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식의 끼니 때우기는 아침뿐만 아니라 점심에도 종종 하여 왔다. 그래서 약속이 없으면 그렇게 때를 넘기곤 하였다. 물론 빵이 있어도 그것으로 대신 때우기도 했다. 하지만 빵보다는 떡이 든든해서 더 즐겨 먹었다.
서울 본집에 와서도 떡이 있으면 아침이나 점심 한 번쯤은 가끔 그렇게 먹었다. 잔칫집이나 뷔페 식당에 가도 나는 떡 몇 개는 꼭 담아 온다. 더 좋은 음식을 두고 떡을 먹느냐고 핀잔 아닌 핀잔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잔칫집 국수보다 잔칫집 떡이 더 보기 좋아서 집어든다. 이제는 이런 것이 일상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인지 아내는 가끔씩 생각지 않게 떡을 내놓기도 하였다. 그리고는 그것으로 식사를 대신하라는 것이다. 떡을 잘 먹는 나를 위해 주는 것이라지만, 속셈은 한 끼 차리기가 귀찮은 것이리라. 물론 떡을 했을 때 반은 먹기 좋게 손바닥만하게 랩에 싸서는 숙소나 연구실에서 먹으라고 담아 주는 것을 보면 꼭 그런 생각만은 아니기도 하다. 근래에는 환갑이 다 된 누이동생까지 알고는 떡 봉송은 물론, 쑥이나 수리치를 뜯었노라고 이따금 떡을 가져오기도 한다.
내가 떡을 좋아하기는 어려서부터라고 한다. 서너 살 때 심하게 앓고 난 뒤에 잘 먹지를 못했는데 백설기나 인절미 한두 쪽, 구운 밤 몇 톨은 조금씩 먹어서 하루하루를 연명했었다고 한다. 그러니 떡 몇 쪽이 죽을 고비에서 나를 살려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살아나서인지 그 뒤로는 크게 아픈 적이 없었다. 신체 능력이 최소로 줄었을 때 죽지 않고 소생한 사람은 그 생명력이 아주 질기다는 어른들의 말씀을 나는 지금도 곧이듣고 믿으며 감사하고 있다.
나는 식성도 좋아서 아무것이나 다 잘 먹는다. 느끼하다는 기름진 중국요리나 냄새가 역겹다는 동남아시아의 전통 음식들도 가리지 않는다. 그래서 외국에 나갔다 오면 몸무게가 몇 킬로그램씩 늘곤 하였다. 그러므로, 내가 떡을 특별히 좋아한다고 할 것은 없을 것 같다. 무엇이든 잘 먹는 습성에서 떡도 잘 먹을 뿐인 것이다.
그런데, 내가 떡을 식사 대용으로 먹게 된 것은 다른 까닭이 있다. 우선 떡은 소화기간이 길다. 그래서 떡을 먹으면 든든하다. 또 떡은 영양가도 높다. 그러므로 몇 개만 먹어도 충분하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도 먹기가 간편해서이다. 떡은 차리고 치울 것이 없다. 반찬도 필요 없다. 차나 한 잔 따라 놓으면 된다. 꺼내 놓고 하나씩 집어먹다가 그만두고 싶으면 그릇째 치우기만 하면 된다. 떡은 일하는 데에도 방해가 되지 않는다. 생각하며 먹고, 먹으면서 일할 수 있다. 특히 컴퓨터 작업을 할 때에는 떡은 식사로 안성맞춤이다. 한 덩이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면 된다. 두 손은 계속해서 자판을 두드릴 수 있어서 식사시간이 따로 필요가 없다.
이렇게 간편하고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식사가 떡 말고 또 무엇이 있겠는가?
여기에 떡은 비만과 성인병 예방에도 좋다고 한다. 서양식 빵이나 패스트푸드처럼 인공 첨가제를 쓰지 않고 잣이나 밤, 대추, 참깨, 호박 같은 천연 재료들만 사용한다. 그래서인지 요즈음에는 아침에 빵 대신 떡을 사 먹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행사 때에도 케이크 대신 케이크처럼 만든 떡이나 설기떡, 시루떡 등이 많이 이용되는 것을 본다.
더구나 요새 개발된 우리 떡들은 작으면서도 예쁘고 맛도 좋아서 젊은층과 외국인들까지 선호하고 있다. 2005년 9월에 개발한 ‘레토르트’떡은 전자레인지에 3분이면 데워서 먹을 수 있어서 유럽과 동남아에서도 호평을 받고 있단다. 일본인 관광객들이 선물용으로 가장 많이 사가는 것이 우리 떡이라고 하더니, 최근에는 떡이 일본에 수출되고 있다. 이제는 우리의 떡이 외국 사람들까지 즐겨 먹는 음식이 된 것이다.
“누워서 떡 먹기”라는 말이 있다. 일이 쉽다는 뜻이다. 식사하러 가면서 무엇을 먹을까 망설이고, 음식이 맛이 없을까 걱정할 일이 아니다. 꼭 그럴 필요가 없다면 떡으로 한 끼를 대신할 일이다. 떡 먹기가 쉽듯이, 식사하기도 쉽게 말이다.
이제는 “하루 한 끼 떡 먹기”’를 생활화해도 좋을 것 같다. 그래서, 비만과 성인병에 시달리면서 바쁘게 살고 있는 현대인들이 시간도 벌고 건강도 되찾았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