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연길을 드나들면서 바지에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 되었다. 서울에서는 바지허리 32인치를 입는데 비하여 연길에서는 36인치를 입어야 하니 말이다. 그런데 32인치를 벗어놓고 바로 36인치를 입거나 36인치를 벗어놓고 바로 32인치를 입으면 신경이 덜 쓰이겠지만 중도에 34인치로 과도기를 거쳐야 한다. 그 바람에 트렁크에는 온통 사이즈별로 원단별로 바지뿐이다.
40대에 들어서니 신체의 변화를 자제할 수 없다. 청년시절에는 질탕 먹고 마셔도 어렵지 않게 체중 70kg을 유지하고 배도 타작마당같이 반듯했는데 40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자칫하면 체중이 80kg까지 나가고 배도 임산부처럼 부풀어 오른다. 그 통에 먹는 게 걱정스럽고 바지를 들고 씨름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연길에서는 먹는 것이 부담되지 않고 마음 편할 뿐더러 대체로 육식이고 볶음요리다. 서울에서 살다가 연길로 돌아와서 과거 애용했던 음식들을 한 번씩 만들어먹고 사 먹고 나면 벌써 32인치를 벗어놓고 34인치로 바꿔 입어야 한다. 그대로 손 놓고 1개월만 있으면 바로 36인치로 넘어간다. 그렇다고 갑작스레 운동을 해 보지만 다이어트효과에는 못 미친다. 그냥 밥을 떠넘길 수 있을 정도로 하루 10km씩 걷는 정도다.
그런데 고마운 것은 연길에서는 36인치허리를 ‘보기 좋은 편’ 으로 보는 것이다. 그 정도를 가지고 왜 수다를 떠느냐는 것이다. 하긴 연길에서 중장년층을 보면 배가 나오지 않은 사람이 없다. 얼굴은 유들유들 기름기가 돌고 혹은 부석부석 부어있고 걸음은 다리가 잘 나가지 않아 다리를 휘휘 내 저으며 걷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그 정도는 일도 아니라는 듯 눈여겨보는 사람도 없다. ‘씩씩’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당금 터질 듯한몸뚱이를 택시에 구겨 넣고 자가용에 구겨 넣는 모습 또한 가관이다.
오매불망 허리가 날씬해지는 서울이 그리울 수밖에 없다. 서울은 생활템포부터 빠르다. 뒤에서 호랑이가 쫓아오기라도 하듯 쩡 하면 냅다 뛴다. 뛰다가도 돌아보고 호랑이가 보이지 않으면 잠간 휴식을 취했다가도 다시 ‘덴겁’하고 뛴다. 그런 빠른 생활템포는 살찌는데 별로 이롭지 않다. 또 남겨야 하는 조선족들의 입장에서는 싼 것을 먹고 소식하는 편이다. 나면국물에 밥 말아먹고 김치하나로, 대파 한단으로 밥 먹는 일은 일상다반사다. 또 한국식체력노동은 좋은 다이어트가 된다. 열심히 1개월 정도 일하다 보면 복부와 엉덩이, 팔다리 살이 쏙 빠져 어느 새 바지허리가 헐렁해지고 뜀박질이 저절로 나온다. 당연히 34인치를 며칠 입어보지도 못하고 32인치로 갈아입어야 한다.
연길에서 만삭이 된 중장년들을 보면 지구가 하중을 이겨내지 못할까 걱정스럽다. 일하는 시간보다 휴식시간이 더 많은 사회, 일하는 사람보다 노는 사람이 더 많은 사회, 마작에 트럼프놀이, 빈번한 회식자리는 비만을 불러오는 요인이지만 그에 상응한 운동을 하여 살을 까보려는 의지는 간과할 수 없다. 간혹 주말에 등산하는 무리들을 볼 수 있지만 다이어트 목적에는 못 미치는 공기 마시러 다니고 쇼를 하러 다닌다.
옛날 잘 먹지 못하던 시절에는 비만이 부로 보였을지 모르지만 요즘 같은 세월에는 비만이 곧 가난이다. 운동학적으로 봐도 비대한 사람은 스피드가 떨어진다. 스피드가 떨어진 사람은 맡은바 사업도 잘할 수 없다. 이는 방관자들의 착오이고 본인들의 과욕일 수 있다. 이 시대의 견인차 역할을 맡은 중장년들은 비만과 싸워 허리32인치, 34인치를 확보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이 시대에 유감없는 생력꾼으로 되어주길 바란다.
2007년10월9일 연길에서
출처:모래안이야기
[려호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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