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전만능주'의가 팽배하는 이 시대에 권력과 재부, 그리고 모든 욕망을 떠나 오로지 순수하게 순문학창작에 한생을 바쳐서 주옥같은 수많은 장.중.단편소설을 창작해 문학의 옥탑을 쌓은 소설가가 있다. 강준용-, 대한민국에서 누구보다 貧하나 또 누구보다 富한 아래 漫筆에는 그의 삶의 순수가 티없이 묻어나 있다...편집자
가련다 떠나련다. 어린 아들 손을 잡고 감자 심고 수수 심은 두메산골 내 고향에
못 살아도 나는 좋아 외로워도 나는 좋아 눈물 젖은 보따리에 황혼 빛이 젖어드네.
빌어 먹을 일이다. 나도 제법 글을 잘 쓴다고 여기는데 유행가 가사보다 쓰지 못하니 한심하다. 혼자 있다가 부르는 음정에 이 노래가 나온다. 용하게도 9살 때 배운 노래를 잊지 않았다. 유년시절 시골에 살았으나 나는 노래에 '감자심고 수수심은' 대목을 좋아했다.
우리집 밭에 진짜로 감자를 심고 수수를 심었으나 나는 질리지도않고 '두메산골 내고향-' 소절에 소름끼치는 감동을 받았다. 초등학교 2학년 쯤 일이다.
내 문학에 시골과 도시가 교차되는 것은 바로 유년의 내 고향이 각인 되었기 때문이다. 피보다 진하고 청산가리보다 독하며 칠 팔월의 햇볕보다 강렬하고 짝사랑에 빠진 사람의 마음보다 아름답다.
내 고향에서 보낸 시절이 말이다.
나는 항상 고향으로 가고 싶어한다. 땅 한 평 없는 고향에 마음만 둔다. 책 잘 팔려 돈 벌면 반드시 고향에 오막집 한 채 사리라는 판단을 혹 가다 가졌다. 30여 년을 먹고 지내기도 힘들었으니 나한테는 공상이다. 혼자 누워 천정을 보며 공상에 젖을 때 나는 유정천리를 불렀다. 감자심고 수수심은 곳에서 감동이 되고 두메산골 내 고향 소절에 눈시울을 적실 때가 많았다.
글에는 감동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미려하고 감성적이고 주지적으로 글을 써도 인간이 감정을 요동시키는 감정이 없다면 별 볼 일이 없다. 유정천리 가사에는 소설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갈수록 도시가 싫다. 감자도 수수도 심을 줄 모르는 사람들이 컴퓨터 칩 속에 들어가 쇠내음을 맡는다.
' 못살아도 나는 좋아 , 외로워도 나는 좋아'
여기에서 음질은 떨린다. 홀로 지내온 지 꽤나 오래된다. 외로워도 좋다는 말도 이해가 된다. 적적함과 외로움과 고독의 참된 의미는 자신의 존재 확인이다. 적막의 색깔인 어둠이 짙게깔리는 의식속에서 자아를 찾아 부유하는 자신을 만날 때 비로서 자아를 느낀다. 나는 누군가, 나는 왜 여기에 있나. 나는 감자 심고 수수심은 내고향 으로 가고 싶다. 해답이다.
가을빛은 청명한 하늘색에서 온다. 갈색이라는 상징적인 색깔은 유유 부단하다. 춥지도 않고 덥지도않은 해맑은 청색이 가을빛이다. 운동장에 내걸린 만국기 사이로 보이던 하늘 빛은 나에게 가을 하늘색을 확인시켰다. 청백으로 갈라진 아이들은 가짓껏 응원가를 불렀고, 운동장에는 하늘빛에 대조된 하얀 선들이 선명하게 그어져 있었다. 운동장을 꽉 채운 수많은 인파들, 거의가 낯익은 나의 이웃 고향민이었다. 운동장 주위에 즐비한 천막친 가게들, 국밥집과 풍선장수도 또뽂기아저씨도 하루에 몇번이나 보는 늘 정겨운 향민이다. 국밥집주위를 어슬렁거리며 버린 뼉다귀를 잡고 깨물어 되는 개 또한 나를 보고 짖지 않은 향견이다. 문학생활 30여 년만에 나는 이 모든 사람들을 잃어버렸다. 감자심고 수수심은곳에 이들은 있다.
눈물젖은 보따리에 황혼빛이 젖어드네.
마지막 구절에 쓸쓸한 가을 바람이 부는 걸 느낀다. 내 짐을 싸면 단봇짐이다.검붉은 색으로 황칠한듯이 마구잡이로 번져나는 황혼빛에 서글픔을 느끼는 것은 나이가 든 탓이다. 유년때 노을은 아름다움의 표현이었고, 청년때 노을빛은 님의 그림자였다. 중년의 황혼은 낭만적이었고, 이젠 황혼은 아쉬움을 주게하는 서글픔의 상징물이다. 나를 떠난 사람들이 그립고 철부지 유년의 추억들이 황혼에 너울댄다. 소설속에 내기억에 각인된 편린들을 집어넣으나 바람처럼 사라진다. 나는 뭔가, 허망한 인생하나가 웃는다.
남부럽지않은 부자로도 지냈고, 한끼도 먹기힘든 최악의 빈민으로도 보냈다. 내좋아하는 소설쓰는사람이 됐고, 90여편의 작품도 남겼다. 건강하지는 않으나 아직까지 건재하고 노을보고 유정천리를 읊조리는 기억력도 있다. 내유년의 고향 이웃집 사람들 얼굴과 이름도 알고있다. 골목길 흙담장 너머로 피어난 불꽃같은 장미 넝쿨도 아직도 탐스럽게 여긴다. 내가 불행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나는 면경같은 푸른 하늘을 보며 쓸쓸함을 느낀다. 마음이 허전하니 가난한 것이다. 나의 외로움은 여기에 있다.
하늘이 청명하다. 세침데기 여인네 처럼 교태롭기까지 하다. 마음의 붓으로 정하나를 찍어 하늘에 그어본다. 뭉개구름이 생겨나 저 혼자 흐른다. 나를 싣고 흐르는 구름하나, 나는 유정천리를 부르며 식어버린 라면에 밥 한술을 말아 마셔버린다. 나는 아직도 견뎌야할 이유가 있다. 참으로 그런가 맞는가. 연실 고향이 떠오른다. 유정천리에 있는 낯익은 풍경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