해제 조치를 받았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정부가 이들 헌법소소원을 낸 동포들에게 인도적 조처를 취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둘째 딱한 사정이 있는 동포들은 중국으로 추방하지 말아야 한다.
셋째 금년 3월 31일당시 불법이었던 사람들은 다 구제하면서 3월 31일 당시 합법인 사람은 구제하지 않는 것은 옳지 않으므로 이들도 구제해야 한다.
넷째 친척방문으로 입국해서 3월 31일 이후에 불법이 된 사람은 원래는 취업관리제로 얼마든지 합법으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인데 정부가 홍보를 제대로 하지 않아 불법으로 빠졌으므로 이들을 구제해야 한다.
다섯째 국회에 계류중인 국적법 개정에 국회가 늑장을 부리고 있어 국제결혼을 했다가 신랑측의 귀책사유로 이혼된 사람들이 추방당하게 되었다. 국회는 이 국적법개정안을 즉시 통과시켜 이들이 억울하게 추방당하지 않게 해야 한다. 기자들 중에는 우리의 행동이 중국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는 편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우리 생각은 다르다. 그렇게만 보면 이 운동을왜곡된 시각으로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 운동은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를 찾는 운동이다. 그리고 이 기회에 동포들에게도 분명히 말씀드리려고 한다. 조금 더 체류하기 위한 편법으로 이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서류와 행정경비를 찾아가기 바란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원치 않는다. 그런 사람은 결코 단식투쟁을 할 수 없다.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찾기를 위해 몸을 내던져 투쟁할 사람만 남아달라. 옛날 바로왕의 압제에서 이스라엘을 해방시킨 하나님께서 이들 절규하는 동포들의 편에 서주실 것을 간절히 기도드린다.
서경석 목사 <서울조선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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